매년 10월 15일은 세계여성농업인의 날이다. 이날은 유엔식량기구(FAO)가 1995년 중국 북경 여성대회에서 제정해 올해 16돌을 맞이했다. 여성농업인은 전 세계 인구의 1/4 이상을 차지하고, 식량안보와 농촌지역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하지만 그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알려지지 못했다. 이에 따라 FAO는 매년 세계여성농업인의 날에 새로운 주제를 정하고 100개 이상의 나라에서 각 나라의 여건에 맞게 행사를 개최, 여성농업인의 농업 및 사회에 대한 공헌을 알리는 계기를 조성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여성농업인이 농업생산의 중요 역량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여성농업인의 경우는 어떠한가? 제16회 세계여성농업인의 날을 맞아 이날의 의미를 알아보고, 국내 여성농업인들의 현실과 개선과제를 짚어봤다.



10월15일은 ‘세계여성농업인의 날’

매년 10월 15일은 FAO가 정한 ‘쌀의 날’이자 ‘세계여성농업인의 날’이다. 쌀로 대표되는 식량 생산에서 절반 이상을 담당하는 여성의 역할을 기억하자는 뜻에서 지정한 것인데, 이러한 인식에 따라 1995년 북경에서 열린 제4차 세계여성대회에서 처음으로 이 날을 ‘세계여성농업인의 날’로 선포했다.
특히 이 날을 계기로 여성농업인의 역할과 기여를 명확하게 드러내고, 이를 국가와 사회가 인정토록 촉구함으로써 여성농업인을 위한 다양한 지원을 이끌어내는 것이 목적이다.


커져가는 여성농업인 가치와 역할

통계청이 발표한 2007년 농업조사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농업인구의 51.4%가 여성농업인이다. 또한 여성농업인의 노동이 가사노동보다는 농업노동이나 기타 농외소득 사업 등 소득을 얻기 위한 노동에 차지하는 비중이 40%에 달했다. 이같은 결과는 단순히 남성보다 많다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만큼 농촌과 지역사회에서 여성농업인의 역할이 더욱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세계적으로 공통된 현상이다. 특히 FAO가 인정한 것처럼 식량생산에 있어 여성농업인은 핵심인력일뿐만 아니라 가사, 육아도 도맡고 있어 가히 ‘수퍼우먼’에 가깝다.

또한 WTO나 FTA 결과로 세계화된 농업환경에서 영농형태도 변화되고 있는데, 벼를 중심으로 한 식량작물에서 채소, 과수, 축산, 화훼 등 여성농업인의 노동력이 집중 투입돼야 하는 작목으로 바뀌고 있는 추세여서 여성농업인의 역할과 가치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여성농업인의 농업에 대한 기여도가 높은데 반해 여전히 여성농업인의 지위는 열악해서 농업생산 주체로 인식되기보다는 생산보조자, 농가주부, 무급가족종사자로 인식되고 있다. 이 때문에 농업생산에 노동력만 제공할 뿐 소득에 대한 배분에는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이같은 불평등은 농촌진흥청 조사결과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우리나라 여성농업인의 10.6%만이 농지를 자신의 명의로 소유하고 있고, 11.1%의 여성이 농산물 판매로 발생한 수입을 자신의 명의로 된 통장에 입금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10명 가운데 1명만이 농업주체로서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농촌여성 지원계획 여전히 ‘탁상공론’

여성농업인들은 최근 10여년 동안 이같은 열악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농업생산에서부터 자신이 농사지은 농산물에 대한 결정권이나 소득 분배에 이르기까지 농업인으로서 가치와 지위를 인정받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쳐온 것. 그러나 국가와 사회의 인식은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일부 정책적인 고려가 있었지만 대부분 탁상공론에 그쳤다.

일례로 1997년 처음으로 여성농업인 육성 5개년 계획이 수립된 이후 올해 3차 5개년 계획이 마련됐지만 법적으로 ‘농업인’으로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어 대부분의 여성농업인들이 소외되고 있는 현실이다.

계획상으로는 ▲여성농업인의 지위 향상 ▲협동조합 및 각종 위원회에서의 여성농업인 할당제 적용 ▲여성농업인 복지증진을 위한 서비스 확충 ▲여성농업인 소득 향상을 위한 창업지원 ▲다양한 교육훈련 및 평생학습을 위한 프로그램 운영 등이 지원되어야하지만 농업인으로서의 법적 지위가 인정되지 않아 ‘그림의 떡’일 뿐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사업 및 지원 주체가 지자체로 떠넘겨짐에 따라 재정이 열악한 지자체는 계획조차 세우지 못하고 있다.


선진국의 여성농업인 가치 인정 ‘30년’

유럽연합(EU)의 경우 여성농업인을 지원하기 위해 1981년부터 5년 단위의 행동계획을 마련해 모든 회원국이 여성정책 지침으로 삼도록 하고 있다. 스웨덴은 이미 1975년부터, 핀란드는 1980년에, 노르웨이는 1981년에 국가행동계획을 수립해 정책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도 1977년부터 국가행동계획을 수립, 지원하고 있고 1993년부터는 여성농업인을 남성과 동일한 파트너로 인정하기 위한 발전계획을 마련해 추진하고 있다.

특히 일본의 경우는 매년 ‘농어촌여성의 날’을 지정해 농어업에 종사하는 여성들의 역할에 대한 사회적 인정과 자부심을 강화하고 있다. 또한 ‘남녀공동참여 주간(週刊)’을 설정해 양성평등성을 높이기 위한 정책을 국가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선진농업국은 이미 30여년 전부터 여성농업인의 지위와 역량을 인정했고 그 결과 ‘세계여성농업인의 날’ 제정을 이끌어낸 것이다. 이에 반해 우리는 1996년 제정한 11월11일 ‘농업인의 날’만 있을 뿐 여성농업인의 지위와 역할에 걸맞는 이렇다 할 행사도, 기념일도 없다.


여성농업인 위한 기념일 제정해야

이 때문에 최근 여성농업인들에게 국가와 사회가 제대로 자리를 마련해 줘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고 있다.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이 지난해 처음으로 제기했는데, “여성노동자의 날도 있고, 여성경찰의 날, 여성기업인의 날도 있는데 사회적 기여도가 높은 여성농업인의 날은 없다”면서 “‘여성농업인의 날’을 제정해 농업과 지역사회, 국가발전에 여성의 역할을 제대로 평가하고 인정하고 독려하는 공식적인 기념일을 지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농촌진흥청 김경미 농업연구관은 최근 본지 기고글을 통해 “그동안 부부가 상호 역할을 분담하여 책임과 성과를 명확히 하는 ‘가족경영협약’을 통해 농가의 경영이 개선되는 사례를 많이 볼 수 있었다”며 “아무런 지원이 없어도 농가가 스스로 받아들이고 변화한다는 사실은 농업에서 여성의 역할과 지위에 대한 인정이 결국 강한 농업, 우리 농업의 미래 비전을 향한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첫 걸음이라는 점을 수긍하게 한다”고 말했다.

또 김 연구관은 “최근 도시민의 수요가 늘고 있는 농촌체험관광에서 여성농업인들이 농촌의 다양한 전통자원을 활용한 체험활동을 주도하고 있고, 고령화된 지역사회를 돌보고 유지하는데 적극 참여함으로서 농촌지역의 리더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고 말하고 “세계여성농업인의 날을 계기로 우리 사회에서 여성농업인의 기여와 역할의 중요성에 대해 환기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됐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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