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기스칸 사후 대(大)몽골의 후계자 싸움에서 승리

  
 
  
 
고려에서 유럽의 발칸반도까지, 북으로 러시아에서 남으로 베트남, 북부인도까지 평정하고 서남쪽으로는 이집트까지 넘봤던 불세출의 정복왕 칭기스칸이 죽은 것은 1227년의 일이다.

그는 최종 목표였던 중국 남부의 송(宋)나라 정복을 이루지 못한 채 서역의 탕구트제국을 정복하기 며칠 전, 초원에서 느긋하게 야생마 사냥을 즐기고 있었다. 붉은 빛이 도는 회색 명마를 타고 있었는데, 그날은 웬일인지 야생마들이 달려들자 칭기스칸의 명마는 겁을 집어먹고 뒷걸음질 치다가 이 세계 최고의 권력자를 땅바닥에 메다 꽂고 말았다.

그는 이때 입은 부상으로 인해 그 해 여름이 가기 전 원정지의 야영에서 숨을 거뒀다.
이 위대한 대 칸(大汗)의 죽음은 인류역사상 최대의 영토와 최대의 인민을 거느렸던 몽골제국에 엄청난 혼란을 가져온다.
칭기스칸의 죽음이 너무 갑작스러웠기에 그들은 후계자나 제국의 통치 영역에 대해 아무것도 제대로 된 준비를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칭기스칸은 우여곡절 끝에 셋째 오고타이(‘우구데이’라고도 한다)에게 대칸 자리를 물려주었으나, 몽골은 부족회의(쿠릴타이)에서 통과돼야 모든 것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칭기스칸이 죽고 2년이 지나도록 대칸이 정해지지 않은 것은 이를 둘러싸고 뭔가 복잡한 사정이 있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이 치열한 싸움의 최종 승자는 의외의 인물이었다. 칭기스칸의 막내 며느리 ‘소르칵타니’다.

변방의 촌뜨기 처녀

몽골 부족 중 칭기스칸이 아직 대칸 자리에 오르기 전 그에게 점령당했던 ‘케레이트’부족 출신일 것이라는 추측밖에 이 여인의 출생년도나 출생지는 불분명하다.
그녀는 칭기스칸의 막내 ‘톨루이’의 첫 번째 부인으로 톨루이의 11명의 아들 중 4명의 아들을 낳았다. 이 네 명의 아들은 장차 몽골과 페르시아·이라크, 중국 원나라의 황제로 등극한다. 네 명의 아들들이 각각 다른 나라의 황제에 오르는 모습을 본 여인은 인류 역사에 소르칵타니가 유일할 것이다.

케레이트 부족의 촌뜨기 처녀는 정복자 톨루이(칭기스칸의 막내아들)의 눈에 띠고, 그의 아내가 된다. 소르칵타니는 총명해서 자신이 나서야 할 때와 잠잠해야 할 때를 잘 알고 있었다. 남편은 소르칵타니를 극진히 사랑했고, 소르칵타니도 남편 톨루이를 극진히 내조했다.
그녀는 몽골족의 관습과 성격을 금방 파악해 주변 사람들과 부딪치는 법이 없었다.

그녀가 시집온 지 얼마 안 되어 이미 이 집안은 세계 최강의, 가장 강력한 영향력의, 최고 부자 집안이었다. 소르칵타니는 유라시아를 장악한 ‘황금 가족’의 며느리였던 것이다.
그렇게 따지면 그녀 자신에게는 몽골족에 의한 점령이 축복이었을 지도 모른다.

남편, 의문의 죽음

남편 톨루이는 몽골의 관습에 따라 가장 많은 재산을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다.(몽골은 전통적으로 막내에게 가장 중요한 재산을 물려주었다.)
그는 셋째 형 ‘오고타이’를 적극 밀어 대칸에 오르게 했다. 원래 칭기스칸은 생전에 막내 톨루이를 가장 사랑해 그에게 대칸을 물려주려 했다. 따라서 오고타이는 은근히 동생 톨루이를 견제했는데 소르칵타니는 남편과 오고타이가 싸우면 제국을 위해서도 집안을 위해서도 좋을 게 없다고 판단했다. 그녀는 남편에게 일단은 그저 바짝 엎드려 있으라고 했다.

오고타이는 ‘아버지 잘 만난 덕’에 어마어마한 영토와 세계최고의 권력을 물려받았다. 자수성가하지 못한 이 대칸은 이내 술과 쾌락에 빠져든다.
1231년 오고타이는 몸을 추스르고 톨루이와 함께 중국 정벌에 나선다.

정벌을 떠난 지 3년째인 1234년, 몽골은 마침내 금나라를 멸망시키고 중원 정복에 한걸음 다가선다. 이때 몽골 초원에 남아있던 소르칵타니는 이상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정벌에서 돌아오는 길에 대칸 오고타이는 병을 얻었고 말을 못하게 됐다고 한다. 대칸은 무당을 불렀다. 무당은 “금나라를 점령할 때 그 나라 사람들의 피를 너무 많이 적셔 그 땅의 신들의 저주가 걸렸습니다. 대칸의 가까운 사람 중 하나가 저주받은 물을 마시고 대신 죽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이때 톨루이가 나섰다는 것이다. “내가 그 저주를 다 받겠습니다”라고 대칸에게 청했다. 40세에 불과했던 톨루이는 저주받은 물을 마시고 피를 토하고 죽었으며, 대칸은 살아났다.

이런 이야기였다.
소르칵타니는 이내 사태를 알아차렸다. 그녀는 그 지역에서는 특이하게도 기독교인이었다. 따라서 샤머니즘이나 무당의 말을 믿지 않았던 것이다.

“예전부터 남편을 경계했던 대칸의 음모다. 대칸이 무당과 짜고 그런 소문을 냈고 남편을 독살한 것이다….”
마음이 찢어지는 듯 아팠지만 소르칵타니는 자식들을 위해 침착함을 유지했다. 그러나 그 소문을 그대로 믿는 몽골 백성들 사이에서는 남편 톨루이가 숭배받고 있었다. 이는 소르칵타니와 그 자식들에게는 좋은 현상이었다. 소르칵타니는 아직까지도 그저 엎드려 있었다.

냉철한 그녀

오고타이는 톨루이가 죽자 소르칵타니를 견제했다. 그는 소르칵타니를 불렀다.
“우리의 관습에 따라 당신을 내 장자인 ‘구육’에게 시집보낼 테니 명을 받들라.”
남편의 조카인 구육에게 시집보내려는 오고타이의 뜻은 분명했다. 그는 톨루이 가문의 모든 의사결정에는 총명한 소르칵타니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내 제수지만 정말 총명한 여자야…. 가만히 있는 듯해도 저 여인의 지혜는 환한 빛처럼 사방을 밝히는 힘이 있다. 저 여자를 내 장남인 구육에게 시집보내 내 집안의 사람으로 만들어 놓아야한다.’
소르칵타니는 냉철하게 대답했다.

“대칸이시여. 남편은 대칸을 위해 죽어 만백성의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대칸의 은혜로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평소에 자신이 죽더라도 아이들이 자라 성년이 되기 전까지는 절대로 개가를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대칸을 위해 숨진 남편의 고귀한 유지를 받들고자 하오니 이 뜻을 저버리지 말아 주옵소서.”

오고타이는 소르칵타니의 완곡한 거절에 무슨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눈치도 없는 장남 구육은 “아버님 맞는 말이라고 판단됩니다. 결혼을 무기한 늦춰주시옵소서“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구육은 평소 숙모였던 소르칵티니에게서 어떤 경외감이나 카리스마를 느끼고 있었기에 자신의 아내로 상당한 거북함을 느꼈을 것이다.

몽골 제패의 서막

톨루이 독살에는 성공했으나 소르칵타니의 손발을 묶어 놓는 것에는 실패한 오고타이. 그는 다른 꼼수를 생각했다.
“톨루이 수하에 있던 3천 군호를 내 둘째 아들 ‘고단’의 휘하로 옮긴다.”
이는 재산 강탈이요, 세력을 약화시킨 것이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분부를 내려주시면 우리가 대칸을 제거해 버리겠습니다. 아무리 대칸이라도 이치에 맞는 일을 해야 충성할 것이 아닙니까?”
소르칵타니는 이 충직한 부하들을 달랬다.

“아직은 때가 아니니 그대로 충성하는 모습을 보이시오. ‘고단’에게 가서 그에게 충성을 다하면서 다만 마음속에서는 우리를 잊지 말아 주시오.”
그녀는 휘하 3천 군호를 보냈다. 그러나 그녀는 이로써 오고타이의 둘째아들 고단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게 되었다.
소르칵타니의 세계제국 몽골 제패는 이제부터 시작된다.(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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