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하루라도 영농일기를 쓰지 않으면 이상해요”
강원 산골에서 26년째 매일 영농일기를 쓰며 친환경 유기농업 보급에 앞장서는 농부가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소양강댐 상류의 오지인 양구군 양구읍 수인리에 사는 정종진(70) 씨는 지난 1986년 1월 21일 농사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가 바른 농업을 실천하겠다는 의미로 자칭 ‘정농(正農) 일기’로 부르는 영농일기를 쓰게 된 것은 당시 유기농을 가르쳐줄 사람이 전무했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으로 공부할 기회를 놓친 정 씨는 소양강댐 건설로 담수가 시작된 1975년 서울에서의 직장 생활을 접고 유기농을 하기 위해 선산과 할아버지의 밭 5천㎡가 있었던 현재의 오지로 오게 됐다.
그는 화학 비료로 짓는 농사가 토양을 망가뜨리기 때문에 유기농을 시작하려고 했으나 관련 전문가나 교재조차 구할 길이 없자 스스로 낙서처럼 농사와 관련된 기록을 하기 시작했다.

정 씨는 보통 일기장에 농사일을 쓰는 것이 아니라 최근 수 년간의 날씨나 파종 시기 등을 한 눈에 비교할 수 있도록 하는 자신만의 기록법을 개발했다. 예를 들어 2000년 1월 1일 일기 바로 밑에 2001년 1월 1일 일기를 쓰는 방법으로 연도별 같은 날을 한눈에 비교할 수 있도록 작성한 것.
이 같은 그의 농사일기는 10년 단위로 묶이면서 그를 유기농의 달인으로 바꿔 놓았다.

그의 농사일기에는 최근 전 세계 지구촌의 화두인 기후 변화의 현실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연중 가장 추운 1월 말의 경우 1986년에는 1월 낮 기온이 영하 13도였으나 올해는 영하 1도까지 올라가고 전통적인 삼한사온 현상이 깨져버리는 현상도 영농일기를 통해 알게 됐다.

하지만 10년의 3~4년은 한창 봄 날씨가 이어지는 5월 10일 이후에도 갑자기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면서 농작물에 동해(凍害)를 주는 이상기온 현상도 발견, 비닐하우스에서 키운 고추 모종은 5월 10일 이후에 노지에 심도록 권하고 있다. 온난화 현상으로 초창기 감나무가 살 수 없던 그의 집에서는 겨울철 따뜻한 동해안에 서식하는 감이 주렁주렁 열리는 이색 풍경이 연출되고 있다.

최근 정 씨는 화학비료 등으로 토양을 파괴하는 농업이 이제는 전통 방식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겨울철에도 외부 강의를 다니는 등 바쁜 생활을 보내고 있다.

아울러 사라져가는 토종 종자 보존 활동과 함께 석유를 사용하는 기계에 밀려 사라지고 있는 각종 농기계를 수집, 앞으로 농기계 박물관을 만들겠다는 꿈을 키우고 있다.
정 씨는 “낙서처럼 영농일기를 시작했지만, 요즘은 단 하루라도 쓰지 않으면 이상하다”면서 “영농일기를 통해 남을 따라가는 농사가 아니라 나만의 유기농 지식을 익히게 되고, 유기농의 1등이 되도록 나를 더욱 채찍질하게 됐다”고 말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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