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갈지라도 사랑하는 천곡강습소를 영원히 경영하여 주시오. 애처로운 우리학생들의 전로를 어찌하나. 어머님을 두고 가매 몹시 죄송하다.”
-최용신의 ‘유언’중에서

5월은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에다가 부부의 날, 성년의 날까지 더해 내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돌아보는 시간이다. 사랑이라는 단어는 머릿속에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아름답다 라는 생각이 들도록 만든다.

최용신은 1931년 만 스무 한살 나이에 고향 당시 경기도 수원군 반월면 샘골강습소에서 교사 겸 농촌지도사로 활동한다. 1928년 감리교 협성여자신학교(현 감리교신학대)에 입학해 농촌계몽운동의 선구자이자 독립운동가였던 황에스더 교수를 만난다. 이어 기독교정신에 입각해 민족의 밑거름이 되라는 가르침을 받고 재학 중 두 차례의 농촌실습을 한 후에 농촌계몽운동을 통한 독립운동에 전 생애를 바치기로 결심한다.

그 후 그녀는 일제 강점기 수많은 탄압과 제약이 있었지만 굴하지 않고 계몽운동을 펼치며 1935년 1월에 운명을 달리하기 까지 그는 국권상실기의 암울한 시대에 농촌계몽과 민족의식 고취를 위해 순교자적인 활동을 한 애국지사로서 살았다.

그녀는 일제 강점기 그야말로 찢어지게 가난한 마을 사람들과 만나면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게 된 것인데 학교가 없는 마을에 샘골강습소와 천곡학원을 세워 야학 등 농촌 계몽운동을 펼친 일이다.
최용신 벌인 농촌계몽운동은 1935년 동아일보 12주년 기념 현상소설에 당선된 심훈의 ‘상록수’에도 잘 나와있다. 약혼자 김학준과 함께 벌인 샘골마을에서의 농촌계몽운동은 최용신의 짧은 생애 중 가장 아름다운 역동적인 삶이었다.

최용신은 특히 나라를 되찾기 위해서는 공부를 해서 힘을 길러야 한다며 아이들의 독립의식을 고취시킨, 교육을 통한 독립운동가이기도 하다. 샘골 아이들을 ‘조선의 빛’, ‘조선의 싹’이라 부르고, 조선어가 국어임을 일러주어 조국에 대해 눈을 뜨게 하고 일제로부터 농촌을 지킨 민족의 ‘상록수’다.

5월 푸른 상록수를 바라보며 최용신을 기린다. 희생과 봉사, 사랑과 나눔, 교육과 나라사랑은 자본주의와 개인주의가 만연한 지금의 우리의 모습을 반성하게 한다. 나보다 우리를 욕심보다는 나눔을 통해 더 풍요로운 세상이 만들어 짐을 우리는 간과하고 있지는 않을까? 이러한 현실을 보며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최용신의 숭고한 정신과 실천하는 삶을 계승하는 것이다.

최용신을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이 상록수역에 내린다. 최용신이 걷던 길, 최용신의 흔적을 따라가기 위해서다.
모든 부와 명예를 내려놓고 힘든 상황 앞에서도 교육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았던, 교육자의 길. 최용신이 걷던 그 ‘길’ 위에 오늘 우리가 새로이 걸어가야 할 아름다운 길 하나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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