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기 추모전 ‘엄마의 말뚝’

“어쩌면 서투른 글을 쓰기 위해 서투른 아내, 서투른 엄마가 되려는 거나 아닐까? 그럴 수는 없다. 좋은 글을 쓰고 싶다. 계속 좋은 주부이고 싶다. 나는 이 두 가지에 악착같은 집착을 느낀다.” 작가 박완서(1931~2011)가 밝힌 1970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전 당선소감이다.

그 각오가 결코 허툰 것이 아니었음은 그의 유품으로 알 수 있다. 소설가 박완서 선생(사진)의 1주기를 추모하는 특별전이 그의 자전적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엄마의 말뚝’이라는 이름으로 서울 종로구 평창동의 영인문학관에서 오는 5월4일부터 열린다.

이번 전시는 박완서 문학의 질료가 되어온 사생활을 보여주는 자료를 고루 갖췄다. 영인문학관이 보관 중인 자료에 유족이 전시를 위해 보탠 유품까지 약 200점이 전시된다. 1981년 제5회 이상문학상 수상 소감을 쓴 육필 원고, 메모와 편지, 작가의 옷과 장신구, 신혼 초에 쓰던 그릇세트 등이 처음 공개된다.
작가 박완서가 아닌 어머니 박완서의 모습을 보여주는 자료들이 눈에 띈다.  “케이크는 똑같이 다섯개 잘라 놓았으니 싸우지 말고 먹고 원균이는 공부할 때 좀 더 주어도 된다. 제발 할머니 큰소리 안내시게 말듣고, 연탄불 꺼트리지 말고 원균이 깨우는 것 잊지 말아라.” 약속 때문에 밥을 차려주지 못하고 떠나면서 반죽해놓은 수제비를 떠서 먹으라며 세세히 그 조리법을 적어 놓은 메모도 있다.

 “수제비 반죽을 해 놓았으니 떠먹어라. 수제비 뜨는 법은 먼저 국이 팔팔 끓거든 손으로 얄팍얄팍 떠 넣는데, 찬물을 한 공기 마련해 놓고 손에 물을 묻혀가며 뜨면 반죽이 손에 묻지 않는다. 다 뜨거든 국자로 한번 저어서 서로 붙지 않게 하고 뚜껑 덮어서 한번 끓여라. 곧 먹을 수 있다.” 자녀들에게 남긴 메모에서는 주부이자 어머니로서의 깨알같은 꼼꼼함이 보인다.

 
박완서의 딸인 수필가 호원숙(58)씨는 ‘엄마의 물건’이라는 글을 통해 “엄마의 삼층장 서랍 깊숙이에 할머니의 오래된 공책이 있었다. 조상들의 기제사 날짜를 기입해 놓고 손자들에게 공부를 가르쳤던 할머니의 공책은 엄마가 버리지 않아 살아남은 물건들”이라며 “엄마가 간직한 물건에는 엄마가 물려주고 싶은 정신이 흐르고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처음 공개하는 자료들도 여럿 눈에 띈다. ‘아이고 하느님!’ 등 고인의 육필 원고, 자녀들과 문인 동료들에게 보낸 편지, 조각가 이영학 씨가 빚어낸 고인의 청동 두상 등이다. 평소 입었던 옷과 사용했던 그릇, 가위, 호미, 재봉틀 등 고인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물품들도 공개한다.  놀랍게도 동영상 자료도 있다. 선생과 남편 호영진 씨(1988년 작고)의 1953년 결혼식 영상이다.

전쟁으로 피폐했던 이 시기에 국가나 기관이 아닌 개인 행사의 동영상 기록을 남긴 것은 매우 이례적으로 평가된다. 초소형 6mm 필름으로 촬영했으며 길이는 5분여 분량이다. MBC가 최근 디지털 복원을 마쳐 이번 전시에서 직접 영상을 볼 수 있다.

또 김훈의 몽당연필, 시인 성춘복의 조각도구, 소설가 유현종의 디스켓, 소설가 윤후명의 엉겅퀴꽃 그림, 시인 이근배의 벼루, 시인 정진규의 서화첩, 소설가 조정래의 찻잔, 소설가 최인호 등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남성 작가 8명의 애장품도 선보인다

 전시 기간 토요일마다 오후 2시에 강연회가 열린다. 박완서에 대해 집중 탐색하는 강연과 남성 작가들의 작품 세계를 엿볼 수 있는 강연이 절반씩 준비된다. 문학관은 오전 10시30분부터 오후 5시까지 문을 연다. 입장료는 어른 5000원, 학생 3000원이다. 10명 이상의 단체는 1000원이 할인된다. 02-379-3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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