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사용한 그라목손 제초제 사용금지 조치는 문제


정부 “자살예방 등 이유로 금지…대체 성분도 효과 충분”
농업인·업계 “대체성분 제품 피해 잇달아…취급제한 강화하면 해결”



영농철 농업인들을 괴롭히는 골칫거리 가운데 하나는 잡초다. 뽑아도 뽑아도 하루밤만 지나면 다시 나는게 잡초라고 말할 정도이니 농업인들은 언제나 ‘잡초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개발된 것이 제초제. 친환경 또는 유기농을 원하는 소비자들의 요구에 맞춰 비닐을 덮거나 일일이 손으로 뽑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농업인들도 있지만, 고령화되고 일손이 부족한 농촌에선 ‘상비농약’으로 애용되고 있다. 제초효과가 탁월하기 때문인데, 일일이 손으로 뽑지 않아도 되고 한 번 살포하면 최소한 한 두 달은 잡초걱정에서 해방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농업인들 사이에 특정회사의 제품인 제초제를 구입하기 위해 다른 시·군, 다른 도를 넘나드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가 이 제품의 시판을 금지시킨 때문인데, 그럼에도 여전히 이 제품을 찾는 농업인들이 많아 품귀현상이 나타나 가격이 기존보다 2배 넘게 뛰었다. 왜 이런 현상이 빚어지고 있는지 알아봤다.


올 11월부터 ‘파라쿼트’ 제품 판매 금지

지난달 27일 농촌진흥청은 ‘파라쿼트’ 성분을 고독성으로 분류하고 이 성분을 사용하는 모든 제초제의 시판을 올해 11월부터 금지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를 위해 이미 지난해 11월 파라쿼트 성분이 포함된 고독성 제초제 11개 제품의 등록을 취소했고, 최근 파라쿼트 함량을 낮춰 새로운 제품으로 등록신청한 제초제에 대해서도 ‘고독성’으로 판정해 신청 서류를 반려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11월 이전에 생산된 파라쿼트 성분이 들어있는 제초제는 약효 보증기간이 끝나는 올 10월까지만 판매되고 11월 이후에는 파라쿼트 성분이 포함된 제초제는 사라지게 된다.
농진청에 따르면 농약은 독성 강도에 따라 맹독성, 고독성, 보통독성, 저독성 등 4단계로 구분되는데, 현재 등록된 농약 가운데 11%가 보통독성, 88%가 저독성이다. 정부가 사람과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농약안전관리제도를 강화하면서 맹독성과 고독성의 성분이 포함된 농약의 사용을 금지시키고 있기 때문으로, 이번 조치에 따라 현재 고독성 농약은 농수산물 검역과정에서 사용되는 훈증제 2종과 산림방제용 1종 등 3종만 남게 됐다.


가격 치솟아도 구매문의 ‘폭주’

정부의 이번 조치와 관련해 최근 농업인들 사이에 파라쿼트 성분 제초제인 ‘그라목손’ 구하기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파라쿼트 성분의 탁월한 제초효과 때문인데, 현재 이 제품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렵다는 전언이다.
농약업계에 따르면 이같은 조치가 예고된 지난해 11월부터 농약판매상들이 ‘사재기’에 나섰고, 이에 따라 영농준비 시기인 2~3월부터 서서히 가격이 올라 현재 2배 이상 치솟았다. 품귀에 따른 자연스런 시장반응인 것이다.
그럼에도 농업인들의 ‘그라목손’ 구하기는 계속되고 있다. 급기야 지난 5월부터는 판매금지를 결정한 농촌진흥청 주관의 ‘농약안전성심의위원회’에 농업인들과 농약판매상들이 민원을 제기하기 시작했고, 일부 판매현장에선 큰 다툼까지 벌어졌다는 후문이다.

“수 십년간 문제없이 사용…취급제한 기준 강화해야”

하지만 농약안전성심의위원회 결정은 번복되지 않았다. 정부의 환경 안전성과 자살 위험 차단이라는 지침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이를 현장의 농업인들이 제기하는 ‘탁월한 효과’에 따른 시판요구 거부의 정당성으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이 농업인들과 업계의 반응이다.

가장 큰 이유는 이 파라쿼트 성분의 경우 음독만 하지 않으면 인체 위험성이 크지 않다는 것. 농업용으로 쓰이기 때문인데, 적절한 살포방법만 준수하면 인체 피해가 거의 없다는 말이다.
농약업계 한 관계자는 “수 십년동안 아무 문제없이 사용해 왔는데, 자살 방지 차원에서 시판을 금지한 것은 상당히 문제가 있다”면서 “자살을 마음먹은 사람은 결국 다른 수단을 강구할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자살 수단을 다 없애야 하는 것 아니야”고 토로했다.

따라서 이 제초제의 취급제한 기준을 강화하는 것이 대안으로 제시됐다. 농업경영체에 등록한 (신분이 확인된) 농업인에게만 판매하고, 판매기한도 영농철인 3월부터 10월까지로 제한하는 것. 물론 일반인에 대한 판매를 금지하는 등 농약관리법에 따라 농약판매상들의 취급제한 기준을 강화하면 된다는 것이 업계와 농업인들의 주장이다.

대체성분 제초제 피해 잇달아

특히 파라쿼트 성분이 포함된 제초제 보다 대체성분으로 제조된 제초제가 더 문제가 많은데도 ‘농업용’이라는 기준을 잘못 적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업계와 농업인에 따르면 파라쿼트 성분 제초제(그라목손)가 농업인의 수요가 많은 것은 효과가 뛰어나기 때문이다.

이 제초제를 살포하면 2~3시간 안에 효과가 나타나고, 살포 30분 후에 비가 오더라도 약효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특히 작물을 파종하기 하루 이틀 전에 살포해도 작물에 거의 영향이 없고 파라쿼트 성분이 직접 접촉한 부분에만 약효를 나타내고 토양에 신속하고 강력하게 흡착되기 때문에 작물이나 주변 작물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물론 작업방법만 준수하면 안전성도 뛰어나다는 것이다.

최근 파라쿼트 성분 함량을 낮추고 시판 등록을 신청한 제품도 마찬가지 효과를 가지고 있지만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비해 파라쿼트 성분을 대체할 수 있는 성분으로 제조한 제초제는 농업현장에서 상당한 피해를 일으키고 있다.

실제로 경북 안동의 고추재배농가는 파라쿼트 대체 성분으로 만든 제초제를 뿌렸다가 고추농사를 망쳤다. 작물에만 직접 살포하지 않으면 된다고 해서 고추를 심기 열흘 전에 밭주변에 뿌렸는데, 밭 가장자리의 고추가 시들시들 말라죽었기 때문이다.

농약전문가에 따르면 이 농가가 사용한 제초제는 잎이나 뿌리를 통해 작물체내에 번지는 침투이행성 제품인데다 약효지속 시간이 일주일 정도로 길어서 작물을 심기전에 이를 고려해야 한다.
이 피해농가의 경우 시용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서 생긴 것이라고는 하지만 고령화된데다 일손이 부족한 농업현장의 사정을 감안하면 불편하기 짝이 없다.

충남 공주의 한 농업인은 “가뜩이나 인력이 없어 농사짓는 것이 점점 힘들어지는데 수 십년을 사용해온 제초제를 자살률이 높다는 이유로 생산을 못하게 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또 이 농업인은 “작년보다 배로 오른 그라목손 가격을 보면 한숨 밖에 안나오지만 비싸도 어쩔 수 없이 구입하려 한다”면서 “하지만 농약사들이 나중에 값을 더 올리려는지 제품이 아예 없다고 거짓말까지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 일본은 희석제품 판매 허용

그렇다면 외국의 사정은 어떨까.
EU 27개국은 지난 2007년 파라쿼트 성분에 대해 등록승인 자체를 취소시켰고 중국은 지난 4월 사람과 환경 보호를 위해 판매와 사용을 금지시키기로 해 오는 2016년 7월부터 전면 금지된다. 아프리카의 7개 나라에서도 성분 등록을 취소했다.

이에 비해 미국과 일본은 제한적인 사용을 허용하는 특별관리 허가대상으로 지정했다. 미국은 경고문구를 제품에 표시하고 관리감독하에 판매와 사용이 이뤄지도록 하고 있다. 집, 학교, 휴양지, 골프장 등의 사용은 물론 보관도 못하도록 금지시켰다. 일본은 제초제 사용금지가 아니라 파라쿼트 함량을 크게 줄인 혼합제로 사용토록 하고 있고 이에 따른 제품이 판매되고 있다. 이를 통해 자살률이 90%이상 줄었다는 조사결과(2009년)를 발표하기도 했다.

파라쿼트 성분 제초제를 판매해온 업체 관계자는 “파라쿼트는 지난 40여년 동안 값싸고 효능좋은 제품으로 농업인들의 사랑을 받아왔다”며 “비록 오남용의 문제가 있지만 일본의 경우처럼 관리하면 요즘처럼 어려운 농업·농촌 환경을 감안하면 기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또 이 관계자는 “비농업인에게 노출되지 않도록 상표를 바꾸고, 함량도 줄여서 농업인에게 판매하면 될 것”이라며 “파라쿼트 혼합제품과 관련해 다른 회사들과 함께 오용사고를 막기 위한 예방대책을 세우고 철저히 준수하기로 합의서까지 만들었는데 이번 결정이 나와 안타깝다”고 말했다.

“필요하면 농업인이 나서야…”

정부의 이번 결정이 재고될 여지는 없을까. 현재로선 번복될 여지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농업용으로 철저히 관리된다면 농업인들로선 갖가지 불편한 제한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며 사용금지 해제를 요구하는 농업인들의 요구에 귀를 기울여볼만 하지 않을까.

경북의 한 농약판매상은 “그라목손의 일방적인 독주에 배가 아픈 다른 제품의 업체가 조직적으로 판매와 새제품 등록을 거부하는 서명운동까지 벌였고 그것이 받아들여진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와 반대로 지금 농업현장에 실제적으로 도움이 되는 제품이라면, 농업인들이 나서서 금지해제 운동이라고 벌여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어 이 농약판매상은 “서명운동의 경우 다수의 농약업계가 합의한 예방대책 준수와 함께 행정기관의 단속이나 대농민 홍보, 판매교육 등과 같은 번거롭고 귀찮은 일이 싫어서 참여했다는 말도 있다”며 “업계 스스로 반성하고 진정 우리 농업·농촌에 필요하게 무엇인지 고민하고 개선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농약업계는 이번 결정 이전에 취급제한을 강화한 농약관리기준을 마련해 정부에 제안했었다.
취급제한기준은 가장 우선적으로 ▲농업인임을 확인한 후 판매하는 것을 기본으로 ▲구매자(농업인) 정보의 기록 보관 ▲파라쿼트 성분 제초제의 별도 진열판매 ▲판매기간(3~10월) 제한 ▲구매자에 대한 농약안전 사용교육 ▲취급제한기준 준수계약을 한 판매상에게만 취급·판매 허가 ▲제조회사의 대농업인 안전교육 실시 ▲신문방송 등 광고금지 ▲구토제, 색소, 악취제 등 안전물질 추가 등을 마련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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