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햇볕 뜨거운 7월의 한 낮. 전북 부안군 하서면 언독리에 위치한 부안여성농업인센터에 도착하니 아이들의 노랫소리와 웃음소리가 센터 바깥까지 새어나왔다. 창문너머로 교실안을 들여다 보니 영어수업시간인듯 했다.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열명 남짓한 아이들이 선생님의 지시에 맞춰 율동과 함께 영어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책상·의자도 갖춰지지 않은 교실에 교육 도구라야 카세트한대와 영어책 한권 뿐이지만 선생님의 질문에도 곧잘 대답하는 것을 보니 아이들 실력이 도시 아이들 못지 않아 보였다.

2002년 4월 개설된 부안여성농업인센터에서 운영하는 알곡 어린이집의 모습이다. 특이한 점이 하나 있다면 영어선생님들 모두 전문 영어 강사가 아닌 이주여성들이라는 것이다. 어린이집과 공부방 영어선생님 모두가 필리핀인들로 구성된 부안여성농업인센터. 한국어 실력도, 가르치는 것도 쉽지 않을텐데... 뭔가 사연이 있을 듯 하다.



이주여성들의 나눔 공간
부안여성농업인센터에는 유난히 이주여성들의 활동이 많다. 현재 이곳에서 한국어교육을 받고있는 이주여성들은 40여명 정도.

센터의 한국어학교는 2001년 3월에 조직된 필리핀여성모임에서 시작됐다. 이들은 센터에 직접 한국어 공부방을 제안했고 주 1회의 정기학습모임을 시작했고 2005년 5월부터는 체계적인 한국어교실이 마련됐다.
이곳 학교의 학습과정은 주 1회의 한국어 학습과 월 1회의 특별 프로그램으로 진행되는데 한국어 외에도 한국의 풍속, 문화, 음식, 생활 등도 가르친다.

또 이주여성을 위한 교육뿐만 아니라 남편과 시부모를 대상으로 한 교육도 마련해 며느리 나라를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흔히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 이주 여성들은 복지의 수혜자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다르다. 한국어 교육을 받고 있는 필리핀여성들이 자신들이 받은만큼 돌려주고 싶다고 나선 것이다.

그래서 현재 유아들과 초등학생의 영어수업을 필리핀여성이 전담하고 있다. 원어민교사의 영어과외는 생각조차 하기 힘든 농촌의 아이들에게는 정말 큰 선물인 셈이다. 교통비 정도의 월급으로 아이들의 영어교육과 더불어 초등학교 공부방 아이들의 영어수업을 맡고 있는 마셀리나 선생님은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오히려 한국어 실력이 많이 늘었다”며 자신들이 하는 일이 봉사가 아니라고 말했다.
이렇듯 주는사람 받는사람이 정해져 있지 않은 이곳은 진정한 나눔의 공간이다.

여성농업인의 복지향상 추구
여성농업인센터는 여성농업인의 종합복지지원기관 성격을 띄고 있는 유일한 시설이다.
그러나 현재 예산의 70% 가까이를 어린이집과 공부방에 사용하고 있어 종합복지지원기관이라는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다.

부안여성농업인센터는 힘든 와중에도 여성농업인을 위한 교육들을 실시해 본래 취지를 살리고자 애쓰고 있다. 정기적인 사업은 아니지만 여성농업인 지도자 교육과 부부평등교실, 선진지견학, 요가교실, 도농교류캠프 등을 실시해 여성농업인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기여하고 있다. 아직은 교육에 대한 총 예산 1억 원에 자부담비가 1,650만원으로 높은 편이지만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는 최대한 많은 프로그램과 교육을 진행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활성화 지원 절실
현재 여성농업인센터의 관리가 농림부에서 95년 지방이양이 된 이후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초기에 센터 시설에 대한 지원이 전혀 없어서 대부분의 센터 시설이 매우 열악한 형편이다. 안동여성농업인센터처럼 지자체에서 신축을 지원하는 예도 있었으나 이는 아주 특별한 경우였다.

부안여성농업인센터도 농협의 컨테이너 농기계창고를 개조해서 사용하고 있어 화장실이며 냉·난방 시설이 열악하다. 또 어린이집 하나만 운영해도 부족한 공간에 공부방, 상담실까지 운영하다 보니 공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처음에 이곳에 온 사람들은 센터의 겉모습을 보고 많이 놀란다고 한다.

임덕규 센터소장은 “지원이 지방이양되면서 지자체장의 재량에 따라 센터의 존폐가 결정되는 등 전국의 여성농업인센터가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농림부 사업으로 다시 전환해 여성농업인센터가 자리를 잡을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그것이 안될 경우엔 센터를 위한 목적교부세를 확정해 고정적인 예산지원이 이뤄지도록 하든지 센터를 법인화 해 개인의 지원도 원활히 받고 소득사업도 진행할 수 있도록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직 여성농업인센터가 가야할 길은 멀다. 농촌인구의 51%를 차지하고 있는 여성농업인들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는만큼 여성농업인센터도 그 수준에 맞는 기능을 수행해 나가야만 한다.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많은 지원과 관심이 시급한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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