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원 제 편집국장
여성농업인신문


예부터 삼복(三伏)에 ‘엎드릴 복(伏)’자를 쓰는 건 가을이 오다가 강렬한 여름기운에 굴복한다는 뜻에서라고 한다. 과거 삼복 무렵엔 계곡을 찾아 발을 물에 담그는 탁족(濯足)으로 더위를 달랬고, 궁궐에선 각 관청에 특별 하사품으로 얼음을 나눠줬다고 한다.

지난 7월말부터 계속된 폭염의 맹위가 위협적이다. 밤 최저 기온이 25도를 넘는 열대야가 10일째 이어져 지난 2000년 이후 최장시간을 기록하고 있고, 농촌에서도 가축들이 폐사하고 사망자가 속출하는 등 각종 피해는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8월 5일 현재 강원 영월의 기온은 올 들어 전국에서 가장 높은 38.7도까지 올라갔다. 이것은 예년보다 무려 5도에서 8도 이상 높은 수준인데, 지난 1994년 이후 18년 만에 최악의 폭염인 셈이다.

뿐만 아니다. 무더위 사망자만도 10명을 넘었고 정전사고도 끊이질 않고 있다. 가축 폐사 피해가 속출하고 전국 수원지의 녹조현상이 확산되면서 식수원 관리에 초비상이 걸렸다.
이번 폭염이 8월 중순까지 계속될 것이라는 게 기상청의 전망이고 보면 농촌에서 인적, 물적 피해는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농촌지역의 독거노인을 비롯한 사회취약계층의 인명 피해다.
7월 4일에는 밭일을 하던 강원도의 70세 할머니가, 같은 달 24일에는 비닐하우스 작업을 하던 경북의 78세 할아버지와 전남의 76세 할머니가 폭염으로 사망했다.
폭염에 무방비로 노출된 노인들에게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긴밀하게 협력해 보호대책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전국 458개 응급의료기관에서 이뤄진 ‘폭염 건강피해 표본감시’ 결과 올해 들어 지금까지 모두 7명이 폭염으로 목숨을 잃었다. 아직 8월초임에도 지난해 여름 폭염 감시 기간 중 전체 사망자 수(6명)를 이미 넘어선 것이다. 올해 6~7월 2개월간 열사·일사병 등 온열질환자 수(410명)도 벌써 작년 7~9월 3개월동안 환자 수(443명)의 93%에 육박하고 있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사망자 7명 가운데 무려 5명이 논·밭(3명), 비닐하우스(2명) 등 농촌에서 야외 작업 과정에서 숨진 사실이다. 지난해 역시 사망 사건 6건 가운데 5건의 발생 장소가 논·밭(4명) 또는 비닐하우스(1명)였다는 것은 농어촌 지역에 대한 특별관리가 요구된다는 방증이다. 현재 농어촌 지역에서 뜨거운 낮시간에 외출을 삼가하라고 당부하고 있지만 이를 무시하고 논·밭에서 계속 일하는 어르신들이 많은 게 현실이다. 당국과 지자체는 폭염 피해를 줄이기 위해 현장 점검을 늘리고 예방 수칙과 주의 사항을 보다 적극적으로 홍보해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폭염’을 재난으로 규정해야한다. 현행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 상 재난은 태풍과 홍수ㆍ폭설ㆍ가뭄ㆍ적조 등에 국한되고 폭염은 제외돼 있다. 폭염의 범위가 특정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피해 여부도 확인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이번 폭염을 계기로 국가재난과 관련된 시스템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폭염을 재난의 범주에 포함시켜 대응 수위를 높이는 방안도 적극 검토해야 할 것이다. 현행 시스템으로는 사전 대비책 마련은 고사하고 사후 수습도 벅차다. 각 부처가 제각기 따로 움직인다. 이래서는 효과적 대응이 어렵다. 인적ㆍ물적 자원의 배분도 비효율적이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이상기후로 한반도가 아열대기후로 바뀌고 국지적 기상이변까지 겹치면 이번과 같은 폭염은 앞으로 자주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폭염에 대한 정부 차원의 대응 시스템을 재점검하는 동시에 기상산업을 키워 장기 예보와 조기 경보 능력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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