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에 자란 사람들은 어린 시절 추석이 와도 찾아갈 고향은 따로 없었다. 사람들이 귀향 열차표를 사기 위해 역 광장에서 밤을 새우고, 인터넷이 생기고 난 후에는 예매 서버가 다운되었다는 뉴스가 해마다 신문에 실리곤 했지만 그저 남의 얘기였다.

그래서 추석 하면 지금도 고향 성묘길보다는 어머니가 사준 추석빔과 요즘은 보기 힘든 과자 종합선물세트 따위가 더 기억에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올해도 어김없이 추석이 돌아왔다. 그러나 이제는 역귀성이란 말이 낯설지 않을 정도로 고향에 잘 가질 않는다. 이미 온 가족이 도시로 이사온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대신 도시의 큰집에 모이지만, 이미 예전 같은 여유로움은 없다. 친척들과 함께 웃고 떠들면서도 돌아갈 길의 체증이 겁나고, 복귀할 일상이 부담스러워 계속 시계를 훔쳐본다.

또 자식들을 반기는 여성농업인들의 표정도 올해는 더욱 착찹해 보인다. 대책 없이 오르는 물가에 시달리며 먹고살기에 지쳐서 그런지 자식들의 표정이 밝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살이가 고단할수록 추석 같은 명절은 제대로 잘 지내야 한다. 여성농업인들이 바라는 것은 자식들이 들고오는 값비싼 선물꾸러미가 아니다. 그저 온 가족이 모여 서로 의지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털어놓으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오랜 시간에 걸쳐 우리 마음에 깊숙이 새겨진 우리 명절은 오히려 세태가 변할수록 의미를 더하기 마련이다. 모처럼 가족이 다 모인 가운데 옛 추억을 되새기고 지금의 어려움을 나누고 그래서 미래의 희망을 확인하는 것이 지금 우리의 명절이 갖는 의미이고 우리의 명절이 갖는 힘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추석에는 온 힘을 빼고 온 마음을 열어 가족들에게 그동안 감춰뒀던 신세 타령이라도 하면 어떨까 싶다. 그리고 다른 이들의 신세 타령을 들어주면서 서로 격려하고 위로해 주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누가 뭐래도 가족은 우리에게 남은 마지막 내 편이다. 어두운 우리 정치나 갈수록 심화되는 양극화 등의 거국적인 고민도 괜찮지만, 이보다는 내 낮은 연봉과 빠지는 머리카락과 커 가는 아이들에 대한 불만부터 털어놓으면 좋겠다. 그러곤 다른 이들의 타령을 들어주면서 고만고만한 근심들이 다 불필요한 고민이란 사실을 상기시켜 줄 수 있다면 더 좋겠다. 중요한 것은 고민의 내용이 아니라 서로를 속속들이 이해하는, 그래서 내가 맘 편히 속내를 드러낼 수 있는 가족이 있다는 사실을 새롭게 깨닫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을 통해 내일을 견뎌낼 힘을 얻을 수 있음을 확인하는 것이다.

나아가 가족들과의 희망 찾기를 좀 더 확대시켜서 이웃과 소통하고 나보다 더 힘든 사람들과 희망을 나누는 계기로 만들 수 있다면 훨씬 좋을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전화 한두 통이나 인터넷 한두 번 클릭으로도 그 방법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물론 아무리 추석을 잘 보낸다고 해서 고단한 일상이 당장 산뜻하게 바뀔 리는 없다. 그러나 달빛을 담은 송편을 빚듯 정성스레 가족이나 이웃을 생각하고 나아가 서로 기댈 수 있음을 자신하게 될 수 있다면 종합선물세트에 들어있던 맛난 과자꾸러미처럼 내일이 훨씬 풍성해지지 않겠는가. 그런 게 추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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