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진 시인의
감성편지


구름이 잔뜩 낀 하늘이 몹시 우중충하고 추워서 금세라도 눈이 올 것만 같습니다. 솔개 두 마리가 밭 위에 낮게 떠서 맴돌다가 공중에 정지해 있더니 어디론가 날아갑니다. 가으내 감나무 가지를 누비며 몰려다니던 어치 산 까치들이 잠시 숨을 죽이며 숨어 있던 탓에 조용히 긴장됐던 사방이 다시 조금 시끄러워 집니다. 박새 두어 마리는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듯 처마와 토방 마루를 포로롱 거리며 뭔가를 열심히 쪼고 있는 모습에서 더욱 가까워진 겨울이 느껴집니다. 여느 때처럼 일곱 시 반쯤 아침을 먹고 이어 커피 한 잔씩을 마십니다. 아내와 단둘이만 있는 이런 시간이 많아질수록 조금씩 더 쓸쓸해 질것입니다.

버릇처럼 저는 커피 잔을 옆에 놓고 신문을 펼쳐 들었습니다. 어젯밤, 설렁설렁 넘겨 읽은, 이미 뉴스를 보아서 아는 정치 사회면 기사들을 다시 한 번 더 들여다보고 경제, 스포츠를 건너뛰어서는 문화, 기획, 칼럼들에게 눈이 갑니다.

그중 ‘20대 섹스의 경제학’이라는 칼럼 하나가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도시의 새로 생기는 20대 커플들이 데이트할 때 하는 것 세 가지가 밥 먹고 술 먹고 섹스 하는 것 밖에 없다는 이야기로 칼럼은 시작되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이들이 너무 가난해서 그렇다는 것이었습니다. 영화나 공연은 물론 여행가는 것은 더욱 엄두를 내지 못하고 책 한 권을 사기가 빠듯하니 여가를 즐기는 형태가 결국 인간의 가장 기본적 본능에 머물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렇더라도 1회 만남에 최소 8만원이 들고 주 1회씩 한 달 4주를 계산하면 30만원이 넘어서 아르바이트로는 감당이 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수익이 보장되는 좋은 직장이나 자기만의 방을 가질 수 없는 사람들은 결혼은 물론 섹스마저도 할 수 없게 되지 않겠냐는, 2013년 시급 4860원의 세상을 살아내야 하는 젊은 사람들에 대한 보고서는 당사자가 아닌 저로서도 착잡하기만 합니다.

왜냐면 제 딸들도 도시에서 이렇게 살기 때문입니다. 알량한 아비의 교육철학 덕분에 대학 문턱에도 가보지 못하고 30대를 코앞에 두고 있는 애들이 알바 수준의 변변찮은 직장을 다니며 반지하 전세방에 살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면 착잡함을 넘어서 한숨이 나옵니다. 지금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에 미안한 마음을 떨칠 수가 없고 애들 스스로도 그 현실을 바꿀만한 능력이 없을 것이라는데 안타깝습니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주변 사람들은 ‘딸 가진 사람은 암시랑토 않다’거나 ‘다 저그들이 알아서 헌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제 생각은 달라서 20~30대들의 문제가 결코 남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쉽게 말해서 데이트 비용을 어찌 남자만 낼 것인가, 나만의 독립된 공간은 여자가 오히려 더 필요하지 않은가 같은 것이지요. 맘에 맞는 남자가 생겼는데 그가 방 한 칸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면 여자라도 방이 있어야 되지 않을까요? 최소한 이렇게라도 되어야 젊은 꿈들이 피어날 수가 있을 텐데 로미오와 줄리엣 식의 가련함만 남는다면 남자와 여자를 떠나서 이것이 사람 사는 세상일는지요.

며칠 전에 큰 딸애가 집에 왔다 갔습니다. 하루밖에 쉬어주지 않는 직장에 다니느라 추석 때도 제 동생들만 내려 보낸 것이 섭섭했던지 사흘 휴가를 내어서 왔답니다. 그런데 얘가 전화도 없이 불쑥 왔어요. 저는 밖에 나갔다가 저녁 끼니때쯤 돌아왔는데 부엌에선 안식구가 저녁을 준비하면서도 딸애 왔다는 소릴 하지 않았고 토방에 낯선 신발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빠! 나 왔어.” 하며 딸이 갑자기 방문을 열고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엄마 아빠를 놀라게 하려고 부러 연락도 하지 않았다는데 과연 저는 놀랍고 반가워서 딸애를 등에 업고 마당을 한 바퀴 돌았습니다. “어화 둥둥 내 딸이야.” 밖에서 마신 술 몇 잔이 얼큰한 탓에 노래를 부르기까지 했습니다. 그러고 난 후 이튿날에 조용히 물었습니다. “결혼은 하여간에 좋은 놈 있으면 연애라도 좀 하지 그러냐?” “없어!” 아주 간단한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사람이 없을 리 있겠느냐, 찾지 못해서 그렇지.” 딸애는 묵묵부답 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찾지 못해서 그렇다는 제 말은 틀린 것 같습니다. 어쩌면 딸애는 부러 찾지 않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글을 쓰면서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갑자기 가슴이 막혀오는 듯합니다.

같은 신문의 한 면에는 ‘준비된 여성 대통령’ 이라는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 박근혜의 슬로건이 결정됐다는 기사와 이 정부의 총리를 지낸 정운찬 씨가 성명을 내어 ‘누구를 위해 경제 민주화 반대하나’는 기사와 함께 박 후보와 전경련, 기획재정부 일부 보수 지식인에게 ‘99% 국민의 생존에 아랑곳하지 않고 경제 민주화를 저지하려는 반 헌법적 발상을 철회하라’는 내용을 싣고 있었습니다. 준비된 대통령이란 말은 1997년 대선 때 호남 출신 전직 대통령이 텔레비전토론 때 내세운 말인데 그의 이미지마저 차용하고자 하는 집권 여당의 속셈 앞에서 이 나라 젊은 세대들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 참 답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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