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동안 집 옆의 산에서 나무를 했습니다. 지난 가을에 몰아친 두 번의 태풍 탓에 산의 나무들이 수없이 부러지고 찢겼는데 그게 이제 죄다 말라서 불 때기 좋게 되었습니다. 톱도 필요 없고 낫도 필요 없이 밑에 흩어진 가지들을 주워 모아서 한 아름씩 나르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세 아름씩 한데 모아 묶으면 한 다발이 되지만 오래 쌓아두고 땔 것이 아니라 굳이 묶을 필요도 없었습니다. 이틀이라고 하지만 하루에 고작 두어 시간씩 해서 이틀입니다. 그래도 꽤 많이 할 수 있었습니다. 아껴서 땐다면 스무 날도 더 땔 것 같습니다. 마당 한 편에 수북이 불어나는 나무들을 보면서 이것들을 베풀어 주는 자연에 대한 고마움을 또 한 번 크게 느꼈습니다. 마음이 한없이 따뜻해지는 것도요.

제가 어려서 처음 배운 일이 산에 가서 나무 해오는 것이었습니다. 지게 목발 두드리며 나무하러가는 동네 형들이 부러워서 초등학교 마치자마자 산으로 갔습니다. 어려서부터 짐 지면 키가 크지 않는다며 어른들이 지게를 짜주지 않아서 멜빵 하나씩 가지고 또래들과 같이 몰려갔던 것인데요, 그때는 모두 나무를 때서 밥 짓고 쇠죽 끓이던 때라 산이 민둥산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주 멀리, 깊은 골짜기로 가서 나무를 해왔습니다. 그때도 한 다발 한 다발 울타리 밑에 쌓이는 나뭇단이 그렇게 옹골질 수가 없었습니다. 하루에 두 번, 아침나절에 한 다발, 점심 먹고 가서 저녁나절에 한 다발, 그렇게 두 다발 밖에는 해올 수 없었는데 나무하기가 힘들고 귀하니까 아까워서 쌓아만 놓고 차마 때지를 못했습니다. 특히 어머니는 막둥이인 제가 해오는 나무를 때지 못하셨지요. 그렇게 멜빵 나무를 하다가 지게를 만들어 지게 되면서는 한 번에 해올 수 있는 양이 늘었고 저는 무거운 짐을 지면서 인내심이라는 것을 길렀던 것 같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뭇단을 보면 마음이 따뜻해지며 편안해지는 것도 변치 않습니다. 쌀자루를 보면 먹지 않아도 배부름을 느끼는 것처럼 말입니다.

저희 집에는 나무를 때는 구들방 아궁이가 셋입니다. 본채에 있는 안방과 정지 방, 그리고 사랑채 하나입니다. 안방과 사랑채는 순전히 방을 덥히기 위한 것이라 솥단지를 걸지 않고 함실아궁이에 바로 불을 지피는 형식입니다. 그러나 밥을 짓는 정지 방 아궁이는 겨울이면 물을 덥히고 부엌을 따뜻하게 해야 되기 때문에 솥을 걸었습니다. 안방과 사랑채는 거실이라는 실내공간에서 불을 때는 까닭에 거섶이나 속소리나무가 아닌 장작을 뭉근하게 밀어 넣습니다. 반대로 정지에서는 이번에 한 나무처럼 잔가지들을 때서 활활 타오르게 해야 하지요. 사랑채는 간혹 손님이 왔을 때 한 번씩 때고 안방은 날마다 저녁에 한번 땝니다. 정지는 아침저녁으로 조금씩 땝니다.

불을 때보면 나무도 그 가짓수만큼이나 다 다른 성질을 가지고 있더군요. 크게 말하면 침엽수보다는 활엽수가 좋고, 무른 나무보다는 단단한 나무가 불 힘이 셉니다. 소나무는 어느 활엽수 못지않게 뜨겁게 타는 나무이지만 송진이 있어 그을음이 나는 게 흠이라면 흠입니다. 그러나 활엽수 중에서도 산벗나무는 타는 것이 영 시원찮습니다. 또 가벼운 나무보다는 무거운 나무가 더 불땀이 있지만 무겁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갈(굴피)나무는 아무리 잘 말랐어도 불이 거세지도 뜨겁지도 않습니다. 잘못하여 옻나무를 때면 방안에 누워 있어도 가려움이 생기고 누리장나무는 누린내가, 생강나무를 때면 생강냄새가 납니다.

청미래 넝쿨과 싸리나무는 연기가 거의 나지 않고 아카시나무는 참나무 못지않으면서도 비를 맞춰도 썩지 않아 더 좋습니다. 수십 년 땅에 구르면서도 썩지 않는 것은 가죽나무이지만 귀해서 목공용으로나 쓸 뿐 땔감으로는 잘 쓰지 않지요. 잘 모르시는 분들은 오동나무 잔가지들을 주어다 때는 경우가 있는데 원래 오동은 불에 잘 안타고, 썩지 않고, 벌레 타지 않고, 가벼워서 장롱을 만드는 것입니다.

어느 주부도 다 마찬가지겠지만 저의 아내는 ‘뜨끈뜨끈한 방’을 정말 좋아합니다. 반대로 저는 약간 따뜻한 방바닥에서 이불을 덮어 잠자기 좋은 온도를 만드는 게 좋습니다. 하지만 항상 아내의 기준에 맞추고 저는 저 윗목이나 찬바람 나오는 방문 옆으로 올라갑니다. 아내는 이불도 잘 덮지 않고 그렇게 뜨거운 방에서 천둥벼락이 쳐도 모르게 자고, 일어나면 아픈 것도 사라진답니다. 뜨거워서 저는 밤새 잠을 설치지요.

바야흐로 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때입니다. 큰 눈이 온다는 대설의 절기지요. 이럴 때는 가끔 사랑방에 불 뜨끈하게 때 놓고 친구 불러서 막걸리잔 나누며 옛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창밖에 함박눈이라도 펑펑 날리면 더 좋고, 이쪽 해변에서 나오는 굴 넣고 버무린 겉절이 김치 안주를 준비할 수 있으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일겁니다. 눈이 오기 전에 어서 서둘러서 나무를 조금 더 장만해 둬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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