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아지값280 사료값300 들었는데 값이 500이라…”

글 싣는 순서
1. 기업농과 중소농 ‘맞트레이드’
2. FTA 허브국가, 농업을 밀다
3. 선진농업 장막 ‘시장경제’
4. 협동조합에 길을 묻다

“한국정부에 딜브레이커(Deal breaker·협상결렬요인)는 없다. 쟁점이 없어서가 아니라 FTA 확대만이 진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한국이 유럽, 아시아, 미국, 동아시아를 연결하는 FTA허브가 되어야 한다는 선언 앞에 사실 여타의 쟁점은 장애물이 될 수 없다.”

MB정부가 들어선 2008년 초에 외국의 한 경제전문지에 실린 한국 관련 기사중 일부다. 최근 한·EU FTA, 한·미 FTA 등이 잇따라 발효되고 한·중 FTA협상이 진행 중인 대한민국은 말그대로 ‘FTA허브국’이 분명해 보인다. 전세계 경제시장 70% 접촉을 목표로 열심히 내달린다.

정부의 설명대로 FTA를 통해 계획했던 경제지표 성장이 가능해지고, 자동차와 전자제품 수출에 상당한 진전을 이룰 것이 자명해 보인다. 현정권이 누누이 강조해왔던 시장우위를 앞세운 자본경쟁 그라운드에 뛰어든 한국경제.
그러나 그 이면에 장송곡이 울리는 사연은 누구도 귀 기울이지 않고 있다. 물꼬를 트고 경쟁하면 할수록 시들어 죽어가는 그것, 바로 농업이다.

그간 우리 정부는 45개국과 FTA를 체결했고, 12개국과 협상을 진행하면서 경제영토를 확장했다. 그러면 그럴수록 가격경쟁력을 앞세워 밀고 들어오는 수입농산물의 홍수 속에 국내 농업은 고사하고 있다.
FTA라면 사족 못쓰는 MB정부는 이런 정황을 전혀 개의치 않고 농민들의 요구를 철저히 외면해왔고, 그 결과는 식량자급률 하락, 영세농급증, 영농법인 줄도산 등의 재앙을 만들었다. 도저히 앞뒤 셈을 맞출 수 없는, 불능상태의 농업경제는 농민들을 아스팔트로만 내몰고 있다.


 농산물 수급조절 ‘수입산 방출’…FTA로 시장가격 억제
‘회복세’ 옛말, 판매가보다 높은 생산단가에 ‘이농’


바닥으로 치닫는 농산물값

충남 서산에서 한우를 키우는 가인학(59)씨는 최근 휴업상태다. 정확히 말해 폐업했다. 얼마전까지 한우 40마리를 사육했으나, 11월에 마지막 출하를 마치고 축사를 비웠다. 2010년 5월에 마리당 280만원 들여 입식했던 송아지 3마리를 평균 500만원 조금 넘겨 팔았다. 마리당 사료값 300만원씩 매기면 2년 넘게 키워 240만원을 손해 본 것이다. 인건비와 자재비, 관리비는 차치하더라도 기막힌 일이다. 가씨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실수한 게 없는 것 같은데, 이렇게 손해보는 일을 계속할 수가 없다고 판단했다”면서 “FTA가 생겨나면서 앞으로 제값 받기는 어렵다는 소문이 자자한데다 사료값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포기하는 농가가 많다”고 말했다.

가씨의 경우처럼 어느 품목이나 사업분야를 막론하고 FTA로 인한 농업은 폐업 위기다. 당장 정부가 ‘수입산 방출’이란 무기 하나로 농산물 수급조절을 실시하고 있고, 이것의 배경이 FTA이다. 낮은 관세의 유제품, 삼겹살, 배추, 마늘 등을 대량 풀면서 농산물 시장 가격을 원천적으로 틀어막고 있다. 물가안정을 이유로 가격을 떨어뜨리다보니, 농가들은 소득창출 요인이 모두 끊기게 됐다.

무엇을 심어도 제값 받기 힘들고, 무슨 가축을 길러도 치솟는 사료값에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정부는 농업분야 피해를 보전해 주기 위해 지원대책을 내놨다. 각종 정책자금사업으로 발표한 지원대책은 대부분 융자금 지원이었다. 영농계획을 세울 수 없는 상황에서 대출 항목만 늘려 빚쟁이만 양산할 뿐 실질적인 대책과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정책자금 금리를 인하하거나 항목별 보조지원, 경쟁력 제고 사업, 품목별 보호장치 등은 결여된 대책이었다.



 FTA는 국내 농산업 ‘단두대’

한EU FTA로 향후 15년간 2조7천억에 달하는 농업생산기반이 무너진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또 한미 FTA로는 15년간 12조7천억원의 피해(생산감소액)가 예상될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한미FTA 피해규모는 정부가 5년전 내놨던 10조원보다 2조7천억원이 늘어난 규모다. 이후 얼마나 파급영향이 클지 가름조차 어려운 현실이다.

지난해 농촌경제연구원 등 10여개 연구단체와 정부가 연구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농업분야는 연평균 8천150억원 수준의 생산감소가 예상됐다. 이중 축산업은 4천866억원, 과수는 2천411억원, 채소·특작은 655억원, 곡물 218억원 등의 피해가 예측됐다.

미국측의 셈은 달랐다. 지난해 초 미 하원 세입위원회 청문회에서 농업분야 증인으로 출석한 전미농업연맹 밥 스톨먼 의장은 “한미 FTA체결로 연 18억달러(1조9천억원)의 미국산 농산물이 수출될 전망”이라고 언급했다. 우리 정부의 예측과 1조5천억원이나 차이난다. 국내 농업이 살아날 수 있을지 의문인 대목이다.
헌데도 한미, 한EU FTA 국회 비준동의안은 날치기 통과됐고, 현재 발효 중이다. 그만큼 MB정부에서 농업계는 안중에도 없다는 뜻이다.

현재 4차 협상까지 완료한 한중 FTA는 발효될 경우 농업계로선 ‘사형선고일’을 앞당기는 것이다. 한국과 중국의 농업규모는 43조원과 1천68조원(2008~2009년 기준)으로 비교조차 어렵다. 여기에 농림산물 수출액은 5억6천달러규모(2010년 기준)인데 반해 수입액은 32억3천달러로 26억7천달러(2조9천억원) 무역수지 적자 상태다. 여기에 규제를 풀어버리면 가히 상상하기도 힘든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다. 농업규모가 50조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국내 농산업을 살리거나 보호한다는 정부의 설명은 어불성설이다.



 FTA로 뭉친 수구세력
 
“자동차와 전자 등에서 중국 시장을 잠식해 이득을 올린다는 정부의 전략은 농민을 희생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정부는 그것을 알고 있다.” 지난 11월초 경북 경주에서 열렸던 한중 FTA 4차협상 반대 집회에 참석했던 농민단체 관계자의 말이다.

하지만 농민들의 절규는 정부와 일부 수구세력의 포장된 논리에 여지없이 묻힌다. 대표적인 FTA 옹호론자로 손꼽히는 안세영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한중 FTA 관련, “중국정부와협상을 할 때 우리 제조업이나 농업이 품질향상, 기술개발, 품질개량 등으로 미리 준비를 해 나간다면 위기가 기회로 바뀔 수 있다”면서 “FTA라는 것은 한중 두나라가 서로 문을 활짝 여는 것이기 때문에 그만큼 우리 공산품이나 농산물이 거대한 인구 12억의 중국시장으로 진출할 새로운 기회도 된다”고 말했다. 국내 농업의 현실을 안다면 말도 안되는 내용이지만, 일반 국민들에게는 긍정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언변으로 들릴 수도 있는 얘기다.

정부 또한 농민들을 여지없이 폄하하고 있다. 지난해 초 당시 통상교섭본부 정책기획과 황인상 과장은 “무역으로 먹고 살아야 하는 한국이 FTA를 해야하는 건 자명한 사실이고, 국민적 합의가 가장 중요하다”며 당위성을 주장했다. 농민들이 국민들의 공감대를 거스르는 이기주의를 표방하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농업계가 더욱 힘든 이유들이다. 하지만 FTA에 대한 비난 수위도 만만치 않게 제기되고 있다. 세계적 경제학자인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장하준 교수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FTA는 농업, 서비스업 등에서 피해를 볼 것이다. 장기적으로 보면 부품소재산업, 대체에너지 산업, 나노기술 및 신물질 개발 등 기술력이 필요한 차세대 산업의 성장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장 교수는 “우리는 국민소득도, 부문별 생산성도 미국, 스위스, 스웨덴, 일본의 절반 수준이기 때문에 우리를 앞선 미국, EU 등과 FTA를 맺으면 상대의 관세인하에 맞춰 우리 역시 관세를 낮춰야 한다”면서 “지적재산권 보호에 대한 강한 요구도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에 국민소득 4만~5만달러 시대를 여는 신산업의 성장에 어려움이 생긴다”고 덧붙였다. 농업분야를 거론한 것은 아니지만, 영세한 국내 농업규모를 감안하면 생존이 어렵다는 진단을 내릴 수 있는 지적이다.

때문에 MB정부의 FTA정책에 유린당한 농업계는 차기 정권을 주목하고 있다. 최근 농협 품목별전국협의회 회장단은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와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사무실을 방문, 한중 FTA 협상에서 농업 부문을 제외하라고 요청했다. 이들 농민단체들은 건의문을 통해 “EU, 미국과의 FTA 협정 발효만으로도 어려운 상황에서 한중 FTA에 농업 부문이 포함되면 우리 농산물의 경쟁력은 물론 식량 주권마저 상실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 상태의 FTA 추진은 농민들을 벼랑으로 모는 것 뿐 아니라, 식량주권을 강탈당하는 수순을 밟게 될 것이라는 게 농업계 한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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