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으로 변질된 농협, 등 돌린 농민…“풀뿌리 협동조합이 살길”


 협동조합법 발효, 5인이상 설립 가능

‘고구마조합’‘한우조합’‘무화과조합’ 등 우후죽순 설립

 MB정부 지원 ‘전무’…차기정부 지원대책 촉구해야



글 싣는 순서

1. 기업농과 중소농 ‘맞트레이드’
2. FTA 허브국가, 농업을 밀다
3. 선진농업 장막 ‘시장경제’
4. 협동조합에 길을 묻다

현정부의 기업농 육성정책으로 몰살위기에 직면한 농민들이 해법 찾기에 고심중이다. 영세한 규모의 가족농들이 개별적으로 대적할 수 없는 시장여건을 만든 MB정권 하에서 살아남기 위한 마지막 수단은 뭘까? 농민을 기업농의 임금노동자로 전락시키는 농업정책을 바꿀 수 없다면 기업농과 겨룰 수 있는 조직을 꾸리는 것이라고 농민들은 얘기한다.
그간 농민과 관련된 조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조직들은 보호막은커녕 정부의 심부름꾼 노릇에 충실했을 뿐이기에 애당초 기대를 저버린지 오래다. 농업 위에 군림하는 농협중앙회, 하부조직 역할의 단위농협 등이 그들이다.

결국 ‘믿을 만한’ 조직을 새로 만드는 수밖에 없고, 법률적인 근거 아래 법인격으로 만들 수 있는 것, 바로 협동조합이다.
구랍 1일 협동조합기본법이 발효되면서 농업관련 협동조합 설립 움직임이 곳곳서 포착되고 있다. 주식회사나 영농법인, 사단법인 등으로 법인설립이 가능했던 기존과는 달리 협동조합법이 태동하면서 5인이상이면 별다른 조건없이 금융·보험업을 제외하고는 사회 모든 분야에서 협동조합을 만들 수 있게 됐다.


MB농정, 농협까지 ‘기업화’

2008년 12월 4일. 집권후 첫 겨울을 맞은 이명박 대통령은 가락동 새벽시장에 들른 자리에서 농협을 질타했다. “농협이 번 돈을 농민에게 돌려줘라. 농협이 돈 벌어서 사고나 치고 있다”는 당시 발언은 ‘농협개혁’이란 타이틀을 달고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을 분리하는 방향으로 빠르게 추진됐다. 신·경분리가 처음 시도된 것은 아니지만, ‘정치적 보복’으로까지 회자되던 농협이 드디어 수술대에 오른 것이다.
급기야 올 3월에 신경분리가 감행됐고, 농협중앙회는 중앙회, 금융지주, 경제지주로 나눠졌다. 정부는 5조원을 농협에 지원키로 하고, 1조원은 정부가 보유한 공기업 지분을 농협 금융지주에 현물 출자하고, 4조원은 국민연금 등이 농협중앙회가 발행하는 농협금융채권을 사는 방식으로 지원했다.

이 과정에서 농협은 기업으로 바뀌었다. 농협은행, NH보험 등의 계열사를 거느린 금융지주는 물론, 농협목우촌, 농협유통 등을 소유한 경제지주까지 협동조합의 정체성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형태로 변질됐다.
5조원을 지원한 정부는 노골적으로 농협중앙회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국민의 주머닛돈으로 형성된 자금이 투입되는 만큼 농협이 확실히 달라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으름장을 논 기획재정부 관계자의 자세가 그 증거다. 

이전에도 정부의 하부조직이라고 질타를 받던 농협중앙회는 더욱 정부 주도의 ‘관 기업’이 됐다.
농협중앙회가 농민들의 협동조합이었다면, 한EU FTA, 한미FTA 등을 체결할 때 어떠한 입장을 천명했을 것이고 쌀대란, 배추값 파동 등을 겪을 때도 정부를 상대로 싸웠을 것이다. 그러나 거대조직인 농협중앙회는 ‘꿀먹은 벙어리’였다. 자체 경제사업의 효율성, 금융사업의 기술력 향상에만 몰두한 기업이었던 것이다.
“농협을 농민에게 돌려주겠다”던 당초 취지는 오간데 없고, MB식 농업말살 정책에 상징적인 사례로 꼽히게 됐다.

MB식 협동조합…“알아서 커라”

2012년 12월1일 발효된 협동조합기본법은 자율적이고 자발적인 협동조합의 탄생의 시발점으로 인식되고 있다.
기존 농협, 수협, 새마을금고, 생협, 산림조합 등 8개의 협동조합은 그들 개별 협동조합법이 있고, 이 법에 근거해 설립이 가능했기 때문에 실질적인 협동조합 설립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또한 이들 조직은 국가의 지원이 필요한 정책적 영역으로 인식돼 왔고, 국가의 정책수단이나 정책수행의 보완적인 기능으로 활용됐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측면에서 협동조합법 발효는 획기적인 변화이다. 1차산업 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5명 이상이면 누구나 협동조합 설립이 가능해졌다. 협동조합의 역할에 목말라하던 농업분야에서도 단비같은 소식이다.

영리법인을 만들었을 때 자본주의 속성상 투자규모가 얼마냐에 따라 의결권이 다르거나, 법인 운영자를 제대로 교체할 수 없어서 발생하는 문제 등을 해결하게 된 것이다. 영리와 비영리를 함께 추구하는 게 협동조합인 것이다. 즉 주식회사나 영리법인이 ‘돈’이 목적이었다면 협동조합은 ‘사람’이 우선이란 점에서 1차산업인 농업분야에 딱 어울리는 조직체로 분석된다. 전세계 선진 농업국들의 공통점이 협동조합 성공이란 점은 주목할 부분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현정부는 협동조합법 제정으로 인해 서민과 지역경제 활성화와 지역단위의 새로운 일자리 창출 등 기대가 크다고 설명했다. 자율·자발적 협동조합 설립으로 공공근로 등 복지사업에도 효율성이 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러한 전망에 대해 전문가들은 허상에 불과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그도 그럴것이 법률상 신생 협동조합에 대한 재정이나 세제 혜택 등 정부 차원의 직접 지원이 빠져있기 때문이다. 엄밀히 따지면 기존 8개 법률에 의거한 협동조합들은 정부 지원 등 여러 혜택을 누리고 있는 것과 차별을 두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배당세, 법인세, 취득세, 등록세 등이 해당된다. 이러한 차별은 우후죽순 생겨나는 협동조합들의 자리매김에 최대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란 지적이다. 결국 “틀을 만들어줬으니, 경쟁에 알아서 살아남으라”는 약육강식을 협동조합으로 포장해서 던져 논 셈이다.



“못 믿을 농협보다는…”

정부 지원대책이 전혀없는 상황임에도 농업분야의 협동조합 설립은 말그대로 만개하고 있다. 전남 영암무화과협동조합, 순천지역에서 반찬과 김치류를 공동 생산하기 위한 행복마을전남협동조합, 농산물 직거래 판매를 겨냥한 나주 빛가림생명농업협동조합 등이 채비를 마쳤다.
전북 완주군에서는 한우협동조합을 만들어 농가들이 공동책임의식을 갖고 체계적인 활동 계획을 세우는 중이다.

충남지역에서는 한우리고구마협동조합이 그 지역 1호 협동조합으로 출범했고, 충북은 농산물나누기협동조합, 경기도는 친환경 농산물의 유통을 목적으로 한 착한살림협동조합이 문을 열었다. 강원도에선 강원농업마이스터협동조합가 농식품 공급을 위해 온라인 쇼핑몰 운영에 들어갔다.

이들 농가들은 협동조합 설립 이유에 대해 생산단가에 부합한 농산물 판매가격을 원할 뿐만 아니라, 기존의 농협이나 축협 등이 제역할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정확한 시장조사와 조합원들의 의식 공유, 철저한 계획 등이 선행된 상태에서 협동조합을 만들라고 충고하고 있다.

한 협동조합 전문가는 “중구난방으로 장점만 부각시키는 정부도 문제지만, 아무 대책이나 진단없이 협동조합을 만드는 농민들이 있어선 안된다”면서 “우선 조합의 난립으로 소비자의 혼란과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데, 일례로 농협 상표를 부정사용하는 등의 유사 협동조합을 들 수 있다”고 말했다.
즉 소비자 혼란은 협동조합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많은 협동조합에 피해로 돌아갈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 다른 협동조합 전문가는 “당장 농민들의 협동조합 설립은 친환경 농산물의 유통구조 개선으로 모아질 것으로 보여진다”면서 “농민단체나 전문가들을 통한 정부 지원 대책 요구와 기존 농협과의 연계 사업으로 활로를 모색할 경우 상당한 효과도 기대되는 만큼, 장단점을 철저히 조율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저작권자 © 여성농업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