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년 100세, 유기농의 아버지로 불려


한 평생 빈민·어려운 이웃 위해 헌신


‘한국 유기농업의 아버지’, ‘생명농부’로 불리는 풀무원농장 원경선 원장(사진)이 지난 8일 새벽 향년 100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중학교 1학년 도덕 교과서에 등장하는 고인의 직업은 ‘농부’로 세상은 그를 한국 유기농의 아버지로 불렀다.

고(故) 원경선 원장은 1914년 평안남도 중화군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열여섯 살 되던 해 부친이 별세하면서 농군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한국 전쟁을 겪고 나서 마흔의 나이에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삶을 살기로 결심을 하고 1955년 경기도 부천에 땅 3만3000여㎡(1만평)을 개간해 ‘풀무원농장’을 마련했다. 그리고 오갈 데 없는 이들을 위해 공동체를 설립해 운영했다.

풀무는 대장장이가 쇠를 달구거나, 녹이기 위해 불을 지피는데 이용되는 기구를 뜻한다. 사람도 풀무질이 필요하다는 게 원 원장의 생각이었다. 열한 살 때부터 교회에 나가기 시작한 독실한 기독교인인 원 원장은 풀무원농장을 통해 농장에 들어온 식구들을 하나님의 말씀과 농사일로 풀무질해 세상에 쓸모있는 사람이 되게 하겠다는 뜻에서 풀무원이란 이름을 사용했다.

원 원장은 1976년 경기도 양주로 농장을 옮긴 후 ‘생명존중’과 ‘이웃사랑’의 정신을 바탕으로 국내 최초로 화학비료와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는 유기농을 시작했다. 또한 곧이어 한국 최초의 유기농민단체인 ‘정농회’를 설립했다.

공동체 운동으로 시작된 그의 이타적 삶은 인류를 기아와 전쟁으로부터 보호하고, 공해로부터 인류를 건지려는 환경운동과 생명보호운동, 평화운동으로 진보를 거듭했다. 일찍부터 아프리카 기아 현장에 가서 구호 활동을 하고 그 참상을 기아대책을 통해 국내에 알림으로써 국제기아에 관심을 갖는 계기를 마련했다.

‘인간 상록수’로 불리는 원 원장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은 목이 달아나도, 재산이 바닥나도 실천하며 살아왔다. 그가 1961년부터 이사장을 맡아온 ‘열린 교육’으로 유명한 경남 거창고등학교는 군사정권시절 교육계와 마찰을 빚으며 세번이나 문을 닫을 뻔했다. 하지만 매번 그는 “타협하느니 차라리 학교 문을 닫는 것이 인격적으로 바른 교육이 된다”며 버틴 일화는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2004년부터는 충북 괴산군 청천면에 새로 일군 풀무원농장으로 거처를 옮기고 농장 인근에 평화원 공동체를 세워 한평생의 꿈인 공동체 운동을 지속하며 ‘생명존중’과 ‘이웃사랑’의 가치를 구현하는 데 일평생을 바쳤다.

그는 유기농을 통해 환경보호와 보존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1992년 녹색인상, 1995년 유엔 글로벌 500’ 상, 1997년 국민훈장 동백장, 1998년 인촌상을 수상했다. 원 원장의 생명존중과 이웃사랑의 정신을 바탕으로 그의 장남인 원혜영 의원이 1981년 창업한 풀무원은 30여 년이 지난 현재 연간 매출 1조5000억원이 넘는 한국의 대표적인 식품기업으로 성장했다. 원혜영 의원의 고등학교, 대학교 동기로 사업에 동참했다가 경영권을 넘겨받은 남승우 풀무원 총괄사장은 원 원장의 고귀한 이웃사랑 정신을 이어받아 풀무원 브랜드 제품 매출액의 0.1%를 지구사랑기금으로 적립, 국내외 소외된 이웃을 돕는 다양한 사회공헌활동을 펼치고 있다.

풀무원은 풀무원의 정신적 지주인 원 원장이 평생 실천해온 이웃사랑과 생명존중의 정신을 기리기위해 충북 괴산의 풀무원 연수원인 로하스 아카데미’ 내에 원경선 원장 기념관을 설립해 그의 높은 뜻을 이어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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