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을 얻기 위해 연연하지 않겠다


등장인물 : 황준량. 토정 이지함. 퇴계 이황. 백의 제상 이지번. 농암 이현보.



“어서 오게. 내가 처가살이하니 옹색하기 그지없네.”
황준량은 반갑게 지함을 맞이한다. 동년배로서 가끔씩 어울리는 사이다. 요즘 통 얼굴을 못보다 오늘 찾아왔다. 그는 사람의 운을 공부한다고 몇 년 전부터 전국을 쏘다니고 있다. 그의 집안에서는 잡학에 빠져 있다고 걱정이 태산이다. 명문집안에 백의재상이라는 이지번의 아우다. 고려말 대학자 목은 이색의 후손이며 당대 명문 가족이다.

“교수들께서 잔칫상을 차렸는데 자네가 들어가서 술도 올리고 인사도 해야하는 거 아닌가. 더군다나 자네 스승 생각도 해야 하고, 이황선생은 일부러 나오셔서 자네에게 술잔을 따르지 않았는가.”
이지함의 말에 준량의 얼굴이 굳어진다. 밖에서 인기척이 난다. 나이 들어 느긋함이 베어나는 그는 장안의 웬만한 선비는 다 아는 농암 이현보다 당대의 유명한 관리이다.

농암은 준량을 시켜 술상이 나오도록 하면서 상석에 앉는다. 잠시 정적이 흐르더니 농암이 지함을 보면서 한마디 한다. 농암은 미간을 약간 찌푸리며 언성을 높인다.
“준량이 술상을 엎었다며. 성균관에서, 그것도 스승 앞에서.”

농암의 격한 언성이다. 잠시 침묵이 흐른다. 산전수전 다 겪은 장안의 노 관리다.
“조부님 저는 과거에 합격하고 성균관에 서성이는 그들이 싫습니다. 과거에 급제하면 백성을 이끄는데 조금도 부족함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농암 이현보는 중종으로부터 표리상(깨끗하고 바르고 일 잘하는 이에게 주는 상)을 받은 당대 최고의 관리이다. 멀리 경상도 상주 예안본향으로 과거급제의 대학자였다. 그가 고르고 골라 손녀사위로 선택한 황준량이다.

뛰어난 학식과 인품이 묻어나는 준량을 눈여겨보다가 소과에 장원하자 낚아채 듯 손녀사위로 삼았다. 문과 2인 급제하여 집안의 경사로 여기고, 잔치를 베푼지 엊그제인데 장안에 소문을 듣고 오늘 일찍 퇴궐해서 자초지종을 듣고 있었다.

그래서 준량을 질책하려고 했는데, 준량의 말을 듣고 보니 오히려 자신의 생각이 거기에 못 미쳐 한숨이 나왔다. 준량이 다음 말을 아뢴다.
“저는 장원에 연연하지 않겠습니다.”

황준량은 일찍이 한양을 오가면서 백성들의 어려움과 고통을 보고 자랐다. 관리들의 횡포와 부정부패, 어디 그 뿐인가. 지방호족들의 행패는 젊은 선비 황준량의 비위를 거슬러 왔다.

한양에서 과거 공부를 하면서 명문가족들의 나태함은 일상이요, 자손들은 지방 발령을 꺼리며 도성에 머물면서 몇 년에 몇 번만 근무지에 다녀와도 누구하나 꼬집어 말하는 이가 없다. 황준량은 백성들의 어려움을 애써 외면하면서 도성에 머무는 자들에게 일침을 가하고 싶었다.

그것이 하필이면 많은 기득권이 머무는 성균관에서 도출하고 말았다. 농암도 잘 알고 있다. 단지 젊은 황준량을 통해서 표출하리라고는 생각 못했다.
농암은 시원하게 준량과 지암에게 한 잔씩 따라 주더니 밖으로 나갔다. 명쾌한 음성이 대청마루에서 들려온다.
“과거에 합격하고 성균관에 맴돌면서 녹이나 축내는 자들, 얼굴이 화끈 화끈 거릴 거야.” “허허.”
격하면서 해맑은 소리가 농암의 귀에 스친다.


* 조순호 작가 프로필

조순호(58세) 작가는 경기 군포시에서 태생했으며 지난 1992~1997년까지 7년간 단양군 농촌지도자회원으로 활동해 회원들의 농가소득창출 및 봉사에 기여했고 같은 해 세계 최초로 회전식 버섯재배 특허를 출원해 버섯산업의 혁명에 이바지 했다.
그는 지난 1995년 제1회 세계농업기술대상(세계농어민기술상)을 수상, 1996년 충북버섯연구소를 설립했다. 1998년 단양군 농업경영인 회장(충청북도 감사), 2007년 농업기술자 단양군 지회장, 2009년 농림부선정 수출사업단 업체로 선정되어 농식품산업 브랜드 가치제고 등에 이바지한 바 있다. 현재는 신기술 농업기계 지정업체인 (주)강농(구 마늘가치연구소)에서 개발연구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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