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형 진 시인의
감성편지

대보름 날 아침입니다. 어제도 날씨가 참 맑고 좋았는데 오늘은 더 좋아지려는지 온 누리에 서리가 하얗습니다. 방문 밖이 희뿌예져서 일어난 시각이 여섯시 반, 서둘러 옷을 주어 입고 부엌에 나와 불을 지핍니다. 아내도 바로 뒤를 따라 나오네요. 대보름날은 해뜨기 전에 밥을 먹고, 더위를 팔고, 아홉 집의 밥을 얻어 와야 하고, 나무도 아홉 짐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시간이 많이 늦은 것 같습니다. 꼭두새벽에 일어나도 될까 말까 한 일인데 아침 늦게까지 자고 싶은 잠 다 잔 후에 일어나면 언제 그리 한답니까. 나물 몇 가지 만들고 오곡밥 짓는데도 벌써 해님이 산등성마루에 걸터앉아 눈을 흘기며 웃는 듯합니다.

아침은 그렇다 치고 더위는 그럼 뉘게다 팔아야 할까요? 냇가 건너에 살고 계시는 형님 내외분께 팔지 않으려거든 멀리 떨어진 마을로 내려가야 하는데 마을에도 제 더위를 팔아줄 친구는 없고 다 꼬부랑 깽깽 할머니들뿐이랍니다. 만일 그분들에게 더위를 판다면 금년 여름의 더위를 견디시지 못하고 그만! 생각하면 참 우습고도 서글픈 일이 아닐 수가 없군요.

꼽아보니 벌써 오십년 가까운 세월 저편의 일들이 오늘 아침은 바로 엊그제의 일처럼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한동네 사셨던 저희 고모할머님 손자 중에 저와 동 항렬의 동생이 한 명 있었답니다. 그의 아버지는 그 애를 딸 넷 다음에 얻은 아들이라고 튼튼하게 키운다고 보약 한 첩을 먹였는데요. 그 때문인지 이놈아가 한겨울인데도 아랫도리를 입지 않고 기차가 굴속 들락거리듯 언제나 누런 코를 훌쩍이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글쎄 이 녀석이 어느 해 보름 날 아침에 예의 그 아랫도리 훌렁 벗은 채 조리 들고 저희 집으로 밥을 얻으러 왔지 뭡니까. 토방 아래 서 있는 그 애를 보고 온 식구가 박장대소를 했습니다. 그러니 그의 나이 아마 대여섯 때의 일이었지요.

시대 변천에 따라 세시풍속도 많이 사라졌습니다. 특별한 날이라고 나물가지와 오곡밥, 부럼 따위를 준비하는 것 빼고는 더위를 파는 일도 밥을 얻으러 다니는 일도 다 옛일이 되었습니다. 쥐불놀이나 달집태우기, 줄다리기 당산제도 이곳 면소재지 서른다섯의 동네에서 겨우 서너 곳 정도만 간당간당 명맥이 이어지고 있을 뿐입니다.

예전에는 참 볼만 했지요. 밤이 되면 온 마을이 그야말로 불야성을 이루어서 밤이 이울도록 사그라질 줄을 몰랐습니다. 한 집에서 대불을 놓기 시작하면 집집마다 서로 질세라 연달아 놓는데 그 소리가 어찌나 요란한지 대체 잡귀란 놈이 있다면 놀라서 꽁지가 빠지게 달아날 수밖에 없었겠지요. 만일 우리 집에 대불을 놓지 않으면 남의 집 대불 터지는 소리에 놀란 잡귀들이 우리 집으로 몰려올게 빤하니까 온 동네가 다 불을 놓을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우리 같이 어린 꼬마들은 집 마당에 놓는 대불은 아랑곳하지 않고 온 들판을 싸돌아다니며 쥐불을 놓았습니다. 논둑 밭둑은 말할 것도 없고 조금이라도 덤불이 우거진 곳이 있으면 빼지 않고 찾아서 불을 질렀는데, 이날만은 불을 놓아도 산으로 번지지 않는다 했습니다. 다 일리가 있는 말씀입니다. 왜냐면 이때까지는 바람이 북서 계절풍이어서 산 쪽에서 불어오기 때문에 불이 산으로 번지지 않는 거지요. 하지만 보름이 지나면 바람의 방향이 남풍으로 바뀌어서 어른들은 엄하게 불을 금했습니다.

이날 달이 동산에 떠오르면 저희 같은 꼬마들이 뭘 안다고 망월이야, 망월이야 하고 외쳤는지 모르겠습니다. 잠을 자면 눈썹이 센다고 잠을 자지 않으려고 무던 애를 쓰기도 했는데 그러다가 어느덧 잠이 들어 아침에 일어나 보면 눈썹이 정말 세어져 있고 목에는 백지를 비벼 꼬아서 만든 목걸이가 걸려 있었습니다. 눈썹엔 짓궂은 형님들이 막내를 놀리느라 밀가루를 발라 놓은 것이고 백지 목걸이는 저의 명이 길으라고 아버지가 만들어 주신 겁니다.

하루 종일 굿치는 소리가 끊이지 않던 것이 결국에는 밤중 새벽까지 이어져, 먹고 살만한 집 넓은 마당에서는 어른들이 흥에 겨웠습니다. 자지러지게 이어지는 꽹과리 소리와 화톳불에 일렁이는 그림자들, 그리고 저마다 만들어 쓰고 나온 탈바가지, 신명 좋은 사람들은 훌떡훌떡 불을 뛰어 넘기도 하고 장난 좋아하는 사람들은 얼굴에 숯검정을 묻히기 예사였습니다.

 ‘눈을 감으면 지금도 들려 오는듯한 그 아련한 농악소리여’라고 시인 신동엽은 노래했는데, 굿의 흥을 보려거든 가까이서 보고 굿의 가락을 느끼려거든 멀리서 들어야 합니다.
저는 여태껏 살아오면서 멀리서 들려오는 굿 소리처럼 사람의 혼을 앗아가는 것은 없다고 여깁니다. 그런데 해를 더할수록 굿치는 소리를 들을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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