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 영 현
경북대 명예교수·한국콩연구회장



벼, 콩, 밀, 보리, 옥수수, 감자, 고구마 등 이른바 주곡작물 중 우리 민족이 가장 오랫동안 재배한 작물은 콩일 것이다. 한반도에 인류가 살아온 역사가 최소한 5만 년, 벼 도입이 1만5천 년 전이니 벼 도입 전 수만 년간 우리 조상들이 주곡으로 삼을 만한 작물은 아마도 콩밖에 없었을 것이다. 중국은 콩의 기원지가 만주이고, 따라서 콩은 중국기원의 작물이라고 하지만 만주는 분명 우리의 조상들이 살아온 땅이다.

더욱이 미국이 주로 한국, 중국, 일본에서 재배되는 콩에 관심을 두고 탐험대를 보내어 4천500여 점을 수집해간 것이 20세기 초 일인데, 그 중 4분의3이 한반도에서 난 것이라고 한다.
이는 당시 한반도에서 콩 종자의 변이가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아주 컸기 때문일 것이다. 한 종의 기원지는 그 작물의 야생종, 근연 야생종 또는 재래종의 변이가 가장 큰 곳이기 때문에 만주보다도 한반도가 오히려 콩의 진짜 기원지일지도 모른다. 이를 증명하는 것은 우리 몫이다. 만주와 한반도를 중심으로 수만 년 동안 살았던 우리는 분명 ‘콩의 민족’임이 틀림없다.

지난 30년간 재배면적 추이를 보면 밀은 6% 줄고 벼는 10%, 옥수수는 20% 증가한 데 견줘 콩은 거의 100% 증가율을 보였다. 세계적인 곡물생산 국가인 미국, 브라질, 아르헨티나의 농작물 중 제1의 수출작물이 콩이며, 곡물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중국의 경우 지난 3년간 콩 수입량이 우리나라 연간 쌀 생산량의 10배가 넘는 5천만 톤 이상이다. 식량학자들은 아무리 많은 양을 생산하여도 소비가 크게 문제되지 않는 유일한 작물이 콩이라고 할 정도로 콩은 식량으로뿐만 아니라 사료작물로서의 가치도 가장 높다.

게다가 콩은 지난 세기말부터 알려지기 시작한 다양한 기능성으로 인하여 서구에서도 식량으로서의 소비가 크게 늘고 있다. 서구에서 ‘21세기 신비의 작물’로 불리던 콩이 이제 사료용과 기름용은 물론 양식으로서도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농촌진흥청 유전자원센터에는 현재 2만5천여 점에 달하는 콩 자원이 있다. 특성을 보다 정밀하게 분석한다면 이용가치가 높은 많은 형질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더욱이 우리 산야에는 수많은 콩 유전자원을 보유한 ‘야생콩’이 지천으로 널려 있다. 이를 이용한다면 우리는 세계 어디에도 없는 새로운 콩 품종을 육성해 낼 수 있을 것이다.

필자도 우연히 발견한 녹색의 한 야생콩 계통을 재배종인 콩나물콩과의 인공교배를 통해 아마도 재배되는 콩 중 알맹이가 가장 작은 콩을 육성할 수 있었다.
더욱이 이 콩은 최고의 기능성 물질로서 학술적으로 여성 갱년기 증상을 완화하고, 골다공증과 심혈관계 질환, 전립선 관련 질환에도 예방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이소플라본’ 함량이 지금껏 알려진 세계 어느 콩 품종보다 월등히 높은 기능성 콩이다. 우리가 우리 산야에 존재하는 야생콩 자원에 대한 연구를 통해 세계의 어느 나라보다도 더 좋은 콩 품종을 만들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우리가 밥밑콩으로 즐겨 이용하고 있는 서리태만 해도 물성이 부드럽고, 수분 흡수성이 좋아 밥밑콩으로 이용하는 경우 무름성을 새로이 개발한 어느 품종보다도 우수하다.

또한 콩나물콩의 경우도 콩나물 재배수율, 콩나물을 삶았을 때의 경도와 향 등이 해외에서 개발된 소립의 콩 품종에 비해 우리 것이 훨씬 우수한 특성을 지녔다.
이와 같이 우리 콩들은 장, 두부, 콩나물, 밥의 혼용으로 수천 년간 재배돼오면서 알게 모르게 다양한 용도에 맞게 선발되어온 것이다.
저작권자 © 여성농업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