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는 올곧은 선비가 될걸세”


등장인물 : 황준량. 토정 이지함. 퇴계 이황. 백의 제상 이지번. 농암 이현보.

황준량은 즐거운 마음으로 도성을 나서고 있었다.
역관에서 타고 갈 말을 제공하고 한 명의 수행원을 붙여 주었기 때문이다.  매 역마다 필요한 것을 지원받는 그야말로 파격적인 대우였다. 단번에 신분이 급상승하는, 그래서 선비들이 과거를 꿈꾸며 염원한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황준량은 도성 밖에서 친구를 만나기로 되어 있었다. 초당 허엽 이였다 준량은 충주, 문경, 예천, 풍기로 갈 예정이었다. 안전하지만 돌아가는 길이었다. 역관이 잘 정비되고 세제 넘기도 좋았지만 얼마 전 초당이 찾아와서 정담을 나누다가 원주, 청풍, 단양, 죽령으로 길을 바꾸었다. 지름길이지만 험한 길이었다.
그것은 초당이 강릉으로 떠나는 길에 같이 동무를 요구했기 때문이었
다.
초당 허엽은 당대의 명문가 집안 자제로서, 아버지 허탄은 중추부 부사를 지냈고, 허엽 또한 소과 급제자 로 대과 공부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후에 자신의 아들 허균이 평민과 여러 혁신인사들과의 전국적인 모반이 발각되어 능지처참당하고, 허엽 또한 부관참시 당한다. 딸 허난설헌도 여류시인으로서 당나라에까지 알려져 시가 출판되고 이름을 날렸지만 가정은 파경에 이르고 비참한 심정으로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만다.  

그 모든 일들은 아버지 허엽으로부터 시작된 가훈의 기운이 스며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지식층의 젊은 선비들 사이에는 평등사상이 싹트고 있었다,
“이보게 준량, 난 성균관 일이 정말로 맘에 들어. 내 속이 다 시원해”
준량에게 술잔을 건네면서 초당이 웃었다. 준량이 조금 취한 어조로 말했다.
“고마우이. 나랑 이렇게 먼 길까지 동행하고 더군다나 원주에서 자네 가형으로부터 극진한 대우까지 받고…….”

준량은 초당의 배려에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다. 성균관에서 동문수학하는 친구이자 벗인 그가 좋았다. 초당과 헤어진 준량은 장외나루를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다. 강 주변의 좋은 경치가 피곤한 여독을 씻어내고 있었다. 장외에서 바라보이는 민가의 낡은 집들이 너무 초라해 보였다. 언제부터인가 민초들의 삶이 팍팍해지고 궁색해져가고 있었다. 준량은 먼 길을 오고가면서 항상 가슴이 뛰었다.

 “언젠가 내가…….”
단양 하진에 도착하니 날이 벌써 어두워졌다. 여기서 하룻밤만 묵고 내일은 풍기로 갈 예정이었다. 굽이굽이 죽령 길은 험했지만 관아 아전이 동행해 별다른 어려움 없이 풍기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도착해보니 뜻밖에 퇴계 이황이 있었다.
“금계, 먼 길에 고생했네.”
“예안으로 선생님을 뵈려고 했었는데 여기서 뵈니 감개무량 합니다.”

이황은 풍기에서 준량이 온다는 기별을 듣고 하루를 더 머물기로 했다. 그것은 제자에 대한 예의이고, 준량의 부모가 아침에 자신을 찾아와 감사 인사를 받았지만 오늘 준량을 만나면서 부모를 찾아뵙는 것이 예의이기 때문이었다. 주세봉 풍기군수를 비롯해 이황일행이 준량의 본가로 향했다. 아주 가까운 거리였다.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풍기 고을에 수십 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풍기군수는 정4품에 당당한 벼슬이다. 과거에 급제하면 정9품의 벼슬이 주어지는데 장원에 해당하면 정8품이 주어진다. 10년 이상 관직에 있어야 군수를 바라본다. 이황은 정7품의 성균관 최고 교수지만 나이로 치면 늦은 벼슬이였다. 그 만큼 퇴계는 직위에 연연하지 않았다.

미리 기별을 받은 금계마을에서는 큰 잔치가 벌어지고 풍기 관아에서는 말을 준비하고 머리에는 사모관대에 학의 깃을 달고 오는 황준량의 행차에 머리를 내밀며 바라보고 있었다. 특별한 이변이 없는 한 젊은 날의 급제는 정승이나 판서를 따 놓은 당상이었기 때문이다. 어둠이 깔리고 풍악소리가 잦아들자 풀벌레 소리가 요란했다.

“준량, 거기 있느냐”
준량은 인기척에 돌아 선 곳에는 아버지가 서 있었다. 아버지도 과거에 뜻이 있어 도전했지만 그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지금은 지방 교수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손녀와 색시는 잘 있느냐”
“네, 잘 지내고 있습니다.”

준량의 아버지는 아직 손녀를 보지 못하였다. 해산한 지 반년이 지나고 있기에 한양에서 그 먼 길을 오기는 어려웠다. 혼례를 치르고 한양으로 간 지 벌써 몇 년이 지났지만 준량의 처는 그 뒤 한 번도 향리에 온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준량의 부모가 한양에 갔다 오는 것 또한 쉽지 않았다. 준량은 아버지와 함께 사량채로 들어섰다. 초라하기 그지없는 초막에 퇴계와 여럿제자들이 모여 있었다. 준량은 퇴계에게 큰 절을 올렸다. 스승으로서 누추한 본가에 방문해 준 감사의 인사였다. 퇴계는 준량을 일으켜 세우며
“자네는 올곧은 선비가 될 걸세”
준량을 잘 아는 퇴계의 그 한 마디는 좁은 초막에 깊은 여운을 남기고 있었다.
글=조순호


* 조순호 작가 프로필
조순호(58세) 작가는 경기 군포시에서 태생했으며 지난 1992~1997년까지 7년간 단양군 농촌지도자회원으로 활동해 회원들의 농가소득창출 및 봉사에 기여했고 같은 해 세계 최초로 회전식 버섯재배 특허를 출원해 버섯산업의 혁명에 이바지 했다.

그는 지난 1995년 제1회 세계농업기술대상(세계농어민기술상)을 수상, 1996년 충북버섯연구소를 설립했다. 1998년 단양군 농업경영인 회장(충청북도 감사), 2007년 농업기술자 단양군 지회장, 2009년 농림부선정 수출사업단 업체로 선정되어 농식품산업 브랜드 가치제고 등에 이바지한 바 있다. 현재는 신기술 농업기계 지정업체인 (주)강농(구 마늘가치연구소)에서 개발연구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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