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보다 훨씬 많아 백성의 목 조인 ‘전별금’

장마가 늦어 날씨가 좋았다. 이미 도성을 떠난 지 두 달이 되었다. 여수에서 며칠을 묵으면서 전라 좌수사를 뵈었다.
일찍이 명성을 듣고 자신이 제주관리로 발령을 받아 이곳에 며칠 묵는다고 아뢰었다. 전라 좌수사는 준량의 임무를 몰랐다.
단지 한양에서 이름난 성균관 교수라는 것만 알았다. 너무 과격하여 제주지역으로 발령 아닌 귀양으로 생각하고 측은하게 위로했다.

장사치로 또는 보부상으로 위장한 무사와 종자는 보이지 않았다. 며칠 후 배에서 만나기로 했기 때문에 준량은 여수에 관선을 타기로 했다. 조선에서 그래도 큰 목선으로 험난하고 먼 길을 여러 번 오고가는 큰 배였다. 제주도 특산물과 육지 산물을 실어 나르고 가끔씩 조정에서 필요한 관마도 실어 날랐다.
준량은 전라 좌수사의 호의로 여러 날을 편하게 지낼 수 있었다.
전라 좌수사는 기호지방에 꽤 큰 고을의 직책이었다. 제주지역 수군과 병을 동시에 관장하고 있었다.
여러 고을에 목사, 관찰사, 군수, 현감을 두루 알고 있었다. 준량은 내심 걱정하였다. 자신의 비밀임무가 탄로날까봐 노심초사 했다.

긴 장마가 시작되니 배를 띄울 수 없어 근 한 달간 발이 묶였다.
그 사이 틈틈이 배를 타고 좌수영 지역을 돌아볼 수 있었다.
준량이 훌륭한 과거 급제자라는 것과 성균관 교수 박사를 지낸 젊은 관리라는 것을 알고 있는 관리들은 준량이 필요하다고 하면 기꺼이 안내했다. 지역에 명승도 듣고 드디어 배가 제주로 출항했다.
고대하는 승선이었다. 무사와 장사치도 타고 종자는 보부상 짐꾼으로 위장했다.
배에는 여러 명이 타고 있었는데 무사는 그 중 몇 명을 서로 알고 인사를 건네자, 장사로 만난 인연처럼 자연스러웠다.

배가 낮을 지나 어둠이 짙게 깔린 망망대해로 가로질러 쏜살같이 내달리고 있었다. 거의 이틀 만에 저 멀리 제주가 보였다.
바다가 심상치 않았다. 제주에는 바람이 많다고 들었지만 호된 신고식처럼 요동쳤다.
멀리 탐라 산이 안개비에 묻히고 파도는 거칠다 못해 산처럼 뱃머리를 후려쳤다. 배에 있는 물건들이 요동치며 파도처럼 흔들렸다.

준량은 생전 처음 엄청난 파도에 놀랐다. 일부러 제주도 때문에 울산서부터 배를 타고 거의 한 달간 살았지만 모든 것이 한순간으로 지나갔다.
천신만고 끝에 항구에 도착했다.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조금만 늦어도 곤욕을 치를 뻔 했다.
기진맥진하여 제주관아 식솔들이 부축하여 내렸다. 온몸이 땀과 물로 젖어 몰골이 물에 빠진 생쥐 꼴이었다.

우선 어둡기 전에 객사에 짐을 풀었다. 무사와 종자는 주막으로 향했다. 제주에는 수군만호가 전부였다. 제주도에는 목사가 삼권을 쥐고 있었다. 한여름의 더위가 시원하게 느껴질 정도로 바람이 제법 불었다. 사방 삼백 리 고을이라 한 바퀴 도는 것은 무리였다.
관아에서 며칠 몸을 추수린 후 서부 상방산 대정으로 떠났다. 제주 목에는 팔도를 유람하는 양반 자제 행세를 했다.

무사와 종자는 식솔과 노비로 위장했다. 제주에 온지 십 여일 만에 뭍으로 가는 배에 몸을 실었다.
이번에는 강진 병영 이였다. 날씨좋은 날을 택했는지 배는 순조로운 항해였다.
조선시대에 가장 먼 뱃길은 제주목 이었다. 배외에는 길이 없었다. 배 3척이 동시 떠났는데 그중 한 배는 사람이었고 2편은 목사가 전별금으로 얻어가는 것이었다.
전별금은 항시 어느 관리나 조금씩 얻어가는 것이 관례였지만 해도 너무 심했다.
나라에 내는 세금보다 훨씬 많아 백성의 목을 조였다. 따라서 직책에 따라 관행처럼 전별금을 챙겨 제주를 떠나니 고을 백성의 고통이 심했다. 무사가 입을 연다.

“저 중 절반은 조정 관리한테 가지요.”
준량은 이마를 찌푸렸다. 강진은 도자기로 유명했다. 고려청자의 고장 더 나아가 조정의 고급자기는 강진 산이었다.
조정은 윤형원의 횡포가 극심했다. 애첩 정난정의 축재(蓄財)는 나라 안에 소문이 자자했다. 각 고을의 수령들은 임기가 끝나면 어김없이 재물을 모아 뇌물로 바쳤다.
각 고을은 기강이 해이해졌고 명종 임금도 그 내용을 잘 알고 있었다. 드러내지 말고 암행하는 것은 참으로 힘들었다.

특히 나라를 지키는 군사로서 병영과 수영을 특정 지어 암행하라는 어명은 그들의 기강이 문란해지고 재물을 탐한다는 원성 때문이었다. 
전주는 왕조의 본이였다. 부사, 관찰사, 병영 등 기호 지방의 관청이 몰려 있었다. 공주 부여의 백마강을 따라 모처럼 신선처럼 유람을 했다.
무사와 종자도 처음으로 긴장을 놓았다. 벌써 반년의 긴 시간이었다. 출발할 때 보다 훨씬 초라해졌다. 충청도 홍주 관아는 수영과 병영이 동시에 있는 군사 요충지였다.

산물이 흔해서 조정의 고관 자녀들이 수시로 임지를 택하는 곳이었다. 절도사들의 교체와 수령의 이직이 잦을수록 지방의 기득권을 가진 세력들은 더없이 좋은 기회를 잡았다.
수령과 병, 수영 절도사들의 뇌물을 걷고 그 중 일부는 자신들이 챙겼다. 눈에 보이는 부정이 성행했다.
준량은 서둘러 도성으로 향했다. 수원 유수부에 깨끗한 별체가 마련되어 있었다. 준량 일행은 그곳에서 그간 암행한 내용을 정리했다.

무사는 수 년 전 병과에 합격한 인물이었고 종자는 지난 해 잡과에 합격한 인물이었다. 준량만 문과 급제로 명종이 직접 대면한 암행어사였고 무사와 종자는 승지원에서 추천 수행 어사였다.
철저히 신분을 속이면서 수행했는데 준량만 신원이 확인되고 우두머리로서 행동했고 다른 사람들은 승지만 알 수 있는 철저한 암행이었다. 무사와 종자가 보통이 아니라는 것만 느꼈었다.
준량은 그들이 적고 말한 내용을 자신의 의견과 취합하여 명종에게 직접 올렸다. 참으로 긴 시간의 여정이었다. 준량이 관사에 들어서자 노비가 반갑게 인사를 올렸다. 식솔들이 풍기로 가서 적막하기 그지없었다. 풍기 본가에 머무는 식솔들을 그대로 있게 할 작정이었다. 도성의 생활이 준량에게는 맞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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