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부할 수 없는 아름다움, 황제를 타락케 하다

  
 
  
 
양귀비(719~756)의 본명은 양옥환이다. 포주(蒲州) 영락(永樂)이라는 곳에서 관리의 딸로 태어났으니 어린 시절이 궁핍하진 않았으나 일찍 아버지를 여의었다. ‘옥환’은 숙부 양립(楊立)의 집에서 자랐다. 한 살 한 살 나이가 먹어가면서 옥환의 눈부신 미모는 빛을 발했다.

옥환이 십대 초반에 이르러는 그녀를 보는 뭇 남성들마다 왠지 모를 안타까운 한숨을 뱉어내야 했다. 총명하고 당돌했던 옥환은 가무를 익히면서 그 이름이 세상에 더욱 알려지게 된다. 마침내 17세가 되던 해에 당나라 황제 현종의 아들인 ‘이모(李瑁)’의 비(妃)로 간택돼 궁궐로 들어간다. 양귀비, 그 파란 만장한 일생의 시작이었다.

남편의 아버지를 선택하다
왕자비로 생활한 지 어언 5년 여.
20대 초반이 된 옥환의 아름다움은 절정에 이르러 있었다. 거부할 수 없는 그 아름다움은 궁중의 많은 남성들을 애타게 했으나 황자비인 그녀에게 감히 추파를 던지는 이는 없었다.

그 안타까운 군상들 중에는 60을 바라보는 한 주책덩어리(?) 노인도 있었으니 그는 다름 아닌 시아버지 ‘황제 현종’이었다.
며느리를 볼 때마다 야릇한 감정이 솟아나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안 보면 죽을 것 같이 됐다. 욕정인지 연모인지 구분이 안가는 요상한 마음속에 그녀를 생각하면 숨 쉬기도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아~ 내가 아들의 아내를 탐하고 있다니. 이게 무슨 망측한 일이란 말이냐. 그러나 저 아이를 안보면 이제 견디지 못할 것 같다. 이를 어쩌면 좋단 말이냐….’
이런 현종의 마음을 간신 ‘고력사’가 눈치 챘다. 고력사는 말 잘하는 궁녀 몇 명을 추렸다. 양옥환을 설득하기 위한 사자(使者)들이었다.

“황자비의 마음을 돌려 황제께 오게 끔만 한다면 너희들은 평생 부귀영화 속에서 떵떵거리며 살게 될 것이다.”
옥환의 거처에는 고력사가 보낸 궁녀들이 갖은 금은보화 선물과 함께 뻔질나게 드나들기 시작했다. 궁녀들은 갖은 감언이설로 옥환을 꾀었다.
옥환은 얼마지 않아 황제의 뜻을 따르겠노라고 전했다. 옥환의 변심은 그러나 궁녀들의 능숙한 언변에 의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래, 저 변변찮은 남편보다는 황제의 여인이 되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몰라.’
57세의 시아버지는 22세의 며느리를 취하게 됐다.
‘왕들의 일은 후안무치(厚顔無恥)라 했거늘 하물며 황제의 일임에랴….’ 또 한 번 큰 건(?)을 올린 고력사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귀비에 오르다
현종은 옥환을 만나기 전에는 성군 중의 성군이었다. 그는 좌우에 치우침이 없는 인사에 학문을 장려하고 국방을 튼튼히 해 당나라를 명실 공히 세계의 중심 나라로 굳건히 세웠다.
백성의 부담을 덜어주려 세금을 경감했고 그들의 작은 아픔이라도 직접 듣고 해결해 주려 했던 자상한 군주였다. 그러나 양옥환을 본 순간부터 명군 현종은 사라져 버린다.

황제는 옥환을 궁궐 밖에 있는 남궁(南宮)으로 옮겨 살게 했다. 강제로 아들과 헤어지게 하더니 아들 ‘이모’에게는 다른 비(妃)를 간택해 주었다. 황제는 남쪽 궁을 ‘태진궁’이라 이름 한 뒤 옥환을 여도사(女道士)로 삼았다. 태진궁을 신에게 제사하는 도교 사원으로 꾸미고 옥환을 그 사원의 사제책임자로 배치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남의 눈을 피하려는 속임수였다. 황제도 며느리를 빼앗은 파렴치한으로는 보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황제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태진궁에 들락거리기 시작한다.
“오늘은 태진궁으로 가서 하늘에 제사를 드리겠노라.”
황제는 매일같이 태진궁으로 가서 치성(?)을 드렸다. 그러나 황제의 제사가 양옥환과의 방사임을 모르는 사람은 궁안에 아무도 없었다.

옥환과의 쾌락에 물들어 가면서 황제는 정무에서 손을 놓았다. 한 달 두 달 세월이 가고 황제의 탐닉은 점점 더해져만 갔다.
옥환이 태진궁에 들어 온 지 6년이 되던 해에 황제는 옥환을 귀비(貴妃)에 봉했다. ‘양귀비’는 황제의 무한한 총애 속에서 마치 황후처럼 위세를 부렸다. 양귀비라는 든든한 배경이 있는 양씨 집안은 이 때부터 당나라 최고의 세도가문이 된다.

왕의 타락
칠월 칠석을 맞은 어느 날, 양귀비는 현종의 무릎에 누워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현종은 달빛에 비친 귀비의 아름다운 얼굴을 보며 감탄하고 있었다.

‘차라리 달님이 내 무릎위에 내려와 있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그런데 양귀비의 눈에서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는 것이었다.

“아니 무슨 일이냐? 네게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는 것이냐?”
“아니옵니다. 황제마마. 칠월 칠석은 견우와 직녀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저 아름다운 부부이야기처럼 우리도 서로만을 사랑하는 부부가 되어 하늘에서는 비익조(比翼鳥)요, 땅에서는 연리지(連理枝)가 되었으면 소원이 없겠나이다.’

비익조와 연리지는 모두 헤어질 수 없는 사이를 뜻하는 말이다. 황제는 이런 귀비가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지경이었다.
황제는 양귀비를 ‘말하는 꽃’이라고 했다. 그녀가 먹고 싶다는 것은 수 천리 밖에서도 구해 오도록 했고 갖고 싶다는 것은 아무리 많은 돈을 써서라도 반드시 구해주었다.

더 큰 문제는 인사문제였다. 6촌 오빠인 ‘날건달’ 양국충이 고위 요직에 오른 것은 많은 사람들의 빈축을 샀다. 그러나 현종은 대신들의 바른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후 양귀비의 연적이 나타나는 이변이 발생한다. 양귀비 못지않은 미모를 자랑하던 양귀비의 친언니 ‘괵국부인’이 그 주인공이다.

괵국부인은 행실이 가히 바르지 않아 그녀에게 추파를 던지는 황제의 청을 거절하지 않았다. 황제는 오랜만의 바람(?)에 단단히 맛이 들어 양귀비에게 언니를 한 번 더 궁에 들어오게 하라고 했다.
“흥! 제 언니와 무슨 짓을 하시려구요? 부끄러운 줄을 알아야지. 그렇게는 못하겠네요.” 양귀비는 황제에게 쏘아붙였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황제는 크게 노해 양귀비를 양국충의 집으로 내쫓았다. 황제와 양귀비 사이에 틈새가 벌어지기 시작한 사건이었다.
양귀비의 언니 괵국부인은 유부녀의 신분으로 황제와 놀아난 셈이지만 육촌오빠인 양국충과도 심상치 않은 사이였다.

양국충은 언니(괵국부인)와 앙숙이 된 양귀비가 자기 집에 와 있으니 여러모로 불편했다. 양국충에게 있어서 양귀비는 평생의 든든한 보험이었기에 빨리 궁으로 돌려 보내야만 했다. 양국충의 고민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흠~ 우리 가문이 저 옥환이 때문에 이렇게 영화를 누리고 있는데 저 아이가 황제에게 영영 버림을 받는다면 큰일이지. 파멸이야…’

양국충은 간신 고력사와 상의했다. 고력사는 말했다.
“양 승상. 결국 해결할 사람은 양귀비 바로 그 자신밖에 없습니다. 귀비께는 따로 제가 말씀 드릴테니 이렇게 합시다.”

뭔가 모의를 마친 고력사가 궁으로 돌아간 지 며칠이 지났다.
“폐하 화청지(華淸池)에 가셔서 아픈 머리를 달래시지요.”
고력사는 현종이 자주 찾는 화청지라는 연못으로 황제를 유인했다. 거기서 황제의 눈이 번쩍 떠지는 일이 벌어진다.

“아니! 저게 누구란 말이냐? 저 여인이 선녀냐 사람이냐?”
화청지에는 나신을 드러낸 양귀비가 섹시한 뒤태를 자랑하고 있었다. 간만에 보는 양귀비의 몸은 그 어느 때보다도 현종의 욕망을 부채질했다. 현종은 양귀비를 달래 다시 궁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현종의 애정은 이전보다 더해졌다.
양귀비의 부귀영화는 영원할 것만 같았다.<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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