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위엄과 일벌백계의 중보자

준량은 또 한번 어사로 임명됐다. 이번에는 공개적인 감찰어사였다.
도승지가 준량을 따로 불렀다. 거기에는 뜻밖에도 지난 번 자신을 수행한  무사와 종자가 있었다.
도승지는 현 비서실장에 해당된다. 정3품에 이조 참판을 겸하고 있었다.
조촐한 술상이 별채에 마련됐다. 도승지가 입을 열었다.

“지난 번 세 분이 다 고생 많았소. 황 어사만 모르고 있었는데 무사는 병과 합격자이고, 종자는 잡과 의예과 합격자요.”
준량은 깜짝 놀랐다.
 “황 어사, 서운하게 생각하지 마시오.” 도승지가 말했다.
이번 행차는 각자 임무를 부여했다. 연산군, 중종, 인종 때까지 각 고을   수령들의 업무를 꼼꼼히 챙겨 기록하라는 것이었다. 수행하는 인원도 아홉 명이나 되었다. 준량이 수장이었다. 

또한 준량이 중종, 인종 실록 편찬위원으로 정식 임명 되었다. 준량으로 보면 큰 영광이었지만 짐이 무거웠다.
지방을 감찰하면서 몇 십년 전 기록을 수집하는 것과 현직 관료들의 업무를 감찰하여 기록 보고하는 일이 어떻게 보면 엄청난 권력이었지만 올곧은   준량에게는 큰 부담이었다.
다행인 것은 무사와 종자가 있어 적잖이 안심이었다. 조정에서 큰 틀의 업무가 얼마나 치밀하고 계획적인지 깨닫기 시작했다.

중종실록은 인종이 그 대에 할 계획으로 준비하다 인종이 일 년도 못하고 병사하자 중종과 인종 두 임금의 실록을 같이 편찬하고 있었다.
실록 위원도 백삼십여 명으로 많았고 기간도 길어졌다. 승정원 기록과 당대 인물들의 지방 재직 시 내용을 취합하여 위원의 주석을 달 때 참고 자료가 필요했다.

준량은 지방 자료를 수집, 요약해서 나름대로의 평을 적는 일이었다.
또한 감찰인원을 거느리고 현 고을 수령들의 업무 감독과 검열을 동시에 수행하는 것이었다.
한 고을이 보통 5~6일 걸리는 일이었다. 먼저 역마가 준량  일행보다 10여일 일찍 고을에 연락을 취하면 그 고을의 수령과 병, 수, 진에게 준비하고 있다가 준량 일행이 도착하면 업무, 감찰, 전임 수령들의 행적 조사, 도성에서의 자료와 일치 등을 검열하는 꽤 복잡한 감찰 업무가 진행되었다.

준량은 강원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제주 등의 임무를 맡았다. 9곳의 목과 4곳의 관찰사, 8곳의 병영과 5곳의 수영 등 총 20여 곳의 감찰을 해야 하는 큰 일었다. 승지가 서찰을 한 짐 챙겨서 보내며 준량을 불렀다.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오.”
그랬다. 역사의 기록에 이름을 올리고 지방을 돌면서 왜곡된 것은 바로 잡고 수령의 잘못을 꼬집어 조정에 보고하는 임무였다.
도성을 떠나기 전에 정6품의 형조 좌랑으로 승진되어 있었다. 빠른 승진이었다.

고을의 원은 현감 정5품, 군수 정4품, 목사 정3품, 관찰사 종 또는 정3품, 부사 정 또는 종2품 등 준량보다 한참 고관이지만 감찰어사라는 왕명은 직책을 떠나 임금의 명으로 간주되었다.
명종 임금은 어머니 문정왕후와 외숙 윤형원의 독단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깨끗하고 올곧은 준량을 눈여겨보고 두 번에 걸쳐 어사로 임명, 고을 수령의 동태를 살핀 것이었다.
감찰어사의 권한은 컸다. 우선 6조의 관리들이 차출되어 감독관만 9명이고 일반 업무까지 합하면 거의 20여명에 이르는 인원이 각 고을 목, 관찰사를 지나면 관리들은 거의 탈진에 가까운 업무에 시달렸다.

각 고을의 관찰사가 업무 수행의 일부를 매 조정에 전달하는 임무를 보조했다. 관찰사는 준량  일행을 따라 관할 도를 같이 수행했다.
준량 일행도 석 달 동안 영남 기호 지방을 돌아온다는 일정도 빠듯한 일정이었다.
일전에 암행어사로 좋은 평판을 얻은 고을 수령은 모든 문서가 잘 정비되어 있었고 고을 백성의 원성도 적었다.

준량이 울분을 삭히던 고을은 미리 그 지역 관찰사 관리들이 업무를 중지시키고 관리들을 문책 후 어사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사 일행이 당도하면 그 고을의 목사 동헌 뜰에는 관할 목사를 비롯해서 관할구역 군, 현, 병, 수영 등의 수령과 관련 문서들이 각 방에 포진하고 있는 감찰어사 명에 따라 수행 조정 관리들이 세밀히 분석해 준량의 결제를 받아 처리했다.

수행한 이조, 호조, 예조, 병조, 형조, 공조 등 육조의 관리들에 의해서 감찰업무가 끝나면 형조 좌랑을 겸한 어사 준량이 법을 진행했다.
일부 부정한 수령은 곧바로 어사 왕명에 의해서 한양으로 압송하는 일도 일어났다.
어떤 곳은 준량을 미인계로 유혹했지만 준량과는 거리가 멀었다.

나이 많은 상주 관찰사는 준량이 경주를 지나 돌려보내고 진주 목에는 그 부관이 수행했다.
준량의 수행 9명 중 사간헌 사헌부 동문관 등 관리 3명도 있었다.
그들의 임무는 과거 중종, 더 멀리 연산군 때까지 기록을 관찰하여 실록에 편집하는 임무를 맡았다.
준량은 그들의 내용을 정리, 주석을 다는 지방 실록의 업무를 겸한 중종, 인종의 실록 편찬 위원이었다.
사안의 중요성 때문에 제주 목은 나주 목에서 같이 감찰하고 전주, 공주를 거쳐 마지막 충청도 충주에서 병, 수영 감찰을 끝내고 도성을 향했다.

몇 몇 수령이 파직 장계기를 올리고 한 명은 한양으로 압송하는 일벌백계의 왕의 위엄이 준량을 통해서 벌어졌다.
특히 조정에 파견된 일부 관리는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 벌을 받은 관리들은 어김없이 조정의 관리들과 연결이 닿는 인물들이었기 때문이다.
준량은 그 점에 대해서 한 겨울 기와에 고드름 떨어지듯 삭둑 삭둑 잘라버렸다. 실로 대단한 배짱이었다.

글=조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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