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형 진 시인의
감성편지


드디어 비닐하우스를 다 지었습니다. 일품을 따져보니 꼭 열 명, 즉 열흘의 시간이 들었습니다. 제 생각에 이걸 새로 짓는다면 두 명이 사흘정도 하면 될 것 같은데 뜯어둔 것을 꼭 그대로 다시 지으려니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부속 자재를 사다 쓰지 않으려고 해체한 것마다 번호를 매겨두었다가 다시 제자리를 찾아 조립하느라 특히 시간이 더 들었는데, 바닥이 좋지 않아서 반듯하지만 않을 뿐이지 튼튼하게는 되었습니다. 농협에 비닐을 주문해 두었으니 이제 며칠 후 비닐이 오면 씌우는 일만 남았습니다. 늘 겪는 일이었지만 작으나 크나 비닐하우스가 있으면 걱정 한 가지는 더 생깁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마음을 졸여야 하는 것 말이지요. 그것이 꼭 어떤 주기를 두고 일이 터져서 망가지게 되니 그럴 때마다 다시 비용이 드는 것을 생각하면 이런 것이 과연 바람직한 농사방법일까 의심스럽기도 합니다.

둘째 날 일꾼 세 명을 쓴 것 말고 일주일 동안을 혼자 했는데 봄볕과 바람에 얼마나 탔는지 얼굴이 아주 새까맣게 됐습니다. 꼭 햇빛과 바람 탓이라기보다는 애를 삭이지 못해서 더 탄 것 같습니다. 드럼통 같은 발판위에 높이 올라가서 전동 드릴로 파이프끼리 고정시키는 나사못을 박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누가 옆에서 잡아주고 들어주기라도 하면 좀 수월하기는 하겠지만, 그것이 같이 공구 들고 할 수 없는 제 아내인 바에야 차라리 다른 일을 하라 하고 저 혼자 되는대로 하느라 그랬던 것 같습니다. 피스라는 조그만 나사못 하나 박는데도 작업 위치가 좋지 않으면 힘을 제대로 쓸 수 없어 튕겨나가기 일쑤였습니다. 그럴 때마다 헛힘 쓴 팔뚝은 아프고 저리다 못해 끊어지더군요. 나중엔 드릴을 들 힘조차 없어서 배와 가슴으로 누르면서 작업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아궁이에 불 때면서 나무 한 개비 밀어 넣기에도, 수저를 들기에도, 세수를 하기에도 극심한 통증이 와서 입이 떡떡 벌어졌습니다. 날마다 파스를 갈아대는 저를 보고 제 아내는 왜 병원을 가지 않느냐고 성화이지만 일을 하지 않으면 그런대로 통증이 사라지니 말이지요.

항상 나쁘게 되풀이되는 일이지만 아플 때마다 임시 처방으로 술에 의존하게 됐습니다. 아침 아홉 시 반이나 열 시쯤 되어 한 잔 밀어 넣지 않으면 몸이 풀리지가 않아서 일이 되지 않습니다. 술 한 잔 아내 몰래 먹고 와서 하면 그제는 일이 좀 되는데 점심때가 채 못 되어서 이내 어제의 그 통증보다도 더 강력한 것이 시작됩니다.

그러면 어쩝니까. 일은 끝을 내야하니 다시 술 한 잔을 먹고 그 순간을 견디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게 술은 취하지 않고 마취제 역할만 했던 거라 약 기운이 떨어지면 통증은 더 심해질 뿐이었습니다. 몇 년 전만 해도 일을 많이 하면 근육통이 왔는데 지금은 뼛속이 못 견디게 아픈 것입니다.

아무런 능력이나 배경, 혹은 재산이 없이 오로지 몸뚱이가 밑천인 사람들만이 꼭 노동판을 떠도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저 같이 작은 땅에서 오직 몸뚱이만으로 농사짓는 사람도 일하는 것은 다르지 않은데 땅이라는 고정자산이 있다는 것이 위안이 될는지요.
그러나 이것도 판다는 것이 전제될 때 위안이지 땅이라는 것이 농사꾼에게 어디 쉽게 사고팔고 하는 그런 것이든가요? 평생 거기에 붙잡혀서 이렇게 팔다리 질질 끌고 다니며 골골대는 것이 농민인 모양입니다.


비닐하우스를 짓고 나자 주말쯤에 전국에 걸쳐 많은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가 나왔습니다. 종묘상에서 사다둔 더덕종자의 포장지를 보니 파종시기가 4월 중순까지여서 바로 밭에 거름뿌리고 갈았습니다.
비닐을 씌우지 않을 작정으로 두둑을 약 80센티미터의 너비 정도로 높직하니 만들었는데, 이것을 트랙터의 배토기를 쓰지 않는 이상 모두 삽으로 추어올려서 골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일곱 두둑, 약 150평정도 되게 본판을 만드는 데는 꼭 하루가 걸렸습니다. 이튿날 아침에 일어나니 벌써 날이 어제와는 딴판으로 달라져 있습니다. 하늘에 낀 구름과 눅눅한 기운,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이 벌써 멀지 않은 곳에 비가 몰려오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바람이 일어나기 전에 종자를 뿌려야 합니다. 아침 먹기 전에 얼멩이(어레미)로 곱게 흙을 쳐서 종자와 섞어두었다가 재촉하여 아침을 먹고 종자를 뿌립니다.

간간이 바람이 일다가 서서히 계속되고 거세집니다. 이 바람이 이제 멈출 일은 없을 겁니다. 자세를 한껏 낮추고 최대한 땅 가까이서 손을 놀려 씨앗을 뿌립니다. 더덕 종자는 솔씨나 단풍처럼 날개가 있는 탓에 바람에 날리기 좋아서 씨앗이 자꾸만 바람 따라 다른 곳에 떨어집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등에서 진땀이 나도록  팔을 흩뿌리며 속도를 더합니다. 다 끝내고 허리를 펴니 어떻게 시간이 갔는지 꿈속 같은데, 갑자기 화사하게 핀 길옆의 진달래 개나리며 매화꽃이 눈에 들어옵니다. 일 많은 봄날, 사람은 고달프고 그 고달픈 사람들만이 더욱더 힘들게 될 전쟁의 공포마저 이 나라엔 비바람 쳐오는데 그것을 아는지 꽃이 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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