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납 ‘나라목’으로 집짓고 밀거래 ‘조정관리 부패 극심’

황준량은 풍기 금계천을 거닐고 있었다. 아침, 저녁 아버지의 묘소를 지키고 있었다.
매우 한가로웠지만 근 3년간의 긴 세월이었다. 조정에서도 준량에 대한 비난이 수그러들었다.
벗인 허엽이 인사 차 들렀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초라한 움막에는 간단한 식기들과 부모 초상을 놓고 제문을 지어 읽고 효를 다했다. 허엽이 한 마디 했다.

“유능한 관리가 3년간 시묘살이 하는 것은 큰 손실이야.”
“효가 인간의 중심이 아닌가”
준량은 정색하며 되물었다.

얼마 전 들렀다면서 토정 소식을 전했다. 강 건너 관악산 기슭에 토담을 짓고 잡학에 몰두하면서 도성에는 얼씬도 안한다는 것이었다. 권신의 비위를 건드린 허엽은 잠시 직책을 파직당하고 강릉으로 낙향하고 있었다. 홍주관아에서 근무할 때 준량이 스쳐지나 갔지만 허엽은 모르고 있었다.
암행이란 직책이 비밀스럽고 준엄한 명으로 고된 직업이었기 때문이다.
수년 만에 허엽과 해우한 준량은 시묘가 끝나자 다시 조정의 공조 좌랑으로 임명되었다. 또 한 번 장안이 요동쳤다.

공조 창에 보관중인 석재ㆍ목재를 빼내어 집을 짓다 발각된 것이다. 그것도 임금의 외숙이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아무 거리낌 없이 가져다 지었는데 준량이 막은 것이다.
도성에 원성이 잦아 명종이 준량을 임명했는데 준량이 전직들이 하지 않은 일들을 과감하게 제재했다.

또한 양재역 벽서 사건으로 정권을 잡은 신흥세력들이 너도나도 남문 밖 마포나루 주변에 큰 집을 짓고 각 지방 산물을 독점하여 배를 불리고 있었다.
문서에만 있는 재물이 대부분이고 특히 목재는 관창에 쌓여있는 것이 아니라 남문 밖 사창에 쌓여 밀거래 되고 있었다.

대부분 강원도ㆍ충청도 지역에 공납으로 거두어들인 목재였지만 권력의 힘으로 빼돌린 것이었다. 준량은 상례사의 책임자로 강력히 회수하도록 명했다.
공조판서를 거쳐 임금의 재가가 나자 조정은 벌집 쑤시듯 요란해졌다. 육조의 관리들은 물론이요 삼사의 관리도 어김없이 해당되어 있었다.

어전 회의에서 명종이 나섰다.
“조정 관리들이 나라목으로 집을 지었다면서요.”
이미 판서에 오른 윤원형이 아뢴다.
“새로운 관리들의 거처를 지었습니다.”
공조판서가 나섰다.

“이미 관사는 도성 안에 있습니다. 남문 밖에 있는 집이 문제지요.”
공조판서는 준량을 두둔했다.
외숙인 윤원형이 너무 나서자 견제하기 위해 내세운 명종의 친위세력이었다.

궁중에서 권력다툼이 시작된 것이다. 명종으로서는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어머니 문정왕후와 외숙 윤원형을 견제하고 친정으로 나라를 잘 다스려 보고자 마음속으로 인재를 찾고 키우고 있었다.
그러다 준량이란 걸출한 인물을 찾았고 여러 번 관직을 주었지만 매사 실수 없이 잘해서 준량이 하는 일을 비호하고 두둔하였다.

외숙의 권력독점을 막고 친정으로 가는 길목의 마찰이라 여겼지만 삼사가 비판하자 명종도 부담을 느꼈다.
외숙이 어전에서 불만을 말하며 퇴궐하자 불쾌했지만 어머니의 비호를 받는 동안은 특별히 내칠 수 없었다.

윤원형은 애첩 정난정을 신임하고 있었다. 다방면에 재능을 발휘하고 특히 문정왕후의 손발처럼 움직이면서 매사의 일처리가 과감하고 신속하며 매끄러웠다. 단지 재물에 욕심이 많은 것이 탈이었다. 그리고 불가에 깊이 심취해 왕후와 동질이라 유교이념과의 마찰이 문제였다. 하지만 의논상대는 늘 난정이었다. 

명종의 외숙인 윤원형이 대궐을 나서 정난정과 마주 앉았다. 주상의 명으로 현재 지으려고 갖다놓은 목재들을 모조리 관창에 반납하라는 것과 또한 관련자들을 엄벌하도록 명했다는 것을 전해들은 난정이 어두운 얼굴로 대비를 찾았다.
“내가 주상께 따져야겠소.”
대비는 노했다. 임금으로 만들기 위해 얼마나 고생한 외숙을 흔한 목재 쯤 사용했다고 집까지 허물어 목재를 가져간다는 것은 불효라 여겼다.
글=조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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