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관 달
농촌진흥청 원예특작과학원장


우리나라 사과와 배 맛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가격이 비싼 편이다. 우리와 일본은 과실 등급에 따라 가격이 다른데, 과실이 크고 색이 예쁘면서 당도가 높을수록 등급이 높다. 특히 우리나라는 제례 문화의 영향으로 큰 과실을 선호해, 작은 과실은 아무리 색이 곱고 맛이 좋아도 등급이 낮아 제 값을 받지 못하고 있다. 반면 중국은 물론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과실을 무게단위로 판매하므로 과실크기가 작아도 품질이 좋으면 제값을 받기 때문에 작은 과실이 오히려 농가소득에 유리하다.

큰 과실은 적과작업에 일손이 많이 들어 작은 과실에 비해 생산비가 더 많이 들고 수확기 무렵 태풍이라도 오면 과실이 많이 떨어져 농가 피해가 매우 크다. 지난해 추석 무렵 배 주산지인 나주지방에 태풍이 내습해 50~70% 낙과 피해를 입은 농가가 여럿이다. 최근 한·중 자유무역협정이 본격 논의되고 있다. 협정이 타결되면 중국의 값싼 과실과 경쟁을 해야 하는데 지금으로는 이길 방법이 만만치 않아 농가의 걱정이 많다. 국제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지금처럼 크고 맛있는 고품질 과실을 적게 생산하는 전략만으로는 곤란하다. 그렇다면 국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략으로는 무엇이 있을까?

첫째, 생산비를 낮춰야 한다. 우리나라 사과 생산비는 중국의 5배, 유럽의 4배에 육박하고 있다. 평균 사과 생산량은 10아르에 2톤인데 비해 유럽은 4.5톤이나 된다. 한국은 크기가 큰 고품질 과실을 만들기 위해 나무 당 과실수를 적게 하여 수량성이 낮으나, 유럽에서는 우리보다 2배 이상 많이 달고 있다. 그래서 과실 크기가 작고 당도도 그리 높지 않지만 수량은 매우 많다. 유럽에서는 200그램 내외의 작은 과실로 껍질째 먹는 친환경 사과가 잘 팔린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350그램 이상의 커다란 15도 브릭스 이상의 고당도 과실을 깎아서 먹는다. 우리도 값싼 사과를 생산하려면 판매체계를 등급별에서 무게 단위로 바꿔야 한다. 마트에서 무게단위로 판매하면 농가에서의 생산량이 많아지고 생산비도 떨어지게 된다. 생산량이 많아지면 가격을 낮추어도 농가소득이 줄어들지 않는다.

둘째, 고품질의 소과 품종으로 바꿔야 한다. 주요재배품종인 배 ‘신고’는 과실이 700~800그램의 대과종으로 과실크기가 너무 작아지면 맛이 떨어지고, 과실의 중앙부에 있는 먹지 못하는 과심부분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아서 껍질을 깎고 나면 먹을 부위가 적어진다. 따라서 크기는 작아도 품질이 우수한 품종인 조생종 ‘한아름’, 중생종 ‘화산’, 만생종 ‘추황배’, ‘만황’ 등의 품종으로 바꾸어 심는 것이 좋다. 배를 제수용이 아닌 후식용으로도 구매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작고 값싼 과실을 연중 공급할 수 있는 소비자 중심의 재배를 해야 한다.

셋째, 과실 소비를 늘려야 한다. 최근 우리나라 과실 소비량은 더 이상 증가되지 않고 정체상태에 있다. 그 원인을 찾아보면 과실 가격의 폭등, 어린이와 젊은이들의 소비급감, 핵가족화로 큰 과실에 대한 부담이 커 구입을 꺼리는 점, 수입산 오렌지나 바나나처럼 쉽게 껍질을 벗길 수 없어 먹기 불편한 점 등이 과실소비 확대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크기가 작은 과실은 학교 급식이나 핵가족들도 껍질째 먹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과실 자판기 등에서도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오래 전부터 과실은 비타민이나 섬유소 공급원으로 매일 반드시 먹어야 하는 식품으로 인식되고 있다. 최근에는 저렴한 과실을 믹서에 갈아서 즉석 음료인 생과일주스로 마시는 식습관을 갖은 소비자가 늘어나고 있다.

우리나라 과실의 대명사인 사과와 배가 국제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생산비를 크게 줄이고 맛이 좋으면서도 가격이 저렴한 작은 과실을 많이 생산해야만 된다. 지금과 같이 고품질 큰 과실 중심의 생산만으로는 가격경쟁력이 없어 다가오는 시장개방 하에서 살아남기 쉽지 않다. 소비자들도 작은 과실은 품질이 낮다는 선입견을 없애고 제값을 주겠다는 의식 전환이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유통 시스템에 대한 전향적인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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