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J ‘농산물 유통의 진짜 문제와 해법’ 보고서


시장도매인제 보다는 정가수의매매 발전시켜야


“인위적인 농산물 유통단계의 축소는 자칫 농가에게 유통비용을 전가시킬 우려가 있다. 또한 도매시장에서 경매단계를 축소하려는 시장도매인제 도입은 농산물 유통의 핵심인 신속한 가격결정과 투명한 가격발견 기능을 후퇴시키고, 가격불안정성을 증폭시킬 수 있다.”
시선집중 GS&J ‘농산물 유통의 진짜 문제와 진짜 해법’ 중에서.

정권출범 초기마다 농산물 유통이 문제라는 인식은 관례처럼 되물림 됐다. 새정부 역시 다르지 않다. 복잡한 유통구조를 원인으로 지적하고, 직거래 확대를 해법으로 삼은 모양세가 역대 정권과 판박이다. 최근 민간 농정연구소인 GS&J가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농산물 유통의 문제와 해법에 대해 짚어본다.

◆ 농산물 유통은 복잡하다?… ‘일반화의 오류’

정부는 농산물 유통이 비효율적인 구조로 인해 중간상인이 독과점적 지위를 행사한다고 인식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유통구조를 단순화하고, 직거래를 확대시키는 정책을 수 십년간 펼쳐왔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의 경우 유통정책 예산 8,664억원 가운데 4,336억원이 산지유통조직, 1,296억원이 소비지 유통업체에 대한 저리융자로 지원됐다. 이는 전체의 65%에 달하는 규모다. 문제는 이 같은 지원의 이익이 누구에게 귀속될 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2011년 소비자가 지불한 농산물 가격 가운데 41.8%가 유통마진이었다. 이중 29.3%는 유통비용, 나머지 12.5%가 출하단계, 도매단계, 소매단계의 이윤이다. 농산물 유통마진의 대명사가 되어있는 고랭지 배추도 유통마진 비중은 67.2%이지만, 이중 이윤은 25.9% 였다.

그러나 일본과 대만의 유통마진은 각각 55%, 60% 이며, 미국은 73%에 달한다. 이들과 비교할 때 우리나라 농산물 유통마진이 높다는 인식은 근거가 약해 보인다. 더욱이 유통단계별로는 도매단계가 총마진의 15%, 출하단계가 24%, 소매단계가 33%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도매단계의 유통이 최적화되어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는 산지 출하와 도매단계를 뛰어넘는 직거래를 추진하고 있는 정책이 제대로된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정부의 진단대로 유통마진이 문제라면 소매단계, 그것도 대형유통업체의 마진에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 인위적 유통단계 축소…“늘어난 유통비용, 농민 부담 우려”

보고서는 중간 유통상인을 필요한 기능으로 보고있다. 시장이 필요로 하는 기능을 중간 유통상인이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그 역할이 존재할 수 있다는 인식이다.
그러나 정부가 추진하는 유통단계 축소는 기본적으로 산지수집단계와 도매단계의 단축을 의미한다. 이는 이들이 수행했던 수집, 가격결정, 가격발견, 분산, 리스크 관리 등의 기능을 다른 단계에서 수행해야 한다는 말이다.

현재 우리농업의 현실을 감안한다면 산지 수집단계나 도매단계를 건너뛰면 그 기능을 거래교섭력이 강한 소매단계보다는 산지에 떠넘겨질 가능성이 크다. 일례로 산지유통인의 밭떼기는 수확기 이전에 거래되기 때문에 농가가 감당해야 할 작황과 가격하락의 위험을 떠 안아주고 관리 및 수확작업을 대신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이 배제되면 이러한 위험과 부담은 농가 스스로 감당할 수밖에 없다.

GS&J 이정환 이사장은 “인위적인 단계 축소는 농산물 유통의 해법이 아니라, 본질 왜곡과 유통비용 증가를 농가에게 전가시킬 수 있다”면서 “단순한 유통구조 단축보다는 각각의 단계가 담당하고 있는 기능을 대신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작황과 가격위험을 회피하려는 농가를 위해 저비용으로 효과적인 수행이 가능한 공공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한다”면서 “작황위험은 재해보험제도를 발전시켜 농가들이 낮은 비용으로 재해로 인한 손실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야 유통비용이 감소하고 마진도 낮아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 “시장도매인, 가격불안정성 증폭”

도매시장은 효율적인 가격결정과 투명한 가격발견을 위해 만들어졌다. 그런데 최근 도매시장에서 쟁점이 되고 있는 시장도매인제 도입은 경매라는 유통단계를 줄이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줄어든 경매단계의 유통비용을 감소시킨 만큼 농가수취가격을 높이고, 소비자 지불가격을 낮출 수 있다는 명목이다.

시장도매인제는 현재 강서시장에서 시행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강서시장의 시장도매인제가 농가 수취가격을 높인다는 증거는 없다. 반면 경매제에 비해 출하자의 거래비용을 9.4% 상승시켰다는 연구결과를 제시했다. 상승된 거래비용은 담보비용 40%, 감시비용 25%, 탐색비용 21%, 협상비용 14% 등으로 분석됐다.

또한 시장도매인제는 양자거래라는 속성상 가격결정 기능을 위축시킨다는 연구결과도 제시됐다.  투명하고 신속한 가격발견 기능이 크게 저해되며, 가격변동성을 도리어 증가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내용이다. 아이러니한 점은 이 같은 연구결과의 발표자와 시장도매인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의 실무자가 같다는 점이다. 조직논리 앞에서 개인의 연구성과를 주장하는데 한계가 있는 것이 현실이다.

고려대학교 양승룡 교수는 “도매시장에서 경매단계를 축소하는 시장도매인제를 도입하기 보다는 상장경매의 대안으로 제시된 정가수의매매를 발전시키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고 말했다. 또한 “가격변동이 심한 무, 배추 밭떼기 비중이 80%를 넘는 상황에서 계약불이행의 위험을 제거할 수 있는 선도거래 청산소의 도입이 필요하다”면서 “가격발견 비용과 유통비용을 절감시키기 위해서는 표준등급화를 통해 상품 품질에 대한 소통을 효율화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여성농업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