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진 시인의
감성편지


‘드디어 수도를 놓았다.’ 이것은 물 때문에 늘 애성을 바치는 제 아내의 소원풀이 말이고  ‘기어이 수돗물을 집까지 끌어왔다’는 말은 비싼 돈 들여서 수도 놓는 것을 그다지 탐탁찮게 생각했던 저의 표현입니다. 마을에 수도가 들어 온 것은 약 15년 전인 것을 생각하면 저희가 수도 없이 산 것이 15년인 셈인데요, 그동안은 집 옆을 흐르는 냇물의 상류에다 엑스엘(X L)이라는 파이프를 묻어서 물을 끌어다 쓴 것입니다. 깨끗한 계곡물을 물 값도 내지 않고 써왔으니 좀 좋았겠습니까?

하지만 일 년에 봄가을로 한 번씩 가뭄이 찾아오면 상류의 냇물마저 마르는 통에 마을에서 길어다 먹느라 고생하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었습니다. 그렇긴 해도 경운기에 통 싣고 가서 물 길어오는 저는 그것을 고생이라고는 눈곱자기만큼도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물의 소중함을 깨닫게 돼서 괜찮다 생각하는데 집에서 살림하는 제 아내는 그게 전혀 아니올시다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물이 나오지 않을 때마다 다른 일이 터진 것보다도 더 많이 걱정스러워 하고 수도 놓자는 말을 버릇처럼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수도를 놓게 하려고 그랬는지 올봄에는 가뭄도 들지 않았는데 물이 속을 썩였습니다. 냇가에 물이 찰랑찰랑 흐르는데도 호스를 타고 오는 물이 잴잴거리기만 하니 애통이 터지는 거지요.

입구가 막힌듯해서 초봄의 뼈 시린 냇물 속에서 묻은 곳을 파헤쳐 거름망에 낀 이물질들을 털어냈어도 그때만 조금 나아졌을 뿐 며칠 지나지 않아서 도로나무아미타불이 되었고 호스 속에 공기가 찬듯해서 중간 밸브를 열어 공기를 다 빼내도 소용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속에 이끼가 끼었거나 어디 한군데 샌다는 것일 텐데 땅속에 묻은 사백여 미터의 호스를 무슨 수로 다 파헤쳐 보겠습니까?

처음에 이 호스를 묻을 때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한 백년은 쓸 줄 알았는데 이것도 세월이 흐르니 옛날 같지 않게 말썽입니다. 그렇다고 하여 그냥 내박쳐 두어야 할 정도로 전혀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거 고친다고 애쓰는 것 보다는 이제는 불만이 목까지 차오른 제 안식구의 유무언의 시위와 성화를 견딜 재간이 없어 저도 그만 생각을 고쳐먹기에 이른 것입니다.

수도국에 전화를 했더니 그 이튿날 바로 현장조사를 나왔습니다. 수도관이 지나가는 큰 도로에서 저희 집까지는 약 이백오십 미터, 도로 옆을 타고 오면서 냇물을 건너야 하는 공사라 계량기를 집안에다 묻기에는 삼백만원이 훨씬 더 넘을 거라고 그들은 말했습니다.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구체적인 금액이 나오니 저는 입이 벌어졌습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어떡하겠습니까. 한번 맘먹은 것이라 놓기로 하되 계량기를 그냥 도로 옆에다 묻고 거기서부터는 굴삭기를 불러대든 괭이로 파든 내 알아서 할 요량으로 그대로 견적을 내어서 고지서를 보내라고 할 수밖에요. 그러고 났더니 며칠 후에 배달된 수도계량기 설치 고지서에는 일백구만일천구백 원의 금액이 청구되었습니다. 이 돈을 납부하면 바로 공사를 시작해준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해서 도로 옆에다가 나마 거금 들여서 수도를 놓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이제 시작에 불과한 것입니다. 계량기서부터 냇물을 건너야 되는 구간은 길가에 심어진 조릿대가 울창하게 자라고 있어서 일정 너비만큼 대를 베어내고 괭이로 파야 합니다. 이 거리가 약 오십 미터. 여기는 굴삭기도 들어올 수 없는 곳인데 대 뿌리로 절은 땅을 어떻게 파고 호스를 묻는답니까? 저지르긴 했어도 참 답답하고 막막한 일이었습니다. 시작이 있으면 끝날 날도 있을까요? 심란한 생각을 내려놓고 저는 연장 챙겨들고 일에 달라붙었습니다. 그렇게 괭이로 파서 하루 이틀이 지나고 호미로 파며 사흘 나흘을 견뎌서 굴삭기 부르지 않고도 기어이 수돗물을 마당까지 끌어오게 된 것입니다.

제 무모한 인내심이 가져온 빛나는 승리의 순간이었던 셈이지요. 이렇게 되니 돈 많이 든 것에 대한 탐탁찮은 생각도 사라지고 오직 저에 대한 자부심만 넘치는 것이었는데요. 돌이켜보면 고비랄 것도 없는 제 인생의 고비마다 늘 이렇게 막고 품는 식의 방법으로 견뎌와 버릇해서 이 성품은 죽도록 변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내선에 연결하기 전에 맨홀 밸브하나 묻는 일만 남겨두었지만 그것은 재료 준비해서 다음에 해야 할 것 같기에 저는 우선 더덕 밭에서 풀을 뽑고 있던 안식구를 불러 호스 끝에 임시로 달아 놓은 밸브를 가리키며 그토록 원하던 그 통수식이란 것을 한번 해 보라고 했습니다. 실감이 나지 않은지, 조금은 멋쩍은지 제 아내는 잠시 쭈뼛거리며 못 이기는 척 물을 틀더군요. 그때 슬몃 웃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돌아서서 다른 일을 하는 척하며 이렇게 말했지요. “이제 물 때문에 이러쿵저러쿵 할일 없을 테니 무슨 재미로 살지?” “그러니까 더 좋지 뭐!” 하지만 꼭 더 좋기만 할까요? 이러쿵저러쿵 하지 않는 시간에 무슨 고상한 철학을 논하게 될는지는 모르지만 뭔가 소중한 것을 잃어가며 우리는 자꾸만 세상의 질서에 스스로를 길들여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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