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형 진 시인의
감성편지


한 달 넘게 세워두기만 했던 차를 할 수 없이 폐차했습니다. 출고된 지 만22년, 그동안 이사람 저사람 손을 거치다가 저한테 와서는 5년3개월만입니다. 워낙 나이가 많은 차라 여기저기 낡고 찌그러져서 볼품은 없었지만 그래도 크게 고장 나서 특별히 속 썩인 일은 없는 차였습니다. 그런데 부품을 구하기 어려워서 바꿔주어야 할 소모품들을 제때 바꿔주지 못하니, 사람으로 말한다면 대여섯 군데가 동시에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하고 일만 하는 격이라고나 할까요? 차가 마지막으로 멈춘 것은 바퀴 때문이었습니다. 폐차장을 돌아다니며 구해 둔 거의 새것과도 같은 타이어를 바꿔 낀지 얼마 되지 않은데 앞에 낀 것 하나가 불량품이었는지 심하게 닳아 철사가 나오고 뒤틀려서 그만 펑크가 나버린 것입니다. 예비타이어도 써버린 상태고, 그렇다고 수명이 다 된 차에 새것을 끼울 수는 없는 노릇이라 또 이곳저곳 폐차장에 알아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 달이 되도록 제차에 맞는 것은 나오지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야말로 눈물을 머금고 폐차하기로 결심한 거지요. 하지만 제게 와서 5년 넘게 힘겹게 굴러다니며 저를 도왔는데 이제는 그걸 바랄수가 없으니 참 안타까웠습니다. 견인차에 끌려 폐차장에 가서 등록말소 한 장에 서명을 하면 제차는 이제 조각조각 분해되고 압착기에 눌려서 형체도 알아볼 수가 없을 텐데 그렇게 막상 폐차장 한구석에 세워진 차를 보며 돌아 나오려니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서 저는 차 앞에 오랫동안 서있었습니다. 사무실 창문 안에서 여직원이 내 마음을 이해한다는 것인지 물끄러미 쳐다보더군요. 생명 있는 것과 없는 것의 경계가 어디쯤에 있는지 눈앞이 흐릿해져서 서둘러 폐차장 을 나섰습니다만 마음은 하루 종일 언짢기만 했습니다.

지나간 이야기지만 이런 꼴을 겪지 않으려면 처음부터 차를 갖지 않았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차가 굳이 필요 없는 사회를 꿈꿔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의 사회 질서는 자동차에 기대지 않고는 살아가기 어려운 형태로 너무 멀리 와버린 것 같습니다.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된 것이지요. 자동차로 인해 고갈되는 자원, 파괴되는 환경과 그에 따른 기후재앙을 생각해보면 한 사람 한 사람 가치관의 전환과 함께 자동차를 자꾸 줄여나갈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할 텐데 지금의 정책은 그 반대인 듯합니다. 자동차를 갖고 안 갖고의 문제가 사적 영역이 아닌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로 차는 우리 몸의 일부라고 여기게 되었고 앞서 말한 문제들은 전기차, 수소차 따위의 기술과 바꿔 버리는 듯합니다.

이야기가 조금 옆길로 갔습니다만 우선 당장 차가 없으니 아닌 게 아니라 조금 불편해졌습니다. 제가 꼭 나가야 하는 일은, 제 집에서 15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 있는 대안학교에 일주일에 한번 애들을 가르치고 오는 것과 모내기 준비 때문에 그 중간쯤에 있는 논에 왔다 갔다 하는 일인데요, 시골이라 시간마다 차가 있는 게 아니어서 차 시간에 맞추려니 한번 출입하면 보통 한나절씩 걸렸습니다. 아마도 사람들이 이게 견디기 어려워서 차를 사지 않나 싶습니다. 차는 언제라도 주인이 원하는 때에 원하는 장소에 데려다주는, 최고로 충성된 하인이니까요. 사실 우리는 그것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자동차에 더 많이 예속되고 중독되는 것이겠지요.

잠깐이긴 했지만 버스를 타는 경험은 참 새로웠습니다. 저는 예전에 한 삼년 가까이 차를 갖지 않아본 경험이 있어 제 혼자 몸 돌아다니는 데는 처음 한두 번을 빼고는 별 불편을 느끼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버스를 타는 것이 더 편하고 안전하고 여유로웠다고 할까요, 제가 몰던 차가 낡고 위험한 차여서 상대적으로 더 불안했던 이유도 있었겠습니다만 운전자와 피운전자가 느끼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적어도 버스에 올라타서 목적지에 가는 시간만큼은 내게 강제적으로(!) 주어진 자유와 성찰의 시간이었습니다. 멀리 떠나는 여행 못지않게 주변에 보이는 사물과 제자신이 객관화되는 것 말입니다. 자가용을 몰면 목적지만 보이는데 여기서는 경유지와 타는 사람과 그들의 생활까지 다 보이더라는 것이지요.

시간이라는 게 참 묘해서 ‘무엇을 얼른 해놓고 그 나머지를 즐기면 되겠지’라고 생각하지만 ‘그 무엇을 천천히 하는데서 즐거움과 여유가 생기는 것’이 시간인 것 같습니다. 전혀 포기할 수 없을 것 같은 차를 놔 버렸을 때 느끼는 커다란 해방과 자유를 직접 경험해 보지 않으면 설명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나 하나라도 자동차 없이 살면서 깨끗한 세상 만드는데 기여한다는 자부심까지 안겨주는 그 차를 그러나 두 달여 만에 다시 갖게 되었습니다. 제 아내와 딸들이 한 이년 전부터 이런저런 잔 고장으로 속 썩이며 차를 모는 저를 보며 머리를 맞대고 뭔가 수군거리더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새 차 한번 몰아보라며 트럭 한대를 계약했답니다. 만일 차가 꼭 있어야 한다면 고물차가 제게는 적당할 텐데 이래도 되는 것인지 소심한 저는 겁이 나네요. 그러면서도 강하게 거부하지 못하는 것은 또 어떤 심사에서인지, 참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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