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을 걸고 잡는 곰의 웅담도 ‘관청이 정한 세금’
백성들, 조공으로 배정 받은 것 못 구하면 야반에 도망

지난해를 어떻게 보냈는지 알 수 없도록 바쁘게 움직였다. 새 봄이 왔지만 마소가 전답을 짓밟는 곳이 없어 백성들의 시름이 놓였다. 

신령 장날이 왔다. 이곳저곳에서 귀중한 물건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촌마다 부여된 공납을 사들이는 것이었다. 북촌 마을과 서쪽 팔공산자락 향촌이었다.

신령의 공납품 중 웅담이 여덟 냥이고 사향이 다섯 냥이면 상당한 양이었다. 자연 건조된 웅담은 한 냥에 열섬의 백미가 있어야하고 사향 한 냥은 무려 스무 섬의 백미가 필요했다. 향리들이 책임지고 거두어 납부했다.

험준한 산을 끼고 있기 때문에 약재는 많은데 군포는 적었다. 지황은 깊은 산 양지바른 곳에서 조금씩 채취하기 때문에 귀한 대접을 받았다. 작약은 보약으로 산자락 몇 군데에서 자라고 매년 약초꾼들이 다니면서 캐어오면 지역 세도가들이 사들여 다듬고 말려서 공납도 하고 진상품으로 바치고 있었다.
비록 세금은 안내지만 진상품은 세금과 같았다. 가난한 백성은 군포와 더 나아가 세곡미 등 벌어서 거의 절반은 바치고 있었다.

흉년이 들거나 수해가 나면 고스란히 빚으로 남아 삶의 압박으로 되돌아오고 있었다.
신령이 속현이 아닌 중앙 직현으로 있는 것은 높은 산과 깊은 골, 넓은 평야 등 산물이 풍부하고 영남 통행의 길목으로 나라의 요지였기 때문이다.

무지한 고을 백성은 일정한 날을 정해서 관청에 나오면 낡고 헤진 문서에 지장을 찍고 돌아갔다.
그 내용은 잘 몰랐다. 다만 세금의 양을 기록한 문서라 여겼다. 어떤 자는 자그마치 십여 섬의 곡식이 밀린 자도 있었다.

준량은 하급 관리들을 새로 뽑았다. 지난 겨울 몇 명이 나이가 들어 나가고 새로 온 것이었다. 새로 들어온 관리가 영천의 김가네 부채를 보고했다. 아주 간단했다.

김가네는 하, 추곡 합해서 수확이 다섯 섬을 넘지 않는다고 했다. 매년 성실히 납부했다고 하지만 빚은 늘고 있었다. 그 이유는 이랬다.
다섯 섬의 토지에 한 섬의 세금이 책정되었고 관리들은 반섬만 계산하고 손도장만 찍으면 나머지는 빚으로 쌓이고 있었다.

이곡으로 매년 절반씩 늘자 순식간에 몇 년 만에 십여 섬으로 쌓이고 있었다. 글을 모르는 김가는 관청에서 시키는 대로 한 것이 못 갚는 빚으로 남아 독촉이 심해지자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었다.
팔공산 최가는 웅담을 세금으로 배정 받았지만 집안에 젊은이가 몇 년 전 산행을 하다 다쳐 제대로 걷지도 못하지만 조공으로 배정 받은 것을 구할 수 없자 이웃 진사댁에 전답을 맡기고 낸 것이 화근이었다.
결국 전답은 빼앗기고 남은 것은 웅담을 대신한 빚만 쌓이고 있었다. 어떤 자는 가장이 다치자 집안에 배정한 종이를 만들지 못하고 그것이 채무로 남아 결국 재산은 빼앗기고 관청에 십여 섬의 빚으로 남아 있었다.

늙은 노모와 어린 자식을 처가 억척같이 거두었지만 하루 한 끼가 바쁜 삶이었다. 산속에 덫을 놓고 며칠에 한 번씩 깊은 산속에 들어가면 일 년에 한두 번은 곰이 잡히고 그것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고 수년에 한번 웅담을 공납하면 됐는데 다치고 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온 식구들을 데리고 야반에 산속으로 도망쳐야 할 처지였다.

늙은 부모만 없다면 어딜 가던지 숨어 살지만 그러지도 못하는 처지가 안타까웠다.
준량은 세곡미가 들어오자 그 중 일부를 약재 구입으로 사용했다.
조정에 바치는 공납을 관이 직접 구입했다. 하곡이 나오면서 관청에는 곡식이 쌓이고 예년에 없던 풍년으로 이자까지 바치고 밀린 세금까지 들어오자 관청 조세 창고에는 수년 만에 곡식으로 가득차고 있었다.

일식 삼찬이라는 검소한 반상과 마소의 횡포 등이 사라지자 고을에는 생기가 돌았지만 가난하고 무지한 일부 백성의 얼굴에는 깊은 주름과 근심이 늘어가고 있었다.
준량은 닥나무 비탈길을 걷고 있었다. 산을 개간하여 지난 해 심은 나무는 가을 쯤 종이 재료로 사용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글=조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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