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공약 달성위해 농업위기 ‘나몰라라’


정부, 보조사업 중단 등 농정예산 5조2천억 빼내기로

식량자급률 예산 등 재정지원 확대 시점에 ‘날 벼락’

농업분야 비과세·감면대상 정비…농민단체 반발 확산


박근혜정부가 국정과제를 이행하기 위해 필요한 별도의 재원이 134조8천억원이라고 밝혔다. 헌데 이를 마련키 위해 농업예산에서 5조2천억원의 세출을 줄이겠다고 부연했다. 쉽게 말해 복지사업을 벌인다고 공약한 걸 지키기 위해 농업예산에서 일정규모를 빼간다고 선언한 것이다.

비과세를 정비하고 지하경제 양성화 등을 통해 재원을 어느 정도 확보할 수 있다고 방법을 만들고 있으나, 경제전문가들의 표정은 회의적이다. 결국 앞서 언급했듯이 이미 배정한 정부 예산중에 투자우선순위를 조정하는 방법과 재정제도를 바꾸는 등의 ‘살림 쪼개기’에 나설 수밖에 없는 형편인 것이다.

정부는 해당분야에 오해가 없도록 차후 자세한 설명을 더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당하는 농업계는 울상일 수밖에 없다. 5조2천억이란 규모는 한해 농업예산의 1/3에 해당하는 대규모일뿐더러, 어느쪽부터 도려내는 작업에 돌입할지 불안이 엄습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농업분야 세출 감축 방법으로, 정책사업의 우선순위를 재조정하고 유사중복 사업을 정비하는 동시에, 기존 융자사업을 이차보전 형식으로 전환한다고 공표했다. 또 성과목표를 이미 달성했거나 성적이 저조한 농업 보조사업에 대해서는 정비작업을 통해 일몰제를 적용할 방침이다. 올해는 건너뛰고 2014~2017년까지 4년간 5조2천억원을 가져간다고 밝혔다.
어느 사업부터 계획이 물거품 될지 농업계는 암울하다.

정부는 예산이 삭감되는 사회간접자본과 농업분야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후속조치를 마련하겠다고 약속하고 있으나, 우는애 달래는 식으로 즉흥적이면서 요원한 얘기다.
당장 내년부터 8천억원(2014년 농업분야 세출감축액) 삭감되는 농업정책들은 무엇이 있는지 예측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세출감소 대상인 사업들은 진짜 줄이거나 없애도 되는 것인지 재론키 위해서다.


정권따라 변하는 중요사업

해를 넘겨 국회 통과된 올해 농업예산의 특징은 ‘박근혜정부 예산’으로 맞춰졌다는 점이다. 이를 감안할 때 이미 틀이 세워진 농정기조대로 강조되던 부분은 놔두는 대신, 장기간 추진하던 사업들을 중심으로 수술대에 오르지 않을까하는 관측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해 정부예산안 중 국회에서 예산배정이 줄어든 사업이 이번에도 그 타깃일 가능성이 크다.
올해 감액된 사업은 종자개발사업인 골든씨드프로젝드, 논소득기반다양화사업, 글로벌 K-푸드프로젝트, 한식세계화지원사업, 축산물수급관리사업, 쌀소득보전변동직불금사업, 축사시설현대화사업, 농산물브랜드육성사업 등이다.

이중 대표적인 감축 예상사업이 축사시설현대화사업이다. FTA회계로 집행되던 이 사업은 당초 지난해보다 늘어난 2천800억원이 책정됐었으나, 국회에서 사업 실소요가 의혹이란 이유로 600억원이 깎였었다. 정책자금 낭비가 심하다는 지적도 여러번 받은데다 실적이 저조한 사업으로 꼽히던 터라 감축 대상으로 지적될 공산이 크다.

융자사업이란 점도 중복되는 감축대상인 것이다. 하지만 날로 노후화가 가속되고 있는 축산시설은 축산업의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도 제고해야 할 막중 사업으로 분류된다. 더욱이 정부의 도움없이 턱없는 생산비로 적자에 허덕이는 농가들을 감안하면 더욱 뿌리칠 수 없는 사업이란 점에서 문제시되고 있다.

전년보다 570억 상당이 줄어든 축산물수급관리사업 또한 손에 꼽히는 사업 감축 요소가 존재한다는 판단이다. 우선 축종별 배정되고 있는 자조금사업비를 통합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자조금사업의 중심인 홍보사업에 대해 중복성을 지적받고 있다. 여기에 축산물수급안정, 축산기술보급 등에서 예산을 줄여도 당장 표시나지 않기 때문에 손 댈 가능성이 높다. 물론 축산업의 소프트웨어를 담당하는 사업이란 점에서 장기적인 손실이 예상된다.

대표적인 중복사업이자 전 정권을 상징하는 사업인 한식세계화지원사업과 글로벌 K-푸드프로젝트 또한 거론 대상이다. 신규사업인 글로벌 K-푸드프로젝트는 올해 박근혜 정부의 수출정책을 등에 엎고 154억원의 예산이 배정됐다. 하지만 198억의 예산이 책정된  한식세계화지원사업과 중복된다는 지적이 쇄도하고 있는 터다. 때문에 긴축재정에 돌입하게 된다면 우선순위에서 밀려날 가능성이 큰 사업이다.
농산물브랜드육성사업, 공영도매시장시설현대화사업 등도 보조사업의 효율성 등이 도마에 오르면서 감액된 예산들이기 때문에 이번 세출감축에도 거론될 소지가 높다.

문제는 중장기 미래산업인 농업에 정권 색깔을 맞춰 실패를 자초한다는 점이다. MB정부 시절인 지난해 2013년 예산 편성 당시만해도 농어촌 어린이집 시설설치비 등 107억원이 전액 삭감됐었다. 하지만 이번 정부가 들어선 올 4월 예산운용계획엔 농촌보육여건개선사업 명목으로 보육시설설치비·운영비 등이 포함되면서 지난해보다 52억원이 늘어난 327억원이 배정됐다.

밭직불제 또한 예산관련 부처협의 과정에서 품목을 늘리고, 임야와 잡종지도 포함되도록 예산을 늘려잡았으나 예산당국에 거절당했다. 이 또한 정권 확정 뒤, 국회 심의과정에서 품목이 확대되는 등 72억원이 늘어나면서 725억여원으로 배정했다.
자연재해 예산과 농작물재해보험도 4대강사업에 밀려 푸대접 받던 사업이었으나, 박근혜대통령의 공약사항으로 포함되면서 기사회생한 사례다.

“어쨌든 농업이 피해지…” 

농업계는 반발이 거세다. 공약을 살리기 위해 농업을 죽이는 행위라고 날 선 비판이 쏟아진다.
이와관련 한농연은 지난 3일 규탄성명을 내고 “이같은 예산당국 방침은 기후변화와 국제 농자재값 상승, 동시다발적 FTA 등 농업·농촌의 위기 상황에 대응한 공격적·체계적인 농업 투융자가 필요한 시점에서 오히려 이를 위축시킬 우려가 높다”면서 “여야 정치권은 ‘공약가계부’의 꼼꼼한 진단을 통해 지속 가능한 농업·농촌의 회생 및 성장을 위해 필요한 중장기 농업 투융자 및 소득·경영안정 제도의 확충·강화에도 나서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한국낙농육우협회는 지난 4일 성명을 냈다. 협회는 “개방화의 최대 피해자이자, 약자인 농민을 일으켜 세우고 농축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정부대책과 함께 재정지원 확대가 필요한 시점에서, 오히려 이를 축소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지적한 뒤 “식량안보 차원에서 농축산업의 기반유지를 위한 진정성 있는 대책을 수립해 줄 것을 정부와 정치권에 강력히 촉구한다”고 요구했다.

농학계 한 원로교수는 “당초 올 예산 편성에서 식량자급률과 관련된 예산이 사라졌다. 이 또한 농가 소득안정, 농촌복지 향상, 경쟁력 제고 등 농정의 3대축을 강조하던 박근혜정부의 농정공약과 맥을 같이 하는 항목이기 때문에 간과해선 안된다”면서 “식량자급과 관련된 예산 배정은 고사하고 아랫돌 빼서 웃돌 막는 식으로 농업정책을 교란한다면 총체적인 농업 실패를 맛볼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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