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진 시인의
감성편지


장맛비가 한차례 마른땅을 적시고 지나가자 기다렸다는 듯 다시 풀들의 세상이 되었습니다. 마당 꽃밭 텃밭 가릴 것 없이 그야말로 자고새면 풀이 한 뼘씩은 자라서 울타리를 만들고 성을 쌓을 듯합니다. 비가오고 땅이 질어서 풀을 맬 수 없는 불과 삼사일 사이에 이지경이니 윗날만 개면 호미 들고 밭 둘레라도 풀을 아니 맬 수가 없습니다. 여름 풀 중에서 가장 무서운 놈이 바랭이인데 손이 가지 않은 곳은 벌써 포기가 벌고 뿌리가 절어서 뽑으면 두레박덩이처럼 흙이 올라옵니다.

 그래도 땅이 무른지라 대개는 호미를 대지 않고도 쑥쑥 잘 뽑힙니다. 이놈들을 뽑아서 제자리에 두면 해는 나지 않고 물기는 많은지라 금세 다시 되살아납니다. 제 아내는 이런 꼴을 보지 못하여 특히 잘 죽지 않는 쇠비름 달개비 따위는 담아다가 멀리 내버립니다. 풀도 거름이니 그러려면 차라리 나무 밑에나 버리라고 해도 그 풀 자체가 보기 싫은지 잘 듣지 않습니다. 제가 매 놓은 풀마저 내다 버리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나 할까요. 그런 안식구에게 들으라고 ‘아무래도 풀 이놈들은 사람의 힘으론 이겨 먹을 수가 없다’고 저는 혼자 소리처럼 중얼거립니다.

장마철에 더덕 밭을 매면서 제 아내가 담아다 버리는 풀이 한 가지 더 늘었습니다. 바로 괭이밥입니다. 초벌매줄 때 수도 없이 올라오는 자잘한 이놈들을 보면서 다음 판엔 니들과의 전쟁이겠구나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제는 더덕 밭의 대부분을 이놈들이 점령해 버렸습니다. 그리고는 벌써 꽃피고 열매 맺어 대대손손 이곳이 식민지임을 선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봉숭아 꽃씨처럼 손대지 않아도 톡톡 튀며 나 잡아보란 듯이 사방으로 씨앗을 퍼트리는 이놈들이 그만 제 아내의 부아를 돋우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제 땅에 묻히지 못하고 내다버려지게 되던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괭이밥의 그 네이팜탄 터지듯 하는 하얀 좁쌀 같은 씨앗들의 공격을 받으면 왠지 기분이 좋아지더라고요. 손등 혹은 얼굴까지 날아와 살짝 자극을 주고 제 소임을 다했다는 듯 땅에 떨어지는 그 씨앗들은 다른 풀들의 씨앗과는 달리 애교가 있지 않던가요? 그렇다고 하여 저 길이고 밭이고 처마 밑이고를 가리지 않고 사시사철 씨앗을 날리는 민들레 씨앗을 보고 낭만적이라고 하지는 않겠습니다만 괭이밥을 이렇게 여기는 데는 제 나름 약간의 까닭이 있는 듯합니다. 저희는 어릴 때 이것을 시금초라 하여 이파리를 뜯어먹으며 그 신맛에 괭이처럼 눈을 감곤 했습니다. 봉숭아 꽃물을 들일 때 백반이라는 매염제 대신 이것을 함께 섞어 짓찧기도 했고요. 그래서인지 지금도 저는 가끔 괭이밥을 뜯어서 입에 넣고 씹어보고 해마다 거르지 않고 손톱에 봉숭아물을 들이는 안식구에게 말해주기도 합니다.

날이 더 들고 땅에 물이 빠지면 이제는 깨밭부터 매야지 싶습니다. 가뭄 통에 깨를 갈았다가 비 한번 맞고 풀들이 더 빨리 올라와서 농사를 망친 작년의 그 헛고생을 되풀이하지 않으려고 올해는 마늘 뽑아낸 비닐위에 그냥 깨씨를 뿌렸는데 드문드문 적당히 잘 났습니다. 하지만 고랑엔 풀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나서 제 안식구를 고시랑대게 합니다. 저는 늘 아무 걱정 말라고, 매다가 정 못하겠으면 예초기라도 들이대서 쓱쓱 베어 버리면 된다고, 깨 종자 잘 났으니 그게 된 것 아니냐고 안심 시키지만 무슨 풀이 됐든 김맬 거리 앞에서는 저보다 항상 걱정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화단에 풀 자라는 것 보면 사실 걱정이 되겠지요. 곡식밭의 풀 놔두고 화단 풀 먼저 잡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그런 심정을 아는지라 오며가며 보는 대로 저도 화단의 풀을 뽑아 줍니다만, 이상하게도 화단 꽃밭이 풀들로 뒤덮이면 왜 그리 보기 싫은지 모르겠더라고요. 늘 발치께에 눈에 띄어서 그런지 화단이 말끔히 정돈되어 있지 않으면 정신이 다 어수선해서 낫으로 베어내 버리고 싶은 충동이 생기기까지 합니다. 열흘 고은 자태 뒤엔 꼭 그만큼 반대로 추해지는 것은 우리의 느낌일 뿐일 테지만 왠지 자꾸 옆에 텃밭의 푸성귀들이 골고루 잘 자라는 모습과 비교되곤 합니다. 그래서 저는 속으로만 텃밭이 화단보다도 세 배는 더 아름답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논의 김은 온전히 저의 몫입니다. 올해도 풀이 엄청 났더군요. 트랙터로 로터리해주는 친구에게 올해는 모가 좀 덜 컸으니 논 좀 잘 골라 달라고 맥주까지 사주며 부탁을 했는데 너무 많이 사주어서 취해버린 탓에 그만 깊고 낮은 데가 많이 생겨버렸습니다. 거기에 키 작은 모를 심어 놓고 물을 대는데 등 나온 데까지 물을 대면 깊은 곳의 모는 더운 날씨에 목까지 잠겨서 녹아버리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물을 많이 대지 못한 탓에 풀이 몽땅 나버린 것입니다. 아직 기계 삯을 주지 않았는데 김맬 때 그 친구더러 시원한 맥주나 사들고 오라 하면 차마 거절은 못하겠지요. 이걸 일주일은 해야겠습니다. 한 필지를 손으로다 휘젓고 다니려면 지금 풀이 어리다 해도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밭하고는 달리 논에서는 이제 힘이 부쳐서 한나절 견디기도 힘이 들어 정작 따지고 보면 삼사일 일거리이지만 날짜로는 열흘이 될 수도 있지요. 이번 주까지 밭만 그럭저럭 마치고 나면 얼른 논으로 달려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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