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영 진
국립농업과학원 농업공학부 재해예방공학과


‘비’라고 하면 유명 연예인, 슬픈 노랫말 등을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감성적인 단어거나, 때론 불편하고 성가신 날씨가 생각나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최근에 빗물활용은 저비용, 저에너지의 지속가능한 물공급 방안으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이미 공공건축물의 빗물시설 설치가 의무화되었으며, 개인 빗물시설 설치 지원제도도 전국의 거의 모든 지자체에서 시행되고 있다.

농업에서는 연간 비의 양이 우리의 1/3수준에 불과한 건조기후지역 중 중국 내륙 북동부, 사우디아라비아, 아프리카에서 빗물을 활용해 농산물 생산량을 크게 증대시킨 사례가 있다. 국내의 경우 제주도 지역 온실에서 빗물을 활용하는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으며, 또한 빗물을 지하로 침투, 저장하여 용수로 활용하면서 자연적인 물 순환을 회복시키려는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최근 밭작물의 수요 및 수익성 증대에 따라 그 중요성이 커지고 있어, 노지 밭농사의 안정적인 물공급이 향후 중요한 문제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밭농사는 여건상 관개시설 보급이 어렵고, 추가적인 관정 개발도 어려운 실정이다. 이에 노지 밭농사에 적합한 빗물활용 기술개발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빗물을 모아 과연 유효한 정도의 수량을 확보할 수 있는지 우려되는 것도 사실이다. 노지 밭농사에서 모종 식재와 활착 또는 파종이 이루어지는 4~5월은 갈수기 직후라서 빗물활용이 어렵다고 생각할 수 있다. 늦가을부터 다음해 3~4월까지 강수량이 크게 감소하는 시기이나, 이 시기 우리나라 강수량은 앞에서 언급한 건조지대 국가의 연간 총 강수량과 비슷한 300~500mm 정도이다. 이 비의 30% 정도만 모아둬도 대략적으로 약 30~50일 동안은 물 걱정 없는 밭작물 영농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물론 토질, 지형, 증발산 및 침투로 인해 모을 수 없는 소량의 강우, 강설 등 여타 여건에 의해 실제 빗물을 모을 수 있는 양은 크게 다를 수 있으나, 빗물의 농업용수 활용가능성은 상당한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빗물을 모으는 방법은 다양하다. 산간 및 도서지역 경사지에 위치한 밭에서는 주변의 자연 개천으로 흐르는 빗물을 저장 장치로 유도해 모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개천 물길에 둠벙을 설치하여 비가 올 때 물을 모으기도 한다. 자연물길이 없는 밭의 경우 밭의 배수로로 흐르는 빗물을 모을 수 있을 것이다. 농산물의 처리와 보관을 위한 각종 시설물의 지붕면에서 빗물을 모아 주변 포장에 공급하는 방안도 생각할 수 있다. 실제 국내 한 친환경농산물 생산 농가에서는 저온저장 창고 시설 지붕면에 떨어지는 빗물을 모아, 주변 3만평 규모 밭포장의 친환경 약재 살포시 희석수를 빗물로만 공급하고 있다. 덧붙여 아직 과학적으로 확인되지는 않았으나, 지하수보다 빗물을 줄 경우 작물의 생장상태가 훨씬 우수하다는 것이 현장 농업인들의 경험담이다.

작물에 공급할 정도의 충분한 빗물을 모으고, 저장하기 위해서는 현장 여건에 따른 효율적인 집수, 저장 기술과 장치들이 개발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토사의 유입을 최소화 하면서 빗물을 효율적으로 모을 수 있는 집수장치, 별도의 토목 공사 없이 간단하게 설치가 가능한 빗물 저장 팩이나, 중소규모 둠벙 등이 기술적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외에 비닐 등 불투수 소재를 이용한 별도의 빗물 집수장치를 두어 농한기 동안 내리는 비를 모아서, 물이 필요할 때 사용할 수도 있다. 또한 효율적인 물관리를 위한 관수제어장치 개발을 통해 적은 물로 작물에 요구되는 충분한 수분을 공급할 수 있다면, 노지 밭농사에서 물 걱정을 크게 덜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빗물을 통해 적은 양의 물이라도 적절한 시기에 손쉽게 활용할 수 있게 되어, 작물의 생산량 및 품질 향상을 통해 농업인들의 소득 증대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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