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진 시인의
감성편지


사흘째 논의 김을 맵니다. 6월 8일에 모를 심었으니 불과 스무날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조금 게으르거나 일이 많아서 밀린 사람은 이제 모 때우고 논에서 모 타래 들어낼 때입니다만 제 논엔 벌써 나도겨풀이 한발씩이나 뻗어 나가고 피가 시퍼렇습니다. 이걸 그대로 놔뒀다간 난리 납니다. 조금이라도 어릴 때 잡지 않으면 품도 더 들고 일이 힘들어지니까요. 하지만 첫날은 그냥 논둑의 나도겨풀만 걷어내고 왔습니다.

그런데도 거의 한나절, 무슨 생각을 하다 그리 됐는지 일하러 가면서 물 한 병도 들고 가지 않은 탓에 더 하려야 할 수도 없었습니다. 한 일주일 논에서 뒹굴려면 이렇게 처음엔 가볍게 일하면서 마음도 다지고 몸도 적응시켜야 된다고 생각해서였던 것 같습니다. 논에서 일하는 것은 밭에서와는 달리 참 힘이 드니까요. 그래서 저는 여태껏 논일은 제 아내와 함께 하지 않고 저 혼자만 해왔습니다. 올해라고 다를 게 없지요. 하지만 저도 이제 나이 탓인지 종일 일하지는 못합니다. 하려면 하겠지만 그 이튿날은 아마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할 겁니다.

저 같은 유기농들은 제초 목적으로 우렁이를 논에 넣습니다. 이것도 조건이 잘 맞아야 효과를 보지 그렇지 않고서는 아무 소용도 없습니다. 우선 논바닥이 유리알처럼 골라져야 하고, 모는 좀 크다 싶게 길러야 하고, 날도 지나치게 뜨겁지 않아야 합니다. 거름도 일찍 뿌리고 가능하면 초벌 로터리도 일찍 해서 논을 순하게 해야 하지요. 이렇게 여러 가지가 맞춰져야 우렁이도 죽지 않고 일을 잘해서 풀을 잡습니다만 금년에도 저는 우렁이 덕을 못보고 우렁이 값 날리며 고생만 하는가 싶습니다. 옛말에, 멀리 있는 논은 해먹어도 밭은 못한다고 했지만 논도 멀리 있어 놓으니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모심어 놓으면 특히 유기농은 물관리가 중요한데 물꼬 한번을 보려도 차타고 왔다 갔다 해야 하고 시간도 한나절씩 걸립니다. 거기다가 제일 바쁜 오뉴월 두 달을 차 없이 지내며 자전거로 논에 다니다보니 힘은 힘대로 들고 풀은 풀대로 났습니다.

이튿날은 배낭에 새참거리와 물을 충분히 넣어서 매고 다시 자전거에 올라 논에 갔습니다. 그 시간이 약 40분. 전날 논둑에 벗어놓았던 긴 장화와 장갑을 갈아 끼고 물 몇 모금 미리 먹은 다음에 논에 들어갑니다.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백 미터나 되는 거리를 한 번에 왔다 갔다 하기 지루하고 힘이 드니 우선 풀이 많이 난 곳부터 끊어서 맵니다. 한 번 가는데 네 고랑씩 매며 갑니다. 발 디디는 두 고랑과 양팔이 닿는 두 고랑, 이렇게 잡고 나가야 풀을 놓치지 않습니다. 다른 풀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피란 놈은 하번 놓치면 벼보다 열배는 빨리 자라며 주변의 영양분을 빨아먹는 탓에 모가 자라지 못합니다.

그래서 어느 때는 피사리를 세 번도 해봤지요. 하지만 아무리 해도 피란 놈을 다 잡아낼 수는 없습니다. 사실 피가 좀 있다 해도 전체 수확량에서 거의 차이가 없지만 나중에 피가 우뚝우뚝한 논을 바라본다는 것은 농사꾼으로는 참 보기 싫은 일이더군요. 논농사는 그 남자의 얼굴이라 여겨져서요. 제 결벽증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김 다 매놓은 논에서 벼가 하루가 다르게 썩썩 일어나고 논둑도 갓 이발한 것처럼 말끔히 깎여져 있어야 집에 앉아서도 논 있는 쪽이 개운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시작이 있어야 끝이 있는 법이고, 시작이 반이라 반절은 이미 해낸 것이겠지만 몇 발 나가지 않아서 벌써 이마에 땀이 납니다. 자전거를 타고 왔기에 차타고 왔을 때보다는 더 힘이 드나봅니다. 짐작이지만 해를 보고 가늠해본 시간은 열시쯤이 됐겠지요. 그 너른 들판에 사람 하나 오가는 이 없으니 시간을 물어볼 수도 없고, 그냥 혼자 논둑에 앉아 가져간 새참을 먹었습니다. 이럴 때 조금 외롭고 서글픕니다. 왠지 처량하고요. 물이든 술이든 구경꾼도 없이 혼자 먹는다는 건,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일하는 것인데 단 며칠일지라도 잘못 사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혼자 안 먹을 수도 없는 일이지요. 꼭 배고파서라기보다는 그렇게라도 뭘 좀 입맛 다시며 쉬지 않으면 일을 못하니까요.

새참을 먹고 나서 또 한참은 그런대로 견딜 만합니다. 그러다가 열한 시 무렵부터 열두 시 무렵까지가 가장 견디기 어렵지요. 머릿속은 하얗게 비고, 어떤 노래의 한 대목이 바늘 넘는 레코드판처럼 반복됩니다. 노래로 고달픔을 잊는 게 아니고 고달픈 심정이 어느 노래의 한 대목에 투사되는 것이지요. 제가 원해서 하는 거지만 자발적 가난이라는 것도 있는 사람이나 그럴 능력이 있는 사람이 말하고 실천할 때 말이지 저 같은 사람에게는 이 순간 그것에 어떤 허위의식이 숨어있는 듯도 합니다. 다시 자전거를 타고 돌아오는 길, 무얼 하나 살게 있어서 마트에 들렀는데 문득 이 문구가 눈에 들어오더군요. 365일 코너 그리고 25시편의점, 일 년 열두 달 하루도 빠지지 않고 돈을 찾을 수 있고 24시간이 지나도 물건을 살 수 있다는 것, 하지만 농사꾼인 저에게는 해당사항이 없습니다. 얼마 전에 다시 읽은 게오르규의 25시가 생각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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