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유통 성장, 농가 수취가격 하향 압박”


새 정부 농림업 정책진단을 위한 전문가 토론회



“기본적으로 농업인들을 제값받기를 통해 안정적인 소득을 꿈꾼다. 그러나 실제 농산물 시장은 농업인들의 기대와 달리 대형유통업체, 중간 가공업체 등 대량수요처와 중간도매유통주체, 산지유통인, 저장업체들이 보이지 않는 영향력으로 인해 기대이하의 가격이 형성되는 상황이 비일비재하다.”

지난달 28일 국회에서 열린 ‘새 정부 농림업 정책진단 토론회’에서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김병률 박사가 제기한 농산물 유통의 현실이다.
‘농업인의 농산물 판매교섭력 제고방안’을 발제한 김병률 박사는 “일반적으로 농산물 시장은 농업인과 산지유통인, 농협 등 판매자가 다수이고, 구매자도 산지에서는 산지유통인, 도매시장에서는 중도매인, 소매시장에서는 소비자 등 다수이기 때문에 완전경쟁시장에 가깝다고 해석할 수 있지만, 실제는 전혀 그렇지 않다”면서 “1996년 유통시장 개방 이후 할인점 등 대형유통업체가 늘어나면서 농산물의 소매시장이 급변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발제에 따르면 대형유통업체의 농산물 구매력(buying poewr) 행사는 대량 구매의 이점을 철저히 이용하고 있다. 가락시장, 구리시장 등 대규모 도매시장의 중도매인 뿐만 아니라, 산지의 대농과 산지유통인, 협동조합 등을 벤더로 끌어들여 경쟁을 유발시키고, 이를 통해 저가 납품을 유도함으로써 할인점 특유의 상시저가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대형유통업체의 막강한 시장영향력 아래 도매시장 중도매인들은 대량의 물량을 납품가격 이하로 확보하는 과정에서 경락가격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또한 일부 중도매인은 대형유통업체의 요구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파산을 겪기도 한다.
또한 최근에는 대형유통업체가 직접 산지에 투자형식을 띤 영농회사를 만들어 전문적인 중간벤더 조직을 육성하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다.
이 같은 대형유통업체의 우월한 시장영향력은 농산물 가격을 전반적으로 억제시킴으로서 농업인의 거래교섭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경제학적으로 볼 때 대형유통업체의 신선농산물 구매전략은 생산자와 납품업체를 ‘가격착취’의 대상으로 만들고 있다.

김 박사는 “1990년대 후반 프랑스는 유통명령제의 일환으로 소매점 농산물에 구매가격과 판매가격을 동시에 표시하는 ‘동시가격표시제’를 시범 실시한 적이 있다”면서 “이는 대형유통업체의 소매시장 점유율이 높아질수록 판매자인 농업인과 유통인은 시장영향력이 약해지고, 결국 농업인들의 수취가격 하락으로 이어진다는 교훈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도매시장의 중요성도 강조됐다. 도매시장의 경매가격은 농업인의 거래교섭력을 가늠하는 중요한 지표이다. 청과물 유통량의 50% 이상이 경유되는 도매시장 정책을 어떤 철학과 논리로 이끌어 가느냐가 유통개선 방향에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또한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까지 33개 소비지 공영도매시장의 설립과 경매제도 정착은 과거 엄청난 유통비용과 부조리를 대폭 줄이고, 농가들에게 공정하고 투명한 가격을 받도록 해 준 가장 성공적인 농업정책 중 하나로 평가했다.

비판도 있다. 1990년대 후반부터 경매제의 가격불안정성을 보완하기 위해 구식 도매상제(상대매매)를 도입해야 한다는 논쟁이 지속되어 왔다. 그러나 “경제제가 문제가 있으니, 도매상제)상대매매)로 가야한다”는 논리는 정당성을 갖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김 박사는 “경매제는 공정하고 투명한 경매호가로 거래교섭력이 약한 출하농민에게는 유리한 판매방법이지만, 조직화되고 규모화된 출하조직에게는 직접적인 거래교섭력이 차단되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면서 “거래교섭력 제고 차원에서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정가·수의매매의 도입은 진일보한 정책으로 볼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농업인의 시장영향력과 거래교섭력을 제고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생산 공급량 통제·조절 △생산·유통 조직화를 통한 공동판매 △다양한 판로를 통한 유통경로간 경쟁을 제시했다.

김 박사는 “농업인의 품목 단위 조직화로 농산물 생산량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시장출하량을 조절하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시장영향력을 강화할 수 있는 핵심적인 요소”라며 “특히 판로관리전략 차원에서 소비지 도매시장의 육성은 중요하며, 그 중에서도 가락시장은 모든 거래의 기준가격이 되는 만큼 특별한 정책적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최근 발표된 유통개선 대책에 대해 “도매시장법인의 매수집하와 중도매인간 거래 허용 등 도매시장정책 변화는 시장활성화 차원에서 바람직하지만, 이로 인한 또 다른 부작용으로 담합과 시장지배력 행사 등이 출하농민에게 해를 줄 수 있기 때문에 실행과정의 보완대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의견에 대해 대관령 원예농업협동조합 곽기성 전무는 “농가의 거래교섭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조직화 규모화를 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그에 도달하기 위한 전략이 없다”고 지적했다. 곽 전무는 “정부는 생산기반을 유지하는 선에서 정책방향을 잡아야 한다”면서 “생산이 안정돼야 농가소득과 소비자 가격이 안정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북대학교 송춘호 교수는 “농산물 유통과 관련해서는 생산자와 유통업자가 함께 신뢰할 수 있는 정책이 중요하다”면서 “생산량 변동에 의해 가격이 조금만 올라도 수입농산물 방출로 일관하는 정부의 정책이 지속되는 한 농업인의 농산물 판매교섭력 제고는 공염불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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