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진 시인의
감성편지


공동체학교(대안학교)에 다니는 중2 아들 녀석이 방학이라고 해서 집에 와 있습니다. 이 학교의 방학은 7월과 8월 두 달이어서 6월 마지막 주까지만 수업을 하고는 1학기를 마쳤습니다. 그리고는 7월 첫 주와 둘째 주를 ‘장마방학’이라 하여 날이 궂으면 쉬고 좋으면 밭에 나가 김을 매거나 논의 피를 뽑고 풀을 벱니다. 장마가 시작되면 논밭이 많은 공동체는 어른식구들의 손만으로 일을 다 해나갈 수 없기 때문인데다 학생들에게도 일을 통한 교육의 필요성이 절실하기 때문입니다. 굳이 장마방학이라 이름을 지어서 일을 시키지 않아도 공동체는 바쁘면 학생들의 손을 빌립니다. 모내기와 보리 베기가 그 대표적인 것이지요.

공동체의 모내기는 공동체가 만들어진 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기계이앙을 하지 않고 줄곧 손모내기만을 해왔습니다. 벼의 간격을 넓게 해서 병해충의 해를 줄이려는 목적 때문인데 같은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짓는다 해도 이런 방법은 훨씬 더 기계에 의존하지 않는 자연농법에 가깝습니다.

공동체의 모내기는 학생과 어른들 합해 약 예순 남짓의 인원이 이틀에 걸쳐 합니다. 이때는 학부형들도 더러 와서 모내기를 돕고 서로 교류가 있는 단체나 다른 대안학교의 학생들도 와서 함께하고 풍물단체도 동원됩니다. 이제 갓 입학한 중학생들에게는 이틀의 모내기가 몹시 힘이 들겠지만 나머지는 몇 년씩 단련된 학생들이라 잘 견뎌냅니다. 사실 모내기 때는 그리 덥지도 않고 많은 손님들이 오며 풍물이 등장하고 음식이 준비되어서 무슨 행사나 축제를 하는 것처럼 공동체 전체가 들뜨기조차 합니다.

하지만 그 뒤에 이어지는 보리 베기는 참 죽을 맛일 겁니다. 날은 찌르듯 더운 데다 껄끄럽지요, 낫질은 서툴지요, 단을 묶는 것도 어렵고 탈곡은 또 얼마나 힘이 듭니까. 보리농사를 해본 옛날 분들은 콤바인 없는 보리수확의 그 괴로움을 다들 아실 겁니다.

또한 보리는 다른 월동작물에 비해 수입도 형편없습니다만 논에서의 쌀처럼 밭에서도 주곡을 생산해야 한다는 소신이 있기에 부러 고생을 합니다. 그러다 보면 유월도 반절은 훌쩍 가버리고 그걸 견디지 못한 머리 굵은 학생들 몇 명은 보따리 싸서 학교를 떠납니다. 올해도 예외가 아니어서 1학기도 마치기 전에 다섯 명이 그랬습니다. 왜 안 그러겠습니까. 개중에는 도시의 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해서 온 애도 있고, 결손가정의 비뚤어진 녀석도 있고, 이날 이때껏 제 손으로 연필 한 번 깎아 본일 없는 학생도 있는데 몸 놀려서 땀 흘려 일하는 삶이 옳은 것이라고 그 손에 낫과 호미를 쥐어주니 말이지요.

그러나 저 같은 사람이 생각하기엔 공동체에서 학생들에게 농사일을 좀 더 체계적으로 더 많이 잘 가르쳤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같은 일이라도 연장을 올바르게 다룰 줄 알고 일하는 법, 즉 일머리를 알면 쉽고 빠르고 재미가 생기는데 그러지 못하면 일을 망치기조차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일주일에 한나절 짚풀 공예를 가르치러 갈 때마다 공동체식구들에게 잔소리를 하게 되고 두 주에 한 번 집에 오는 아들 녀석은 껴잡고 앉아 일을 가르치려 합니다. 여름방학은 그러기에 더없이 좋은 시기이고요. 또한 풋기운이나마 생길 때이니 제 마음이 내키게만 만든다면 한나절 정도씩은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더니 그 말이 딱 들어맞았습니다. 비가 지짐거려 일을 하지 못했던 7월 첫 주를 제 친구들과 함께 서울 가서 까먹고 온 녀석이 나머지 일주일, 공동체에서 콩밭을 매고 집에 와서는 곧바로 제주도엘 간다고 합니다. 방학에 집일을 좀 도와주기 바라는 아비하고는 한마디 상의도 없이, 제주도가 무슨 이웃집인줄 아는 모양입니다. 말만하면 제 아비의 주머니에서는 현금인출기처럼 돈이 나오는 줄 아는 모양인가 봅니다. 그래서 야단을 좀 쳤습니다. “너 이 녀석 저번에도 서울 가서 일주일이나 놀고 왔으면서 또 어디를 간다는 게 말이 돼? 집안일을 며칠이라도 도와주고 나서 말해도 허락할까 말까인데 왜 그렇게 싸가지가 없냐?” 말하는 제 서슬이 날카로웠던지 고개를 숙이고 코를 훌쩍입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미 친구들이랑 언제가기로 약속했는데 이제 와서 어쩌란 말이냐고 앙탈이었습니다.

아빠가 돈을 주지 않으면 제 통장에 있는 돈으로 가겠다고 사뭇 당당하기도 합니다. “보세요, 아드님. 그 통장의 돈은 다 누구덕분에 생긴 돈인가요?” 저는 그만 심사가 뒤틀려서 말이 꼬입니다. 그랬더니 이 녀석 속으로 웅얼웅얼 무슨 말을 하는데 얼핏 들으니 ‘청소년 노동금지법 위반’이라는 참 기가 막힌 말씀이 나옵니다. 저 일 시키려 하는 게 그렇다는 것이지요. 이럴 때는 눈에 불이 번쩍이게 따귀를 올려붙이든지 아니면 이런 놈이야 말로 나머지 방학기간을 노동교화형에 처해야 하는데 갑자기 제가 맥이 풀려서 그만 이 사태를 어떻게 정리해야 하나 고심에 빠져 버렸습니다.

부모란 항상 자기 자식을 과대평가 하려는 마음이 있다는 것, 이제 막 독립심이 생기기 시작하는 나이인데 그걸 부모 밑에 두고 고분고분 말 듣기를 바란다고 될 일이 아니겠지요. 무엇보다도 자식은 완성된 인격체는 아닐지언정 결코 소유할 수는 없는 독립된 인격체임에는 분명합니다.
저작권자 © 여성농업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