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아래에 조그만한 초막을 짓고 싶구나

흰눈이 발목을 덮고 있었다. 이미 고인이 된 부모님께 정초의 제를 지내고 있었다. 부모님의 묘는 저 멀리 풍기, 안동, 예천이 아스라이 펼쳐지는 낮은 구릉의 언덕에 자리잡고 있었다.
아버지는 지방 교수를 하면서 준량에게 큰 기대를 했었고 그에 맞는 과거 이인 급제를 해 매우 만족해하시던 모습이 떠올랐다.
준량은 뒤따르던 동생을 돌아보며 말했다.

“저 아래에 조그마한 초막을 짓고 싶구나.”
동생은 형이 안쓰러웠다. 칠 팔세에 신동으로 소문이 나고 이십 여 년 동안 밤낮으로 공부해 과거에 합격한 동안 젊은 날의 혈기를 모두 소진하고 이제는 벼슬도 싫다는 형님, 집안의 큰 인물로 기대를 한 몸에 받던 형님이 벼슬을 버리고 금계로 숨어든 모습을 보니 불안하기도 했지만 연민으로 눈물이 앞을 가렸다.

“예, 형님. 금계천에 초막을 짓겠습니다.”
준량은 다복한 가정을 꾸리며 고향의 조상을 모시고 사는 동생이 인생의 스승처럼 느껴졌다. 처음 관직에 나갔을 때는 고향의 동생이 무능하고 초라해 보이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동생이 큰 나무처럼 느껴졌다.
뒷산의 나무를 베어다 금계천 바위에 아주 조그마한 초막이 지어졌다. 추운 겨울이었지만 성심을 다하는 집안 식구들이 고마웠다.
근거리에 있는 풍기 군에서 판자를 보내주었고 소수서원의 학생들이 띠 풀을 엮어서 시작한지 며칠 만에 아주 작지만 혼자 사색함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가끔씩 풍기 관리들이 인사차 들리면 준량의 식솔들은 가슴을 쓸어내려야만 했다. 조정에서 언제 형벌이 내릴지, 또 언제 어느 곳으로 발령을 받을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조정에서 편히 근무하면 좋은 관리로 잘 지낼 수 있지만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끝장을 봐야하는 준량을 보면서 가족들은 늘 불안과 초조함 속에서 십 수 년을 지내왔다.
차라리 고향 풍기에 머물면서 하고자 하는 공부에 전념하는 것이 생활은 궁핍했지만 오히려 마음만은 편했다.

삼판서 후예로서 가장 기대 받던 자신이 이제 초라한 초막에 찬바람 맞으며 소일하는 것이 왠지 불안함과 평온함이 교차되기도 했지만 가끔 소수서원에 강론하러 다니며 유유자적 지내는 것도 괜찮은 것 같았다. 
어느 고을이나 할 것 없이 신령과 다를 바 없었다. 백성들의 고통, 관리들의 횡포, 더 나아가 조정의 문란한 정치, 정적을 없애기 위해 음모와 술수, 무고 등 을사사화로 선비들이 사약과 귀향으로 줄줄이 도륙을 당했다.

얼마 전에는 양재역 벽서 사건으로 정적을 제거한 실세 윤원형은 왕의 외숙으로, 왕대비의 동생으로서 영상이라는 최고 권력자로 부상해 왕을 능가하는 권력으로 조선팔도를 호령하고 있었다.
준량은 가까운 고을 청풍에 토정이 머문다는 소식을 동생을 통해 전해 들었다. 목은 이색의 후손으로 한산 이씨인 토정과 그의 형인 이지번은 조정의 유능한 인재로 한양의 유명한 명문가였다.
얼마 전 윤원형으로부터 넌지시 중매가 들어왔다. 자신의 딸과 지번의 아들인 산해를 혼인시켜 사돈을 맺자는 것이었다.

이산해는 훗날 선조 때 영의정까지 오른 인물이다. 지번에게는 큰 영광이었다. 왕의 외숙으로 주상의 외사촌과 혼례를 치른다는 것은 권력과 명예, 더 나아가서는 자손 대대가 후광에 눈이 부실지경이 되겠지만 부정을 일삼고 권력을 남용하는 왕의 외숙을 지번은 모리배로 보았다. 앞길이 구만리 같은 아들에게 크나큰 흠이 되게 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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