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이 초막에서 여생을 보낼 걸세


그때 토정이 줄기차게 요구하던 조상을 단양의 구담에 모시기로 한 일을 떠올렸다. 도랑 친 김에 가재 잡는다고 했던가.
지번은 난해한 문제를 거절하기 어려웠는데 조상을 단양 구담에 모시고 청풍으로 가겠다고 임금에게 청하자 명종은 쾌히 승낙했고 윤원형도 청풍군수로 떠나는 지번을 단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토정도 형 지번을 따라 청풍으로 와 구담에 초막을 짓고 조상을 돌보며 준량을 찾았지만 준량은 며칠 동안 퇴계를 만나는 바람에 길이 엇갈렸다.
준량은 토정을 찾으려다 평생 가보고 싶었던 평해로 길을 떠나기로 했다. 그것은 일종의 도피이기도 했다. 풍기 관아에 신고를 한 준량은 한 달 일정으로 평해로 떠나려 할 때쯤 관에서 연락이 왔다.

내용은 조정에서 아직 준량에 대한 일이 마무리 되지 않았으므로 근신하라는 명이었다. 일종의 구속이기도 했다. 관리는 조정에서 일정한 녹을 받았으므로 과거 합격자는 나라에서 최소한의 생활을 보장했다.
그것은 공무로 관리자에 대한 대우였다. 준량은 소수서원의 강론도 넌지시 거절하고 퇴계와 서신을 주고받으며 성리학, 주자학 공부에 매진했다.

또 암행어사로 다니면서 지은 자신의 시집을 정리하고 평생 은거할 초막을 금계천 뒤에 자리 잡기 위해 수시로 소백산 중턱을 오르내렸다.
집안 살림살이와 잡무에 여념이 없는 집안 식구들을 멀리한 채 공부에만 매진하는 자신이 식구들에게 편협하고 무능한 인재로 보이겠지만 그런 자신에게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처와 동생, 그리고 문중 어른들이 고맙기만 했다.

모처럼 편안한 휴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었다. 농번기에 일손이 모자랐지만 준량이 하는 일이라고는 초막에 앉아 글공부와 가끔 벗들에게 안부 편지를 보내는 것이 다였다.
두 고을 건너 상주 관찰사 관리가 다녀 간지도 몇 달이 지나자 마음에 평온을 찾기 시작한 준량은 동생의 어린 자녀들에게 글을 가르치며 소일하고 있었다.

그때 이정이 찾아왔다. 반가운 벗이 오자 초막에 마주앉아 퇴계의 소식을 주고 받았다. 여러 번 조정의 관직을 제수 받았지만 모두 거절한 내용과 학식과 덕망을 갖춘 선생을 조정의 관리로 와 있으면 조정 실세들에게 명분을 주고 백성을 기만하는 것이라 여겨 계속 거절한다는 요지였다.
준량은 그것이 내심 불만이었다. 그토록 어려운 조정에 스승님이 나가 조정을 바로 잡고 백성들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시골의 조그마한 현을 통솔해보니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백성들의 무지가 더 큰 문제였고 올바른 학문을 연구해 조정의 기풍을 바로잡고 임금을 보좌할 수 있는 깨끗한 선비를 양산해 백성을 정도로 이끌 수 있는 인재양성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스승은 몸소 보여주고 있는 것이었다.
스승의 수족이 된 이정은 과거시험에 두 번 낙방하고 공부에 전념하면서 스승의 명으로 여러 고을을 방문하고 있었다.
준량은 이정에게 말했다.

“ 난 이 초막에서 여생을 보낼 걸세.”
이정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자네 앞날이 창창한 나이인데... ”
이정은 난색을 표하며 스승이 이 소식을 들으면 분명 언짢아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정이 초막에서 하루를 유숙하고 떠나자 준량은 벼슬을 포기하고 산속에 은거하기로 결심했다. 
글=조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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