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준량, 한양길에 오랜 벗 토정과 해후


풍기 관아에서 연락이 왔다. 한양에서 과거 합격자 동기 모임이 있으니 참석하라는 통보였다. 십 수 년 만의 모임이었다.
준량이 나라의 명을 거역하고 불의를 저지른 것을 동기들은 잘 알고 있었다. 동기 수장은 그런 내용을 알고 준량을 초청하여 그를 두둔하고 동기들의 결속과 힘을 과시하고 더 나아가 나름대로 지내온 일을 점검하여 좀 더 나은 방법으로 임금을 보좌하여 올바른 길을 가고자 하는 내용이었다.

처음에는 망설였다. 지난 날 조정에 근무하면서 과거 동기들의 횡포를 보고 개탄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지만 그들 스스로도 변할 수 있는 제안을 내 놓았기에 조금씩 변화한다면 더 좋을 것 같아 다녀오기로 마음먹었다.

며칠 후 풍기에서 죽령을 넘고 있었다. 많은 보부상이 동행하고 저 멀리 남도 유생들도 같이 따라나섰다.
그것은 일종의 관행이었다. 풍기 장날을 정해 각지에서 모인 보부상도 많았다. 멀리 동해는 물론이요 가까운 순흥, 봉화, 예천까지 근 백 여명의 행렬이었고 풍기 관아의 역졸과 병이 단양까지 같이 동행하였다.

죽령은 험하고 무서운 곳이었다. 풍기에서 떠나면 하루 꼬박 백리였다. 산길 백리면 고된 일정이었다.
산간지역에는 도둑이 들끓어서 관병도 좀처럼 넘지 않고 무리를 지어 넘나드는 곳이었다. 굳이 서너 명이 가야한다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문경새재로 가고는 했었다. 이삼일 덜 걸리는 길이라 장날을 택했고 여러 공무를 겸해 죽령을 넘는 것이 근자에 정착한 관행으로 굳어져 갔다.

일행에는 술과 밥까지 장사하는 상인이 따라갔다. 그들은 틈틈이 쉴 때마다 장사를 했고 점심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떠돌이 행상이었다.
더러 큰 보부상은 짐꾼을 여럿 데리고 다녔다. 단양 객사에 들어서는데 갑자기 토정이 나타나 준량의 손을 덥석 잡았다.
“황중거, 반갑구만.” 토정은 밝은 표정으로 준량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도 청풍에서 자네를 찾고자 했는데, 하마터면 헛걸음 할 뻔 했군.”
준량은 오래간만에 만난 친구의 마중에 자신이 먼저 찾아보지 못한 미안함이 앞섰다.
토정은 아침 일찍 자신이 준비한 목선을 타고 단양 구담으로 향했다. 조금 큰 목선은 한양으로 향하고 토정과 준량을 태운 목선은 강물을 따라 구담으로 향했다. 저 멀리 강가에 소를 타고 유유자적 걷는 농부의 모습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토정, 저기 소를 타고 가는 사람을 아는가?”
토정은 준량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다 지긋이 웃으며 말했다.
“나와 같이 동거하는 분일세.”
“그럼, 자네 가형 지번 선생님이신가?”

그때 강가를 걷던 소가 멈추고 그 위에 앉아 있던 지번이 배를 향해 손을 흔들자 토정과 준량이 일어나 읍하고 인사했다. 소 울음소리가 고요한 강가의 정적을 깨뜨리고 있었다.
토정은 가형을 설득해 구담에 있는 선조의 묘를 이장하고 형 지번 또한 문란한 조정을 떠나 청풍군수를 지낸 후 그곳에 자리를 잡았다.

조그만 초막을 짓고 소를 타며 강변을 오가는 것이 하루일과의 낙이었다. 토정 또한 그곳에서 조금 떨어진 언덕에 토굴을 파고 앉아 여전히 잡학에 여념이 없던 차에 준량의 소식을 듣고 단양 객사에서 준량을 맞았던 것이다. 토정은 오랜 벗이자 청렴한 준량을 이번 기회에 형 지번에게 소개하고자 했다.
글=조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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