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쌀 관세화 이미 결정”…‘굴욕적 투항’ 여론


농업계, “관세화 유보·의무수입 동결 노력 우선”

식량주권·생산기반 보호 등 논농업 대응책 부재



‘개방형 통상정책 기조하에 FTA네트워크를 확대한다’ ‘통상교섭 중심에서 산업과 통상의 연계 강화로 전환한다’.
최근 발표된 ‘새정부의 신통상 로드맵’ 말머리이다. ‘개방’ ‘산업’ 중심으로 통상교섭 지침을 바꾼다는 메시지다. 결과적으로 많은 것을 지키고 보호해야 하는 농업분야는 박근혜정부가 대외 빗장을 풀고 개방형으로 전환하는데, 장애요소로 작용하는 ‘혹’ 같은 존재다.

이러한 현 정부의 농업에 대한 불편한 심기가 ‘쌀 개방’ 문제에서부터 드러났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신통상 로드맵 발표문에서 쌀 관세화를 정부 방침이라고 천명한 것. 해당 보도자료에 따르면 우리의 쌀 관세화 유예기간이 2014년 12월 31일부로 만료 예정이기 때문에 농식품부와 협의해 쌀 관세화 정부 방침을 결정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쌀 관세화는 이미 내려진 결정이기 때문에 해당부처인 농식품부가 총대 메고 농업계를 잘 다독이란 뜻인 것이다.

쌀 의무수입량을 면제받을 수 있는 수단을 동원한다거나, 미국을 비롯한 쌀 수출국들과의 개별 협상에 필요한 아이디어를 수집한다거나, 식량보호대책 등의 노력 이전에 ‘쌀 자동관세화 개방’이란 백기를 먼저 내미는 꼴이다. 현 정부의 시각에서는 전자·자동차·석유화학 등 수출주력 상품의 앞길을 위해 제거해야 하는 ‘살생부’중 하나일 뿐인 것이다.


□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관세화’

신통상 로드맵대로라면, 판은 이미 정해졌다. 이 때문에 발생되는 분란을 어떻게 잠재우느냐가 정부의 유일한 고민이다. 
관세화의 장점만 부각시키는 일에 매진하는 이유다. 정부 산하 농업연구기관인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먼저 나섰다. 농경연은 지난 13일 토론회를 통해 ‘쌀 관세화에 대해 농민들이 대부분 찬성하더라’라고 설문조사 내용을 발표했다. 농경연은 농업관측센터 쌀 표본농가 1천282농가를 대상으로 질문해보니, 응답자의 77.7%가 쌀 관세화에 찬성하는 답을 냈다고 밝혔다. 정부가 논농사에 대해 아무런 대책을 내놓고 있지 않은 상황인데도, 농민들은 쌀시장을 개방해도 괜찮다고 얘기했다는 것이다. 관세화를 관철시키기 위해 맨 먼저 전문 연구원을 시켜 여론몰이에 나섰다는 지적이다. 

또한 농식품부의 보도자료와 관변학자를 동원한 협박성 논리 전개 또한 눈에 띠는 관세화 전술이다. 이들은 천편일률적으로 쌀에 대한 관세를 400%정도 고율로 매겨 수입하기 때문에 의무수입량보다 더 많이 들여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호언하고 있다. 오히려 관세화를 유예하게 되면 의무수입량을 더욱 늘려야 하고, 2015년부터는 매년 도입물량을 더 늘려 수입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부 관변학자는 쌀 관세화 문제는 산자부의 통상 정책 역량을 가늠하는 첫 시험대가 될 것이라며, 산자부를 사이드 지원하고 있다.
쌀 조기관세화를 주장했던 학자나 경제 전문가들도 쌀 소비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의무수입량만 늘리면, 재고처리비용이 늘어날 뿐더러 국내 쌀 산업에 미치는 영향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농식품부의 ‘쌀 관세화 하겠다’는 공식 발표는 없지만, 관세화 방침은 이미 산자부를 통해 공식화됐고 농식품부의 ‘협박 작업’의 수순을 밟고 있는 것이다.
현재 진행하고 있거나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쌀 관세화 관련, 정부 주도의 토론회나 공청회는 각본에 의한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게 농업계 전반적인 시각이다.

□‘뒷짐 진’ 정부…‘속타는’ 농민

방법을 찾지 않고, 관세화를 밀어붙이는 정부의 속내를 확인한 농업계는 비상이 걸렸다.
우선 전국농민회총연맹이 농경연의 설문조사에 대응한 현장조사 결과를 내놨다. 이에 따르면 전국 농민 1천명을 대상으로 답을 구한 결과, ‘쌀관세화를 통해 쌀시장을 전면 개방할 경우 쌀 수입량이 더 늘어날 것’이란 대답이 68.1% 나왔다. 쌀 관세화 전면개방 압력에 대해 우리 정부가 취해야할 입장을 묻는 질문에 ‘관세화유보·의무수입동결’해야 한다는 의견이 36.6%, ‘관세화유보·의무수입 확대’란 답이 10.6% 나왔다.

‘관세화 개방’을 찬성하는 농민은 19.1%인 반면, 47%의 농민이 관세화를 유보해야 한다고 답했다.
전농은 정부의 ‘불통’으로 일관하는 여론수렴 방법도 지적했다. 쌀 관세화에 대해 36.1%의 농민이 잘 모르겠다고 응답, 쌀 개방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알리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일방적인 관세화 정책은 모순이란 풀이다.

전농은 보도자료를 통해 “쌀은 단순한 시장경제 논리로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농민의 생존권은 물론 식량주권 문제와 연계된 매우 예민한 사안”이라며 “정부는 우리 농업과 농촌, 농민에 대한 종합대책을 먼저 내놔야 하고, 국내 쌀산업 보호를 위한 적극적인 통상전략을 마련해 협상에 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농업계는 또 쌀 관련 협상의지가 전혀 없는 정부를 질타하고 있다. 정부가 노골적으로 관세화 지침을 내논 상태에서는 쌀 수출국들과 협상하는 의미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수출국들은 이미 한국의 관세화 지침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형국이다. 2014년 만료되는 관세화 유예기간을 연장하거나 재설정하기 위해서는 이미 협상테이블이 마련됐거나 진행중이어야 하지만, 현재까지 협상조짐이 없는 것이 그 증거라는 전언이다.

또한 우리 정부가 관세화 카드를 이미 펼친 상태에서는, 다시 카드를 접더라도 협상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 설명이다. 즉 상대 수출국이 ‘추가 유예의 법적 근거가 약하다’거나 ‘의무수입물량을 확대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세울 경우, 관세화로 기울어진 정부 협상단이 버텨낼 의지가 있겠느냐는 분석이다.

쌀개방 협상에 앞서, 농민단체나 농학계 전문가들은 관세화를 먼저 밀어붙이겠다는 정부의 태도를 바꾸는 일이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무런 준비없이 시장을 열어주는 정부의 ‘농업말살 정책’을 질타하는 것이다.

관세화 개방을 논의하기보다 쌀 농업을 어떻게 보호하고 생산기반을 꾸려나갈 것인가의 대책이 선행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두 번(20년)에 걸친 관세화 유예기간을 뒀음에도 논농업에 대한 아무런 보호대책도 강구하지 않은 정부의 무책임이 수술 대상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린벨트 해제와 농지전용허가제, 혁신도시 개발, 산업단지 조성 등으로 사라지는 논과 밭이 한해에 평균 2만ha가 넘고 있을 정도로, 생산기반 붕괴는 가속을 밟고 있다.

2020년쯤 국내 농지가 158만ha로, 식량안보 차원에서 최소한 확보해야 할 165만ha를 밑도는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게 농경연의 예측이다. 이를 지키기 위한 대책은 전혀 갖추지 않고 있는 현실이다.

농민단체 한 관계자는 “TPP(환태평양동반자경제협력체계)와 이어지는 FTA협상 등을 감안하면 수입쌀에 고율관세를 매기겠다는 정부의 설명조차 믿을 수 없는 상황”이라며“ 더욱이 국제쌀값과 환율이 우리나라에 유리하게 전개되리란 보장이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현재 식량무기화가 진행되고 있음에도 이를 간과하는 정부의 태도는 농업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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