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형 진 시인의
감성편지


창고 겸 차고를 하나 지었습니다. 그 닥 급하지 않은 일이어서 더위가 좀 수그러들면 해도 되지만 아들 녀석이 개학해서 학교에 가버리기 전에 일을 좀 시킬 생각으로 시작했습니다. 언젠가 쓸 일이 있을 것 같아 그동안 모아두었던 나무들이 큰 몫을 했습니다. 일곱 평 남짓이나 되게 지었는데 목재소에서 돈 주고 사온 나무는 불과 4만원어치에 지나지 않았으니까요. 대신 일은 좀 더디었습니다. 굵기와 길이, 생김생김이 다 다른 나무들을 비슷한 것끼리 서로 맞추어 뼈대를 세우기 위해서 깎고 자르고 이어 붙여야 했으니까요. 좁은 비닐하우스 속에 보관 하느라 이리 옮기고 저리 옮기고 할 때는 귀찮은 마음과 함께 이런 것이 언제 쓰일까 싶은 생각이 들어 장작으로 다 때버릴까 했는데 창고가 되었습니다.

무엇 하나를 새로 만들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물건이라는 건 모으는 사람 따로, 쓰는 사람 따로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꼭 필요한 것 하나가 제게는 없고 남에게는 있을 때 찾아가서 청을 하면 “아까워서 못 버리고 놔두었는데 자네가 쓸 사람인갑네” 하며 선선히 내어주니까요. 그럴 때마다 그 재목의 쓰임자리는 처음부터 이미 결정되어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하찮은 물건 하나라도 다 제자리가 있다는 것을 알면 짓고 만드는 것 역시 다 내 것이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그것도 역시 우리가 알 수 없는 인과나 업보에 따라서 누릴 수 있고 그렇지 못할 수 있으니까요.

창고의 서까래까지 완성해 놓고 지붕은 뭘로 할까, 저것은 돈을 좀 들여야 되지 않을까 걱정을 하다가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어차피 헌 나무, 생긴 모양으로 지었으니 지붕도 재활용품을 쓰면 어떨까 싶어 고물상을 찾아가 보기로 한 것입니다. 그래서 트럭을 끌고 가 읍에 있는 고물상 네 군데를 뒤지고 다녔는데 지붕으로 쓸만한 것은 없었습니다. 제가 생각한 것은 칼라 강판이나 샌드위치 판넬 따위인데 있기는 많이 있어도 재사용을 염두에 두고 뜯어낸 것들이 아니어서 고철에 지나지 않은 것들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건재상에 들려서 지붕재료를 알아봤더니 제 창고의 경우 최소한 30만원 정도는 들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차 끌고 나온 김에 사가지고 가면 일은 수월하겠지만 그러나 내키지가 않아서 돌아 나왔습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고물상 한군데를 저기도 마찬가지려니 하고 어느 만큼 지나쳤다가 혹시 몰라서 차를 돌려 들어가 보았습니다. 그곳에 제가 꼭 필요한 게 있었습니다. 커다란 창고의 지붕을 뜯어다 놓은 것으로 짐작되는 길고 짧은 강판들이 고물상 한 켠에 다시 임자 만나기를 기다리며 차곡차곡 쌓여 있던 것입니다. 갑자기 제 눈앞이 환해지는 듯 했습니다.

주인과 흥정을 하니 kg당 600원씩만 주고 가져가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 창고의 칫수를 넉넉히 계산하여 쓸 만큼 차에 싣고 무게를 달아보니 꼭12만원 어치였습니다. 횡재입니다. 힘들게 발품을 팔았던 것은 다 잊어버리고 내가 그 물건을 만났다는 그 필연(!)이 대단하게 느껴졌습니다. 더욱이나 또 한 가지, 제 마음을 따뜻하게 했던 것은 고물상 주인 내외가 산소 절단기를 가지고 제가 요구하는 길이로 강판을 잘라 차에 실을 때였는데 임시거처로 쓰는 듯한 컨테이너 박스에서 얼굴이 핼쓱한 한 젊은이가 나와서 일을 거들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주인 내외가 등을 떠밀어서 안으로 들여보내더군요. 그것을 서너 번 반복하는 듯해서 제가 물었습니다. “아들입니까?” “몇 살이나 먹었는데 일하겠다는걸 못하게 하나요?” “스물여덟인데 감기가 들어서… 나오지 말고 쉬라고 해도 자꾸 저랬싸요.”

돌아오는 길에 그 고물상을 마지막으로 들르지 않았다면 지붕재료는 하여간에 주인모자분의 그 살가운 정경을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남자나이 스물여덟이면 군데도 갔다 왔을테고 결혼도 할 나인데 그것은 모르겠으되 오직 서로를 위하는 그 모습만 언제까지나 눈에 선했습니다. 물론 제 아들 녀석이 그 나이 먹으려면 십 수 년이 더 지나야겠지만 즈가 함직한 조그마한 일 한 가지라도 시키려면 제 입이 닳아져야 하고 배시시 돌아가며 무엇인가 댓가를 요구합니다. 어렵게 설득해서 끌어다놔도 안보는 새에 또 어디로 금방 사라져서 다시 목청을 높여서 부르게 되고요. 창고를 짓는데 녀석의 조력을 받으려고 한 것이 어떤 때는 상전을 모시고 일하듯 해야 했으니 이거 원! 하지만 이래저래 날수로 꼭 이렛 만에 창고 겸 차고는 지어졌습니다.

그새 비가 또 한 차례 내려서 여름이 이제 다 간 듯 합니다. 뜨거운 뙤약볕 한중간에서는 이 지겨운 더위가 언제 물러가나 싶었는데 꿈결처럼, 잠깐 낮잠 한숨 자고 난 것 같은 시간에 여름이 갔나 생각되니 그 또한 허망합니다. 불어오는 선듯한 바람과 수돗가에 뒹구는 나무 이파리들에서 가을의 그 상실감을 느끼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차라리 풀들이 마구 자라고 그걸 매느라 땀 목욕을 할지언정 내일 모레 금방 베어질 운명에 처한 저 누우런 곡식들을 바라보는 건 결실의 계절을 찬하기 이전에 어쩔 수 없이 서글픔이 느껴집니다. 일부러라도 더 열심히 일하고 더 많이 세상을 긍정하고 더 많이 웃으며 서로 사랑해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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