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양, 세종대왕 때 사백 여결의 큰 고을

그들이 다니는 길목의 현령이나 군수는 상전 대하 듯 모셨다. 준량이 그것을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거들먹거리는 그들이 싫어 단양에 와 있을 때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오히려 관청 객사도 내주지 않았다. 목상으로 보면 수치였다. 하는 수 없이 주막에 며칠 유숙하면서 이를 갈았을 테고 며칠 후 한양에 올라가면 단양군수 준량을 비방할 것이 눈에 선했다.

준량은 하진나루터에 있는 목상의 창고를 점검해 불법으로 도벌한 목재를 압수했다. 더 나아가 허가 없이 쌓아놓은 목재도 치울 것을 명했다. 목상의 단양 창고는 한강의 선창으로는 제일 크고 목재가 많은 곳이었다.
단양에는 사창이 두 곳인데 하나는 단양 우씨 우창과 목상이 운영하는 목창이 한강의 물류를 도맡아 운송하고 있었다.

우창에는 소금, 쌀, 약재 등을 취급하고 목창은 글자 그대로 목재를 취급했다. 준량은 단양에 부임해서 여러 달을 지켜보며 그들의 폐단이 고을 백성들의 삶을 더욱 더 고단하게 한다는 것을 알기에 언젠가는 크게 도려내고 말겠다는 각오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역관을 털고 관리들을 초죽음으로 만든 그들에게 칼날을 들이 댈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었다.

하지만 군수는 한 가지가 걱정이었다. 관청의 말까지 도둑맞으면 필경 군수에게 책임이 주어질 것이고 역관 또한 모든 말을 스스로 관리하고 지키며 잘못하여 잊어버리거나 죽으면 책임이 전가될 텐데 그렇게 되면 노루 형제는 더 이상 역관의 집안으로서 그 일을 할 수 없게 된 것이기 때문이었다.
노루 형인 용두가 말했다.

“난 동으로 갈 테니 너는 서로 가거라.”
동생인 노루가 펄쩍 뛰었다. 단양 고을에서 동으로 간다는 것은 도둑이 된다는 것이고 서로 가면 산속으로 도망간다는 불문율의 규칙이 소문으로 떠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노루가 한사코 형을 말렸지만 용두는 기어코 동으로 떠났다. 노루도 아버지가 죽고 형이 떠나자 날이 새기 전에 서쪽으로 떠났다.
단양 역창이 술렁거렸다. 간밤에 장 역관 집의 형제들이 없어졌다는 보고를 받은 준량은 그렇게 된 상황에 마음이 좋지 않았다. 

단양은 말이 군이지 현 보다도 백성이 적었다. 한양으로 가는 길목이고 험준한 죽령과 제법 큰 봉수대, 넓은 강과 험준한 산골짝에 띠 풀을 엮어 집을 짓고 도토리로 연명하는 고을, 일찍이 퇴계선생께서 군수로 부임해 한양을 떠나면서 단양이 고을 중 가장 빈곤한 마을이라 했는데 과연 고을을 돌아보니 어느 한 곳 제대로 된 곳이 없었다.

세종대왕때 사백여결의 큰 고을이었고 아름다운 곳이라 했는데 어찌 백여 년 만에 빈곤의 땅으로 변했는지 강가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목재들이 답답한 그의 가슴을 더욱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몇 달 전 단양군수로 부임한 준량에게 토정이 찾아와 한말이 귓가를 스치고 있었다.
“단양은 자네를 기다렸네.”
백성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목상들의 폐단을 막으리란 다짐에 뒷짐 진 그의 손에 더욱 힘이 가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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