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진 시인의 감성편지
처음엔 녹두 말이나 하려니 하고 생각했습니다. 아내와 제가 줄을 대고서 반듯하게 심어놓은 녹두가 장마를 지내고 무럭무럭 자라서 꽃피고 열매 맺을 때까지는 말입니다. 그냥 씨앗을 훑어 뿌림하면 아무래도 조밀하거나 드물어서 김 한번이라도 더 매는 까닭에 남이 보면 내지 않을 꼼꼼함을 떤다는 소릴 들을 각오하고 줄까지 대고 간격 맞춰서 심은 것인데 그 방식은 아주 적절해서 김도 한번으로 끝이 났고요.
어느덧 꼬투리가 한두 개씩 익어서 까매지는 족족 바구니 들고 가서 따 모으며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파이어같이 새파란 녹두알이 참으로 대견해서 이걸 한 말이나 장만하려면 얼마나 공력이 들어가야 할까를 생각하며 새삼 옛날 우리 어머니들의 그 수고를 다시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거기에다가 무슨 신심 같은 것이 또 생겨서 녹두를 얼마나 잘 거두려 그랬는지 곡식 까부르는 키까지 하나 장만해 두었고요.
그렇다고 하여 이것을 너무 지나치다고 할 수는 없을 텐데 어디서 누가 무슨 심술을 내는지 녹두가 처음의 바람처럼 되지 않았습니다. 이파리 보기 좋게 무성하던 것이 어인까닭인지 한쪽에서부터 까매지며 채 불구멍처럼 숭숭 구멍이 뚫리고 하나하나 낙엽이 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할 때는 무심결에 지나쳤는데 그 병이 깊어져서 점점 가운데만 남기고 밭전체가 그리됐을 때, 그러나 녹두 꼬투리들은 달릴 만큼 달려서 까맣게 익어가기도 하는지라 한나절 정도는 따야 되겠거니 생각하고 아내와 제가 바구니 들고 들어섰습니다.
하나같이 꼬투리는 빈 쌈지였습니다. 겉은 멀쩡하니 익어서 까만 것 같아도 까보면 녹두가 들어있지 않거나 녹두처럼 생긴 것은 기껏 한두 개일 뿐 나머지는 모두 싸라기 같이 생기다 만 것뿐이었습니다. 여기저기 밭 네 귀퉁이를 다 쓸고 다녀 봐도 거둘 게 없었습니다. 그 기분이 참 묘했습니다. 어이없는 것도 아니고 실망스러운 것도 아닌듯한데, 이상하게도 입으로는 헛웃음 같은 것이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녹두 말이나 하겠거니 생각했던 것이 너무 욕심이었을까요? 그 정도 공력에 녹두 한말, 아니 반말만이라도 괜찮다 생각했던 게 분수에 어긋난 일이었을까요? 아무리 결과만 바라봐서는 안되는 게 농사라는 것을 마음에 새겨도 무엇에겐지 모를 역증이 터져 나와서 아내 몰래 간신히 삭히느라 애를 썼습니다. 이럴 때 농사지을 마음이 천리만리 달아나서 다시는 흙에 손대지 말아야 하는데 그러기는커녕 돌아서면 또 그 자리에서 흙을 어루만지고 있습니다. 오히려 잘됐다고 좋아하지 말고, 못됐다고 실망할 것도 못된다고 스스로 위안하고 있습니다. 녹두밭 윗머리, 또 그 윗머리 같은 삶의 고단함만이 늘 나의 것이려니 하고 맙니다.
이런 저의 마음을 아는지 모처럼 오후의 햇살이 참 맑고 바람마저 선선합니다. 그 햇살을 등에 지고 아내와 제가 고구마 순을 땁니다. 제가 말을 걸기 전에는 여간해서 먼저 말하지 않는 아내의 저 손놀림이 단순하여 졸음이 쏟아질 것 같은 그런 순간입니다. 물끄러미 정물과도 같은 그 광경을 바라보는데 마음속 응어리가 삭혀 나오는지 저도 모르게 후 하고 한숨이 나왔습니다. 뜯어온 고구마 순을 부엌에 앉아서 어두워질 때까지 벗기고, 밤엔 방에서 벗겼습니다. 손톱에 푸른 물이 들고 어느덧 아파오는데 방 한구석에서 귀뚜라미가 웁니다. 어제 방을 쓸어내다가 눈에 띄던 놈인 듯 조그맣던 녀석이 소리가 맑고 뚜렷합니다. 혼자 우는 것이 듣기 쓸쓸한 생각도 들어서 “한 마리 더 있었으면” 했더니 아내가 핀잔입니다. 여치 집을 지어서 기둥에 걸어두고 풀밭을 뒤져서 여치를 잡아다 넣고, 여린 풀잎도 넣어주고, 쓰르륵 쓰르륵 울기를 기다려서 그것을 느꺼워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마루 끝에 팔베개를 하고 누워서 그것을 바라보던 그때에도 어머니는 고구마 순을 벗기느라 손 쉴 틈이 없으셨지요. 저녁의 마루기둥엔 희미한 등불이 걸리던….
아내와 제가 꼬박 네 시간 정도 손을 놀려서 겨우 고구마 순으로 김치 한 통을 만들어놓고 서로 바라보며 웃었습니다. 하찮은 것 한 가지를 만들어내는 데도 시간이 이렇게 필요한 것임을 오늘따라 왜 이리 사무치게 생각는지, 아내도 그러한지, 명절이라고 집에 와서 이것을 먹을 내 아이들은 무슨 생각을 할는지, 그들의 인생은 어떤 것이 될는지 평소에 생각지 않던 것들이 무수히 갈래가 지는 것은 아마도 달이 밝아서이려니 여겼습니다. 저녁이 되니 바람이 더욱 서늘해져서 두툼한 겉옷 하나를 걸치고 밖에 나섰습니다. 그래봐야 기껏 한길과 이어지는 잠깐의 거리인데 벌써 이슬이 발에 차이고 바짓단을 적셨습니다.
여름내 숲에 그렇게 많이 날던 반딧불이도 이제 나는 힘을 잃었는지 발아래 풀숲에서 어쩌다 반짝일 뿐입니다. 여름내 치열하게 살았다는 마지막 증거인 듯만 여겨져서 가만히 쪼그려 앉아 그 모양을 봅니다. 한 마리 잡아내서 손위에 올려놓고 봅니다. 명멸하는 그 불빛은 점점 옅어지다가 이내 멈추고 맙니다. 그렇더라도 반딧불이가 목숨이 다한 것이라고는 여겨지지 않습니다. 아니 불빛을 반짝거리지 않는 반딧불이는 이미 그 자체로 생명이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자꾸만 그것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자꾸만 여위어가는 제 마음을 애써 부정하고 싶어서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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