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에는 큰 마을이 있다고 적혀 있던데 촌락이 없어지다니…”

조정에서는 지난 것을 다 두더라도 올해 양은 마저 채워야한다는 독촉이 심하였다. 조세를 담당하는 관리는 열 흘에 한 번씩 밀린 공납품들을 조목조목 재촉하였다.
준량은 개혁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마음을 굳혔다. 조세와 공납품에 피골이 상접해가는 고을 백성을 구하는 것은 그것 뿐이었다.
준량이 우화교에서 머리를 식히고 있을 때 전령이 다가왔다. 남서안의 왜적을 막기 위해 착출된 관군이 돌아왔다는 것이었다.

‘병사들은 어명을 받들어 왜적과 싸워 혁혁한 전공을 세웠으므로 채용하여 병영에 군무토록 하라. 상은 고을 군수가 지급 토록하라.’
예전에는 하사품이 딸려 왔었는데 이제는 그것마저 고을 조세로 지급하란 것이었다. 고을에 쌀이 부족한 실정이지만 나라의 명을 거절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여름 장마도 무사히 지나고 뜨거운 햇살이 쏟아지는 무더운 날씨가 계속되었다. 우화교 아래에 펼쳐지는 여강 뜰의 벼 이삭이 화려한 꽃을 피웠다.
준량은 하절기 닷새의 휴가 기간 동안 단양을 돌아볼 계획이었다. 준량은 무관과 장수를 데리고 길을 떠났다.

계곡에 발을 들여놓으며 준량이 무관에게 물었다.
“무관은 이곳에 와본 적이 있는냐?”
“전에는 일년에 두어 번 왔었는데 마을이 피폐하고 촌락이 없어진 다음에는 수년 동안 오지 못하였습니다.”

“문서에는 큰 마을이 있다고 적혀 있던데 촌락이 없어지다니...”
준량은 피폐해진 촌락을 바라보며 마음이 착잡하기만 했다. 가촌에는 큰 들이 있었지만 조세가 너무 많아 농사를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농사를 안 지으니 조세를 낼 수가 없었고 조세를 내지 않자 관에서 붙들어가니 사람들이 도망을 갈 수 밖에 없었다.

관에서도 포기를 한 지 오래되어 소문에는 두어 집 산다는 얘기 뿐 더군다나 우창까지 가세하니 형편은 말이 아니었다.
준량 일행은 저녁때가 되어서야 겨우 가촌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가촌은 단양에서 제일로 크다 할 만큼 넓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곡식을 심지 않은 것이 여실히 드러났다. 무관은 이제 삼십여세, 준량보다 칠팔세 아래였다.

무관은 이십세가 갓 넘었을 때 이곳을 다녀간 적이 있었다. 그땐 제법 큰 마을이 있었는데 지금 이렇게 황폐해진 것은 모두 평민의 고열을 짜내는 조세와 못된 탐관오리들이라는 것을 알기에 마음이 아팠다.
준량은 우창의 횡포에 힘들어하는 백성들의 모습에 마음이 불편했다. 우공의 인품은 결코 악덕한 짓을 할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우공도 모르게 도주를 비롯한 몇몇 무리가 치부를 떨고 있는 것 같아 영 마음에 걸렸다. 준량은 한양에 있는 우공에게 넌지시 서찰을 보내봐야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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