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만 더 하면 저 넓은 들이 내 손에 들어온다”

도주가 이방에게 은근히 압력을 가했다. 이번 가을에는 관에서 가져간 물품대금을 전부 받아야겠다는 심사였다.
이방은 술잔을 들어 입안에 털어 넣었다. 가을 약초 공납으로 작약이 이백 오십근, 사향이 삼십냥, 복령이 이백근, 지황, 웅담 등의 공납을 대납한 우창까지 가세하니 이방의 머리는 복잡하고 무거웠다.
올해 약초 값을 올리자는 도주의 말에 이방이 까맣게 윤이 나는 나무수저로 가라앉은 술을 휘젓다 말고 말했다.

“영감께서 눈치 채면 어떡할꺼요?”
“여강 변 고을들은 이미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소. 그 중 일할은 예년처럼 줄테니 그리 하시지요.”
“그렇게는 안 되지요. 이할은 줘야지요.”

도주는 구운 닭고기 살점에 앉은 파리를 나무젓가락으로 내려쳤다. 그러면 약초 값을 올리나마나였다.
도주는 이마를 찌푸리며 술잔을 들었다. 이방과 도주는 이제 오십을 넘기고 있었다. 서로 안면을 튼 지도 수십 년, 서로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도주가 탁주를 홀짝거리며 뜸을 들이자 이방이 답답한지 도주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절인 고기를 집어 들었다. 도주는 얼마 전 구지황 오십근을 한양 대도주한테 보냈다.

구지황은 따뜻한 양지쪽에 자라는 다년생 식물로서 귀중한 약재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소 한 마리가 누운 자리만큼만 캐도 황소 한 마리 사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그래서 구지황이 자생하는 곳을 알면 평생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을 정도라는 말도 있다.

그런데 그걸 오십근이나 주었다는 것은 소금 배 한 척과 맞먹는 거금을 주었다는 소리였다.
곡식으로 치면 알곡 백여섬과 같은 양이었다. 도주가 불평을 털어놓았다.
“관을 믿고 사는 것도 옛말이 되었소. 기껏 도적하나 못 잡아 우창에서 무사를 고용해서 데리고 다녀야 하니.”

이방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우창에서 본격적으로 목을 조여 오는 것 같았다. 갑자기 너무 깊이 우창에 빠져들었다는 생각에 이방은 머리가 어지러웠다. 밖에서 소란스런 소리가 들려왔지만 도주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이방은 밖에서 나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우창 무사들이 노인의 딸을 잡아가고 있었다. 구경하 듯 여러 사람이 모여 있었지만 선뜻 나서서 대적하는 사람이 없었다.
노인은 발에 채이고 몽둥이에 맞으며 몸부림치는 어린 딸을 붙잡았지만 무사에게 떠밀려 넘어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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