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진 시인의
감성편지


일주일도 더 넘게 콩을 거두고 사흘 동안이나 그 콩을 뚜드렸습니다. 일주일도 더 넘겼다니 콩을 많이 심었나 보다 하고 생각하시겠지만 겨우 200평 남짓입니다. 그런데 이 콩이 한꺼번에 익어서 잎이 지는 게 아니라 햇빛 많이 닿는 밭 가운데서부터 익어가서 어쩔 수 없이 그걸 따라가며 거두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하루에 일한 시간은 기껏 삼십분에서 한 시간, 일 한번 참 놀음놀이로 하고 있지요?

가을걷이 다음에 월동작물을 심으려 한다면 이러면 안 됩니다. 가을일 서둘러서 득 될게 없다지만 이쪽지방에서는 늦어도 시월 말까지는 가을일을 끝내야 보리나 양파 따위를 때 놓치지 않고 심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그것들을 올해에도 심지 않습니다. 양파를 심고 싶어도 뿌리썩음병이 한번 왔던 밭이라 3년째 쉬고 있는 중입니다. 보리야 조금 늦게 심어도 괜찮고요.

이렇게 가을일이 급하지 않으니 콩 거두는 것도 내내 놀이 같을 수밖에 없겠지요? 저는 잘 익은 놈으로 골라서 꺾어내어 미쳐 떨어지지 않은 잎 대궁을 하나하나 말끔히 따내고는 밭에 멍석을 펴고 말립니다. 낫으로 우둑우둑 베어서 깔아뒀다가 마르면 큰길 아스팔트로 싣고 가서 펴 놓고 경운기로 몇 번 왔다 갔다 하면 간단하게 끝날 것이지만 올해는 콩이 하도 알알이 잘 영글어서 그렇게 함부로 하기가 싫더라고요. 콩을 꺾다가 보면 하나씩 뙤어 달아나는 콩알이 있는데 그게 어찌나 크고 새하얀지 제 눈이 화등잔만 해져서 그걸 하나씩 주워 호주머니에 담는 것도 참 옹골지고요. 하루하루 멍석 가득 채워지며 콩이 잘 마르고 있는 그것이 또 마음이 뿌듯했습니다.

해가 늦게 뜨고 산그늘이 빨리 지는 밭의 동쪽과 서쪽의, 익을 가망 없는 콩만 조금 남았을 때 저는 그것을 이제는 낫으로 우둑우둑 베어서 땅에 깔아버리고 콩 타작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나일론 멍석을 가져다 더 넓게 콩 주변에 펴고 도리깨 대신 적당한 굵기의 회초리를 손에 쥐었습니다. 도리깨질을 하면 빨리는 하지만 좀 하다보면 힘에 버겁고 또 콩이 멀리 튀어 달아나지요. 오전에는 새벽에 내린 이슬 때문에 콩이 잘 털어지지 않으니 열시반이나 열한시쯤부터 시작합니다. 먼저 바싹하니 마른 콩을 발로 자근자근 밟아줍니다.

그러면 꼬투리가 조금씩 벌어져서 회초리를 맞을 때 콩이 멀리 튀지 않지요. 그것을 왼손에 여남은 대궁씩 잡고 엎었다 뒤집었다 되작거리면서 오른손으로 회초리질을 하는 거지요. 옆에서 보면 애들이 무슨 소꿉질 하는 것 같아도 이 방법이 제 경험으론 가장 확실하게 콩을 터는 방법인 것 같더라고요. 그렇게 조금씩 털어가다 보면 일이 줄어들고요, 잠깐 바닥을 헤쳐 보면 어느새 두껍게 콩이 쌓여 있습니다. 그러면 가끔 콩깍지도 걷어내면서 몽기작몽기작, 저는 어느새 옛날의 어머니 할머니처럼 되었습니다.

저도 늘 도리깨나 콩 탈곡기를 빌려다 쓰기도 하고 경운기로 왔다 갔다 하면서 털곤 했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그렇게 하기가 싫었습니다. 앞서 얘기한대로 콩이 잘 되어서이기도 하지만 왜 그런지 손으로 직접 두드리면서 가장 가까운 눈높이에서 그것을 바라보고 싶었습니다. 햇빛 때문이기도 했을 겁니다. 요즈음 가을 햇빛이 어찌나 좋은지 그 햇빛 속에 하루 종일 앉아있고 싶었던 것입니다. 종일 일을 즐기고 싶었기 때문에 힘에 가벼운 회초리를 들었는데 과연 어깨도 아프지 않았습니다. 가끔 눈을 들어 바라보면 산의 단풍이 말이지요, 제가 가지 않아서 답답했는지 바로 제 옆 밭둑까지 와있고요.


그래서 시상하나 얻었습니다. “내가 일할 수 있는 건 거미 똥구녘에서 나오던 은실 같은 바람과 햇빛이 하루 종일 나를 만져 주었기 때문”이라는. 그렇게 사흘을 콩 타작을 했습니다. 이제 바람이 좀 썰썰 불어주면 좔좔 먼지를 날려버릴 텐데, 요 며칠은 바람이 전혀 없어서 밭에 그대로 두고 봅니다. 키질을 해도 괜찮겠지요. 콩을 털면서 곡식 낟알 하나하나가 가진 그 완전한 생명성에 이렇게 합일해보기도 처음입니다.

제가 이러는 동안에 안식구는 서울 나들이를 갔다 왔답니다. 딸들 집에요. 가을일이 한가한줄 어찌 알았는지 엄마 한번 왔다가라는 딸들의 전화질이 일 즐기지 않는 이 사람의 귀에는 다디단 찰떡처럼 여겨졌나 봅니다. 물론 한번 갔다 와야 할일이야 분명 있었지만 단장하고 떨치고 나가더니 전화 한번 없이 사흘 만에 왔습니다.

하루 한번 궁금해서 제가 전화해보는데 온다는 날 아침엔 암만 전화해도 받지를 않더라고요. 납치 됐나 사고 났는가 온갖 쓸데없는 걱정이 망상처럼 일어나더니 나중에 통화하니 영화를 보고 있었다나요. 도시란 그런 곳이지요? 콩 타작을 하는 마지막 날 전날 집에 돌아온 안식구는 밭에는 코빼기도 뵈지 않고 집안에서 뭘 하는지 바쁜 것 같더군요. 뻔히 알지만 같잖은 사내의 그 응어리 없는 어깃장을 한번 놔봤습니다. “아 밭일은 인제 너나 해라 나는 모른다 그거여 시방?” “밭일만 일이고 집안일은 일이 아니여?” 큰소립니다. 백번 옳은 말이라 그려그려 하고 허허 웃어주었습니다. 원내 참 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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