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준량 죽이려던 정승대우 받던 ‘목상 대감’,빚 때문에 ‘도적’된 장역관 둘째 아들에게 혼쭐

보통 보부상들은 여러 명의 행렬을 이루지만 목상과 아전이 합쳐져 십여 명을 이룬다는 것은 흔한 일은 아니었다.

폭포의 시원한 물줄기가 목상의 땀을 식혔다. 식솔들은 개천에 발을 담그고 연신 머리를 감고는 바위에 드러눕는다. 그때 곰치 부하들이 쏜 화살에 풍기 아전들은 고슴도치가 되어 개천에 나뒹굴었다. ‘이제 꼼짝없이 죽을 길만 남았구나’ 라고 생각하니 지금까지 벌려온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 때 떨고 있는 목상 앞에 두목이 다가서며 말했다. 

“네 이놈, 아직도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어? 내가 바로 장역관 아들이다.”
그 말에 목상은 현기증이 났다. 꼼짝없이 죽을 생각을 하니 만사 허상이었다. 짐승은 죽어 가죽을 남긴다던데 무덤 하나 남기지 못할 지도 모르자 아찔한 것이 정신이 없었다.

부하들이 달려들어 목상의 속적삼을 무참히 찢어버렸다. 여름 햇살에 흰 뱃살이 출렁거렸다. 칼을 뽑아 든 도적의 부하가 당장 배를 찌를 기세다. 목상은 체념했는지 눈빛의 초점이 흐려졌다. 두목은 번개처럼 채찍을 내리쳐 옷을 벗은 목상의 등줄기에 벌건 핏자국이 선명하게 새겨졌다.


우창 도주는 죽령의 두목이 바뀌었다는 소식에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밀려와 심복인 덕배를 불렀다.
“거기서 믿을만한 놈이 누가 있는가?”
“아무래도 곰치밖에 없습니다.”

아침 일찍 덕배는 부하 세 명을 데리고 중방으로 향하는 도중 개천가에서 곰치 일행과 마주쳤다. 양쪽 모두 보부상 흉내를 내고 있었다. 개천에 발을 담그고 곰치와 덕배가 마주 앉았다. 덕배는 주머니에서 금전을 몇 개 꺼내어 곰치의 소매에 넣어 주었다. 억수의 안내를 받은 덕배와 곰치는 움막으로 들어갔다. 덕배가 가슴속에서 종이를 꺼내 곰치에게 건네자 거기에는 여러명의 얼굴과 이름이 씌어 있었다.
“이 사람들을 다 처치해 줘.”

덕배 일행이 돌아가자 두목은 곰치를 불렀다.
“곰치, 그 자들은 내가 장역관의 아들이라는 것을 모르지?”
“네. 어찌 알겠나요?”
잘된 일이었다. 보부상들은 우창의 하수인 노릇을 하는 자들인데 한번쯤 건드려 볼 생각이었다. 
글=조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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