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준량 일행, 북천 떠나 생기동 가는길 인적 없고 발길 무겁지만 그래도 설레

아침 햇살이 눈부시다. 준량 일행은 서둘러 북촌을 떠났다. 오십여 호가 살았다던 계곡이 적적하고 쓸쓸했다. 능선과 봉우리 근처에는 옛 성과 돌무지 산신터가 있어 나그네의 길잡이 노릇을 했다. 하지만 계곡은 몹시도 험하고 위험했다.
그들 일행이 상선암에 도착했을 때, 한결같이 자신들의 눈을 의심해야만 했다. 지금까지 보지 못한 함지박만한 통발이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 방금 놓고 간 것이 분명했다. 통발은 깨끗이 껍질을 벗긴 싸리가지로 엮은 바구니로 한쪽에 손가락 몇 개 들어갈 만한 구멍을 내고 양쪽으로 벚나무 칠도 했다.
통발은 저녁에 설치하면 고기는 많이 들어가지만 밤에 다니는 수달에게 몽땅 털리고 통발까지 부서지는 수난이 있기에 꼭 아침에 두었다가 오후에 거두는 것이 상식이었다.
더러는 약간의 낮은 곳에 싸리발을 설치하고 위쪽에서 여럿이 물고기를 몰아 발에 걸리면 재빠르게 건지는 방법도 있었다. 통발의 주인이 누구인지 궁금했다.

일단 통발이 있으니 사람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사람도 사람 나름이었다. 고약한 도둑 무리를 만나면 돈이 털리는 것은 고사하고 목숨까지 보장하지 못했다. 무관은 영감님을 보호해야 할 임무가 있기에 우선 안전을 택했다. 저 너머에 도락산이라는 절이 있다는 얘기에 장사가 잽싸게 걸음을 날렸다.

얼마 후 땀을 뻘뻘 흘리며 올라온 장사는 아무도 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일행은 주섬주섬 짐을 꾸려서 상선암 위를 향했다.
고색창연한 옛 건물이 나타났다. 조그마한 암자가 세 채였는데 인적이 끊긴지 여러해는 족히 되어 보였다.

마당에는 잡초가 무성하고 창문의 창호지는 삭아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자 저 아래 통발이 더욱 궁금해졌다.
온 김에 돌아보자는 준량의 말에 모두들 봇짐을 너럭바위에 놓고 잠시 쉬었다. 얼기설기 쌓인 바위틈에서 솟아나는 샘물 주변으로 차가운 냉기가 흐른다.

샘 주변으로 과거에 일구었을 전답이 꽤 여러 필이 되어 보였다. 너럭바위에 맷돌이 덩그러니 얹어있었다. 맷돌은 제법 잘 돌아갔다. 맷돌질을 하면 갈린 곡식이 틈을 타고 바위 아래 함지박으로 담겨지도록 되어 있는 것이 매우 신기해 보였다. 조금 위쪽에 움푹 파인 절구가 있었다. 곡식을 절구에 파서 만든 것을 보고 준량은 옛사람의 지혜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장사는 표주박에 물아 담아 맷돌을 닦고는 커다란 사삼 뿌리를 갈았다. 무쇠솥을 걸고 마른고기와 더덕을 넣고 끓이니 제법 맛있는 죽이 되었다.

장사의 음식 솜씨는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절간에는 아름드리 옻나무가 제법 많이 있다.
그것을 보던 무관의 눈이 반짝였다. 무관이 옻나무 쪽으로 급히 뛰어갔다. 갑작스런 행동에 모두 가까이 가보니 아름드리 옻나무 밑둥치 쪽으로 솔잎처럼 흠을 파고 오동나무 대롱을 매달아 놓은 것이 보였다. 자세히 주변을 살펴보니 나무마다 모두 달려있는데 대롱마다 검은 진액이 반쯤 고여 있었다.
이렇듯 깊은 산중을 다니는 밀초들이 어렵게 구한 약초들은 보통 가격으로 살수 없는 고가의 물건인 것이 당연했다.

깊은 산중을 이잡 듯 해치고 다니면서 때로는 도둑을 맞아 빼앗기기도 하고 맹수를 만나 목숨을 잃기도 하고, 갑자기 찾아온 병으로 집에도 오지 못하고 영원히 산 속의 귀신이 된 자가 부지기수였다.
준량 일행은 서둘러 상선암 개천으로 내려왔다. 그들은 다시 한번 놀라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아침 나절에 있던 통발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관이 말했다. 
“예전에 생기동 이라는 마을이 있다는 소리는 들었습니다만 확실한 것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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