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준량 일행, 생기동서 짐승 잡는 구덩이에 빠져


일행은 상선암 바위 위에 짐을 내려놓고 오솔길을 따라 올랐다. 물기도 마르지 않은 통발이 몇 개가 있고 또 다른 함지박이 몇 개 더 있었다.
수풀 사이로 움막이 보였다. 일행은 조심하면서 위쪽으로 올라섰다. 양지 바른쪽을 중심으로 20여 채의 움막집이 있고 여러 사람이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족히 수십 집은 되는, 말로만 듣던 생기동이었다. 예부터 가촌리 생기동은 구름 위에 있는 마을로 그곳에 들어가면 죽은 사람도 살아온다는 전설이 있었다.

일행이 넓은 공터에 들어서자마자 우지직하는 소리와 함께 땅속으로 떨어졌다. 그들이 빨려 들어간 곳은 깊은 웅덩이었다. 장사가 소리쳤다.
“꼼짝 말고 그대로 있으세요. 이것은 짐승을 잡는 함정입니다.”
바닥에는 독침이 꽂혀있어 맹수가 빠져 허우적거리면 그 독침에 쏘여 맥을 잃게 되어 있었다.

빛이 비치는 곳을 보니 삐죽삐죽 검은 나무침이 여러 개 박혀 있었다. 섬뜩한 공포가 밀려왔다. 무관과 장사가 독침에 찔렸는지 통증을 호소했다. 다행히도 준량은 일행 맨 뒤에 있었기 때문에 늦게 벽을 타고 떨어져 독침에 상처를 입지 않았다.
준량은 칼을 빼어 들고 흙벽을 파 계단을 만들었다. 손과 발만 들어가면 짚고 올라갈 심산이었다. 다행히 나뭇가지 몇 개가 손에 잡히었다. 그것을 잘라 흙벽에 끼우면서 올라오니 더운 바람이 ‘휘휘’ 스쳤다.

밖에 나와 구덩이 속을 보니 무관과 장사는 이미 독이 퍼졌는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다급해진 준량이 칼로 제법 큰 나무를 잘라서 구덩이 안에 밀어 넣고 있을 때였다.
무언가 섬뜻한 기운이 느껴져 주위를 둘러보니 예닐곱 명의 장정이 창과 활로 무장한 차림으로 몰려오고 있었다.

준량은 반가웠다. 일단 사람을 만나면 구덩이 안에 있는 무관과 장사를 구할 수 있다는 희망이 보였기 때문이다.
준량에게 다가온 무리들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이가 장정들에게 말했다.
“저 놈을 구덩이로 밀어 넣어.”
준량이 칼을 뽑아 들자 몇 명이 활을 겨누었다.  

준량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구덩이 속의 사람은 고사하고 자기도 꼼짝없이 죽을 판이었다. 준량을 에워싼 그들은 칼을 뺏어 차고는 짐승을 묶으려고 가지고 온 밧줄로 동여매고는 소 끌듯 끌었다.
그들은 준량을 산 속 촌락으로 끌고 가서 돌방에다 가두었다. 좁은 외나무다리를 지나자 돌방이 있었고, 그곳에 준량을 들어가게 해 놓고는 다리를 들어 나무에 메워 놓았다. 밖으로 나와도 외나무다리가 없이는 건널 수가 없는 곳이었다.

돌방이 있는 곳은 제법 넓고 시야가 확 트인 곳이었다. 저 멀리 단양천이 구불구불 푸른 물을 이루고 건너편 절간이 한눈에 들어온다. 통발이 있던 상선암이 보이고 희다 못해 눈이 부신 개천의 암석들이 하얀 띠 줄을 이루고 있었다.
준량은 한 바퀴 돌아보았다. 십 여 간은 족히 되어 보인다. 아래는 수십 길 낭떠러지에다 삼면이 매끈한 암벽으로 둘러져 있다.

외나무를 치운 곳을 보니 현기증이 나고 오금이 저렸다. 두 간 쯤 되어 보이는 곳을 뛰어 건너가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경치는 좋지만 지붕대신 하늘이 떠 있을 뿐이다.
준량은 얼굴이 따갑고 화끈거리더니 온몸이 가렵고 붉은 반점이 솟았다. 참나무 옻이 오른 것이었다.
위에서 소리가나 쳐다보니 자신을 안내했던 소년이 조롱박을 끈에 매달아 내려주고 있었다. 조그마한 조롱박 물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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