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 ‘솔로몬’의 할머니는 멸시받던 이방인

  
 
  
 
모세의 영도아래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민족이 팔레스타인 지방에 정착한 후 유대인들은 12지파로 나뉘어 거주하며 ‘사사’라 불리는 지도자의 정교일치(政敎一致)적인 통치를 받고 있었다. 이 시기를 이른바 ‘사사시대’ 또는 ‘판관시대’로 부르는데, 힘의 대명사 ‘삼손’도 그 ‘사사’ 중 한 명이었다. 이 이야기는 사사시대에 있었던 한 신실하고 아름다운 여인의 이야기로 기원전 1100 년 즈음의 일이다.

세 과부
“이제 너희들 갈 곳으로 가라. 나도 늙은 몸을 이끌고 고향으로 가야겠구나. 불쌍한 너희들을 내가 건사할 수 없으니 정말 미안한 마음뿐이다.”
시어머니 ‘나오미’는 과부가 된 두 며느리들에게 고향으로 가라고 설득하고 있었다.

나오미는 십 수 년 전 고향 베들레헴에 지독한 기근이 찾아와 끼니라도 연명할 요량으로 남편 ‘엘리멜렉’과 두 아들 ‘말론’, ‘기룐’과 함께 모압 지방(지금의 요르단 사해(死海) 인근)으로 건너왔다. 두 아들은 이곳에서 모압 여인들과 결혼했다. 그러나 이곳에 온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이 죽고 십년이 지났을 때 두 아들마저 죽고 말았다.

고대 중근동 유목사회에서 여자들이 스스로 먹고 살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오미는 따라서 두 며느리에게 각자 살 길을 찾아보라고 호소하고 있었던 것이다.
두 며느리 ‘오르바’와 ‘룻’은 울며불며 “어머니를 끝까지 따라가겠노라”고 했다. 나오미는 “내가 너희 남편 될 이들을 다시 내 배에서 낳아주랴? 딸 같은 너희를 보니 내 마음은 찢어진다. 너희 마음 다 아니 이제 그만 너희 고향, 너희 민족, 너희 신(神)에게 돌아가라”고 이들을 달랜다.
한사코 마다하던 큰 며느리 ‘오르바’가 시어머니에게 입 맞추고 돌아섰다.

어머니와 함께라면
“너도 이제 네 동서처럼 네 고향으로 돌아가거라. 내 고향 베들레헴은 천리 길이 넘고 험한 산이 첩첩이 쌓여있는 먼 길이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룻이 말했다. “나로 하여금 어머니를 떠나라 마옵소서. 어머니 가는 곳에 저도 가고 어머니가 노숙하면 저도 할 것입니다. 어머니의 민족이 저의 민족이며 어머니의 신이 저의 신이 될 것입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곳에서 저도 죽을 것이며 이 모든 말이 헛된 맹세라면 어머니의 신이 저를 벌하실 것입니다.”

나오미는 며느리의 결심이 뿌리칠 수 없는 것임을 알고 룻을 데리고 고향으로 향했다. 두 사람은 천신만고 끝에 거의 거지꼴을 하고 나오미의 고향 베들레헴에 돌아왔다.
마을 사람들은 “저게 옛날 제법 재산을 가지고 고향을 떠났던 그 ‘나오미’란 말이냐?”며 떠들어댔다. 놀라는 이도 있었고 조롱하는 이도 있었다.
모압인 며느리와 함께 왔다는 것은 혐오의 대상이 됐다.

호남 ‘보아스’
추수 때가 됐다. 룻은 시어미에게 말했다. “어머니. 저를 밭에 보내주세요. 어머니 시장하실 텐데 떨어진 이삭이라도 주워야 하겠네요.”

나오미는 룻을 자기 남편 엘리멜렉의 먼 친척인 ‘보아스’의 밭으로 안내했다. 추수하는 이들은 열심히 곡식을 벴고 나오미와 룻이 뒤를 따랐다.(고대 이스라엘에서는 추수할 때 떨어진 곡식은 수확하지 않고 내버려 두어 과부나 고아들이 먹게 했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일종의 ‘구제시스템’이었다.)

룻이 밭에 나가 곡식을 줍던 며칠 전부터 그녀를 눈 여겨 보는 이가 있었다. 이 밭의 주인이자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였다. 어느 날 그가 사환을 불러 물었다.
“저기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열심히 이삭을 줍는 소녀가 누구냐?”

보아스는 사환을 통해 그녀가 모압 여인으로 엘리멜렉의 며느리인데 과부가 되어 시어머니 와 함께 베들레헴에 왔음을 알았다. 또한 극진한 사랑으로 시어머니를 모시고 있다는 것도 들었다. ‘혐오스러운’ 모압 여인임에도 불구하고 마을 사람들은 한 결 같이 룻을 치켜세웠다. 보아스는 룻에 대해 세세히 알아보았고 그녀에게 호감을 가지기 시작했다.

보아스는 룻을 불러 칭찬했고 배불리 먹였다. 또한 사환들에게는 룻이 모르게 그녀가 지나가는 단 사이에 많은 이삭을 뿌려 놓으라고까지 명령했다.

나오미의 ‘작전’
어느 날 부터인가 며느리가 가져오는 이삭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나오미는 보아스가 룻을 불러 칭찬했다는 것을 들었다. 그리고 룻의 수확물이 갑자기 많아진 이유를 짐작하고는 빙그레 미소 지었다. 나오미는 며느리에게 “목욕하고 몸에 기름을 바르고 예쁜 옷을 입으라”고 말했다. 그날은 추수가 끝나고 타작하며 잔치가 벌어지는 날이었다. 룻은 시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했다.

보아스는 풍족한 수확 잔치에서 먹고 마시고 기분이 흡족해서 노적가리 옆에 마련된 자신의 침상에 누워 잠이 들었다. 한참을 자던 보아스는 발치에 인기척이 있음을 알고 놀라 깼다.
발치에 한 여인이 있음을 안 보아스가 눈 여겨 보니 거기에는 예쁘게 단장한 룻이 수줍게 누워있는 것이었다. 아름답고 섹시하게 꾸민 룻은 밭에서 이삭을 줍던 그 모습이 아니었다.

룻은 어머니가 시킨 대로 담대히 말한다. “당신의 옷자락으로 시녀(룻을 가리킴)를 덮으소서. 당신은 우리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 이 말은 곧 자신을 취하고 처로 맞으라는 말이었다.
보아스가 말했다.

“네가 착하고 극진하고 인애를 다하는 여인인 줄 내가 안다. 그리고 현숙한 여인인 줄도 안다. 그러나 나 보다 먼저 기업 무를 자가 내 앞에 있다. 내가 신께 맹세컨대 그가 너를 거부하면 내가 반드시 너를 취할 것이다.”(고대 이스라엘에는 형제나 친족의 아내가 과부가 되면 그 친족의 남은 유산을 사들여 기업을 잇고 그 미망인과 자식까지 거둘 수 있었는데 친족의 가까운 순서부터 우선순위가 있었다. 이 역시 과부와 고아의 생계를 보장코자하는 유목민족 전통의 관습법이었다.)

다윗과 솔로몬의 할머니
다음날 보아스는 증인으로 마을의 원로 10명을 대동하고 더 가까운 친족에게 찾아갔다.
“나오미의 기업을 무르는 데는 당신이 가장 우선순위에 있다. 그 다음이 나다.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정색을 하며 “나는 포기하겠노라”고 했다.

‘땅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고 과부 두 명만 받아들여야 한다.’ ‘더군다나 늙은 나오미까지 딸려있다.’는 계산이 있었을 법하지만 무엇보다 룻이 모압 여인이라는 것이 거절의 결정적인 이유였을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모압 사람들은 ‘상종 말아야 할 종족’으로 여겨졌다.

조상들이 이집트에서 탈출해서 40년간 광야 생활을 할 때 이스라엘 남자들이 아름다운 모압 여인들에 혹해 거기서 눌러 살다가 신의 저주를 받았다는 것 때문에 그들은 모압 사람들을 ‘불가촉(不可觸) 천민’처럼 여겼던 것이다.
보아스는 백성들 앞에서 룻을 아내로 삼고 나오미의 기업을 무르겠노라고 선포했다. 보아스는 룻을 아내로 삼고 성대한 혼인식을 올렸다.

누구보다도 아름다운 아내 룻은 그 신실한 사랑과 시어머니에 대한 헌신적인 공경으로 더욱 아름다워 보였다. 보아스가 살던 마을 사람들은 더 이상 모압 여인에 대한 편견을 가지지 않게 됐다. 보아스는 룻을 지극히 사랑했고 룻의 아름다운 심성을 존중했다.

보아스와 룻은 사랑의 결실로 ‘오벳’이라는 아들을 본다. 그런데 이 오벳이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으로 유명한 이스라엘 불세출의 영웅 ‘다윗’왕의 할아버지니 룻은 다윗의 증조할머니가 되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3대 왕이자 이스라엘 민족 역사상 가장 번성한 나라를 이끌었던 ‘지혜의 상징’ ‘솔로몬’은 다윗의 아들이다.

진실하고 아름다운 심성으로 그저 시어머니에게 도리를 다하고자 따라왔던 이 이방여인의 남은 삶은 편안했다. 룻은 이스라엘의 ‘별’ 다윗과 솔로몬의 증조와 고조할머니로 추앙받고 있을 뿐 아니라 다윗 왕으로부터 이십팔 대에 이르러는 ‘예수’가 탄생함으로써 전 세계 기독교인들로 부터 ‘룻 할머니’ ‘사랑과 효의 대명사 룻’으로 세세토록 존경받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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