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진 시인의
감성편지



문산에 사시는 셋째 형님이 겨울에 따뜻하게 입고 일하라고 며칠 전 두툼한 바지 두 벌을 사서 보내주셨습니다. 당신이 입어보니까 괜찮다며 한해 겨울 아무렇게나 그냥 입고 버리라는 전화도 함께요. 군복 비슷한 푸르뎅뎅한 누비바지인데 속에 무엇을 넣었는지 입어보니 참 푹신하고 따뜻했습니다. 저 같은 허름한 사람은 외출복으로 해도 손색없을 듯합니다. 이랬는데 또 전화를 하셨습니다. 동생 것만 사서 보내고 나니 섭섭해서 제수씨 것도 사서 보냈다고요. 이 전화는 아내가 받았습니다. 전화를 받고 나서 기뻐하는 제 아내와는 달리 저는 참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남동생이 늘 무릎관절로 고생하는데 겨울 되면 더 고생 하는 것을 형님은 항상 잊지 않으셔서 한해 겨울에 한 번씩은 꼭 두툼한 옷을 마련해 보냅니다. 그러니 옷장에 옷이 쌓여서 제 평생을 입어도 다 못 입을 만큼입니다. 여기는 아랫녘인 셈이라 겨울 날씨가 아무리 추워도 영하5도를 넘는 날이 별로 없는데 그곳은 추울 때는 영하20도를 오르내리는 지방이라 형님은 늘 여기도 그러려니 생각하시는 것이지요. 하지만 꼭 추위만 걱정해서도 아닌 것을 저는 잘 압니다. 형님의 체격과 제가 거의 똑같아서 형님은 늘 당신이 사 입는 옷이 괜찮다 싶으면 여벌로 샀다며 한 벌씩 보내시는데 제가 맘에 들어 할까 걱정하는 까닭에 작업복이나 하라는 말을 덧붙입니다. 동생을 생각하는 마음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지요. 그래서 미안합니다.

이러기는 서울에 사시는 제 바로 위 누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서울도 여기보다 좀 춥습니까, 그럴 때마다 내의며 두툼한 옷을 사 보내시는데 아주 싸게 할인하는 곳에서 샀다는 말을 덧붙입니다. 누님도 역시 나중에 꼭 제 안식구 옷까지 사 보내며 동생 것만 보내고 보니 미안했다고 전화합니다. 싸게 샀다는 말, 미안했다는 말, 앞에 것은 나 부담 갖지 말라는 말이고 뒤에 것은 숨기지 않는 마음입니다. 세분의 누님 중에 두 분은 먼저 가시고 저에게는 하나밖에 남지 않은 누님인데 누님의 사는 형편도 넉넉지 않습니다.
헤어진 남편과의 사이에 난 아들 하나를 혼자 키우고 가르치느라 전셋집을 전전하며 일을 손에 놓지 못하는 형편인데 아들이 이번에 첫 취직시험에서 그만 떨어졌다고 했습니다. 취직을 한다면 형편은 조금 풀릴지 모르지만 결혼시켜서 살림 내보내는 일은 또 남는 거지요. 이에 비하면 형님은 젊었을 때 갖은 고생을 다해서 먹고 사시는 데는 걱정이 없는 것 같습니다. 애들도 다 가르치고 결혼시켜서 살림 내보냈으니 크게 돈 들어갈 일이야 없겠는데 늘 서울 사는 누님과 제가 걱정인가 봅니다.

제가 농사지은 쌀을 사주시는 소비자 중에서도 제게 옷을 보내주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분들은 주로 헌옷을 모아서 보내시는 분들로, 가끔이긴 하지만 그 양과 내용이 만만찮습니다. 이곳에서 해마다 여는 바자회나 사람 많이 모여 사는 공동체에 쓸 수 있으면 골라 쓰라고 보내는 옷들이 단순한 헌옷이 아니라 거의 새 옷에 버금가는 고급상표의 것들이란 것이지요. 그런 옷을 받을 때마다 저희 내외는 그분들의 사는 수준과 주부의 메숲진 살림 솜씨를 미루어 짐작하며 놀랍니다. 하지만 그런 옷들은 대게 시골에서 입기는 부담스러운 게 많습니다. 잘살고 못살고를 떠나서 패션의 수준과 차이라는 게 역시 도시구나 하는 느낌이 듭니다.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합니다. 저는 늘 외출복과 평상복의 차이를 두지 않아서 일할 때를 빼고는 집에서 입는 옷 입고 그대로 밖에 나갑니다. 밖에 나간다고 해봤자 기껏 면소재지 권에서 도는 것이고 어쩌다 읍에 나가는 것이라 챙겨 입고 자시고 할 것도 없지만 언제나 그런 허름한 차림이어서 그런지 남에게 옷을 참 잘 얻어 입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게 버릇이 돼서 이제는 새 옷을 못 입게 됐습니다. 결혼식장이나 장례식장에는 어쩔 수 없이 그 예의라는 것을 차려야 되는데, 그게 참을 수 없이 불편해서 예식장은 대개 앉은 부조를 하고 장례식장은 얼굴만 얼른 보이고 나오든지 연장 챙겨들고 장지로 가곤 합니다. 지금은 시골에서도 장지의 일손이 없어서 인력시장에서 사람을 구해다 쓰니까요. 이러니 저에게는 소위 위아래 구색이 맞는 옷이 거의 없습니다. 한 벌짜리 옷이 없다는 것이지요. 한 벌짜리 옷이 있다 해도 철마다 한 벌이면 그것도 네 벌인데 그걸 언제 어떻게 다 갖춰놓고 골라 입는 답니까. 이를테면 겨울바지에 가을 잠바 두개 껴입는 식으로 입고 사는 것이지요.

바로 그저께, 이곳 면 권역의 몇 개 단체가 임대해서 쓰는 폐교된 초등학교에서 어떤 행사 하나가 있었습니다. 손님이 꽤 많이 오는, 올해로 여덟 번째를 맞는 것인데 제가 특별히 앞에 나설 일은 없어도 뒤에서는 여러 가지 일을 해야 합니다. 늘 그렇듯이 허름한 옷이 제격이지요. 아내가 그런 저를 보고 생전 처음으로 정색을 하고 나무라더군요. 그래서 두 번도 생각하지 않고 말해 주었습니다. “좋은 시 한편 쓰는 게 내가 입고 싶은 최고의 옷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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