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아즈매? 이제는 여성농업인!”

“나이 50줄 넘어 ‘농업인’이라는 천칙을 만나 온 열정 다 쏟고 있습니다.”
충청북도 단양군 어상천면 <기천농원> 박옥련 대표는 지금이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고 말한다. 한때는 멋진 고급승용차를 타고, 예쁜 옷을 입고, 떵떵거리고 살던 그녀였지만 편안한 옷에 트럭을 몰고 농원을 가는 순간이 인생의 낙이자 가장 행복한 순간으로 꼽는다.

박 대표는 지난 2009년 단양으로 귀농했다. 대전에서 유년시절을 보내고 부산사나이 남편을 만나 부산에서 20여년을 살던 그녀가 돌연 아무연고지도 없는 단양으로 정착한 것은 갑자기 찾아온 병마 때문이었다.

“부산에서 사업을 했었는데 일이 잘못 풀리면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그 때문인지 자꾸 몸에 이상증세가 나타나고 이상한 행동을 반복했죠. 병원을 갔더니 알츠하이머 초기라고 하더군요. 천청벽력 같은 소리에 억장이 무너졌지만, 그래도 초기라 더 이상 병이 진행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요양을 위해 농촌으로 들어오게 됐습니다.”

그렇게 정착하게 된 곳이 단양이었다. 산능선 너머 보이는 푸른 하늘이 그녀 마음에 쏙 들었다고. 그러나 시원하게 펼쳐진 하늘과는 반대로 그녀의 마음은 꽁꽁 닫혀만 있었다.
“남편은 부산에 직장이 있어 6개월간 저 혼자 단양에 있었어요. 그때 정말 힘든 시간을 보냈죠. 자살시도도 했을 정도니까요. 이런 제 마음을 다 잡을 수 있었던 것은 마을주민들과 농사를 짓는 것이었습니다.”

박 대표는 농촌에 들어왔지만 농사를 지을 마음은 전혀 없었다. 한 번도 농사라곤 지어본적 없는 그녀였기에 엄두를 못 냈던 것이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흔들었던 것은 연분홍의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는 복사꽃이었다. 그리고 망설이는 그녀에게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용기를 넣어주고 도와주겠다고 나선 마을주민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알츠하이머 뿐 만아니라 심장질환도 가지고 있어 몸도 성치 않은데 내가 과연 농사를 지을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었어요. 그래도 마을주민들이 도와주겠다고 나서 용기를 냈죠. ‘농사’를 하면서 제 인생도 많이 바꿨어요. 아픔 몸도, 우울했던 마음도 싹없어졌죠. 농사를 지었던 것이 제 생명의 은인입니다.”

박 대표는 현재 고추, 복숭아, 마늘을 생산하고 있다. 따로 홍보한 적도 없지만 입소문이 퍼져 홍초 고추를 제외한 모든 품목을 직거래로 판매하고 있다. 또 올해는 절임배추도 판매해 큰 성과를 보였다. 그리고 돈보다도 더 중요한 ‘건강’도 되찾았다.

“농사를 시작했으니 그래도 제대로 지어보잔 마음으로 이리저리 교육을 받았어요. 그리고 정신없이 농사를 지었죠. 몸은 피곤하긴 했지만 꾸준히 활동적인 일을 하니 내가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었어요. 병도 더 이상 진전되지도 않아 건강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농사에 교육에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그녀이지만 예비, 후배 귀농인들의 안정적인 정착을 위한 일도 빼놓지 않는다. 아름다운귀농영농법인 이사를 맡고 있고, 전국의 귀농·귀촌인들에게 사례발표를 하며 귀농인들에게 농촌 적응 사례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예비, 새내기 귀농인들에게 자기 자신을 낮춰야 할 것을 꼭 당부해요. 농촌에 정착하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마을사람들과 잘 융합하는 것이 중요해요. 그러기 위해선 내가 도시에서 무엇을 했고, 얼마만큼 돈이 있는 것은 중요치 않아요. 농업에 대해선 마을주민들이 모두 선배이기 때문에 최대한 자신을 낮추고, 마을에 봉사를 해야 합니다.”
산등선을 따라 펼쳐진 기찬농원을 바라보며 후배귀농인들에게 본보기가 되고 ‘농업인’으로서 더 발전해 나갈 것을 다짐하는 박 대표의 모습에서 그녀의 밝은 미래를 엿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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